"어? 선생님? 거기는!" 했다
무슨 너무너무 경비원 같은 목소리라서ㅋㅋㅋ 나도 소변기 앞에 지퍼 내리자마자 뒤돌아봤어.
"예? 저요? ...왜요?"
남자랑 그 뒤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나를 보는 거야. 첨엔 일행인줄 알았는데 따로였더라. 선생님이라 호칭했던 쪽이 "아, 아니. 죄송합니다... ㅎ;" 하더라?
훤칠하니 구김도 없고 체격도 좋고, 옷도 말쑥하니 입은 사람이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제지하다가, 갑자기 너무 미안한 듯이 사과를 하길래...
'대체 뭐였을까? 화장실에 무슨 사고가 있나? 경?비하시는 분은 아닌 듯한데... 뭣보다 이 건물에 그런 분이 있지도 않았고... 아무튼 뭔가 문제가 있어서 글케 말했을텐데, 그럼 알아둬야지 않겠냐.' 싶었다.
남자 쪽은 어영부영 서둘러 대변기 칸 들어가려고 하는데(소변기가 두 개 뿐이라서ㅇ) 그런 중에도 내가 ????가득한 얼굴로 보고있으니 내 다음 말을 좀 기다리려는 눈치가 있었어. 음,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어서 나도 굳이 한번 더 "아뇨, 뭐.. 그냥. 뭔가 문제가 있나요? (소변기 고장났다든지?)" 하고 물어봤다.
남자는 정말 쑥쓰럽고 정말 미안한 듯이 "아뇨, 아뇨. 죄송합니다. 그, 여자분인 줄 알았어요." 하더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여자가 남자화장실 들어가는 줄 알았구나! 하고 살짝 웃으며 "아 그러셨구나ㅋㅋ 아뇨 뭐, 제 머리가 좀 길죠ㅋㅋ" 정도 던지려는데,
그럴 틈도 안 주고 정말 거듭거듭 사과하더라.
그러면서 마치 부끄럽단 듯이 얼른 대변기 칸 들어갔어.
들어가서도 "죄송합니다." 하는데... 아니 근데 이게 그렇게나 사과할 일인가? 싶었다. 좀 기분 나빠.
근데 그런 식으로 기분 나빠하기엔, 또 그 남자가 너무 정중하고, 배운 억양으로 거듭 사과하길래...
그니까, 요즘 같아선 내 얼굴 본 즉시로 '뭐야, 이 새끼?' 하고는 "아뇨 제가 좀 착각을 해서ㅎ(사내놈이 무슨 기집애처럼 하고 다녀)" 할 만도 한 상황인데, 지금 자기 오해로 사람을 붙잡으려 했단 그 자체가 너무 미안한 것 같더라고. 사람이 그냥 순수해. 이 사람은 그저 날 놀라게 했단 자체가 너무 미안한 거야;
그런 식이다보니 기분 나쁠 틈도 없더라고.
그렇다보니 오히려 내가 이 사람을 달래야겠다 싶었어.
뭐라도 좀 그 마음을 달래려고 대소변 벽 너머로 "허허 아녀요. 제가 머리가 좀 길죠? 몸도 남자치곤 너무 말라깽이고." 하는 식으로 자조섞은 농담 하려다가
그러면 오히려 더 곤혹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용변 보는 중에 갑자기 그런 대화하는 것도 웃기고; 지금 그게 무슨 상황이야? 그냥 다물고 있어, 인마! 싶더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뭔가 말은 해야겠다 싶었어. 그래서 했다.
"아뇨 뭐 그럴 수 있죠. 그렇잖아요ㅋㅋ (벽 너머로 또 사과) 아뇨아뇨. 별거 아녔으니까 뭐. 전 뭐, 여기에 폭탄이라도 있나 했어요. (벽 너머에서 억지웃음) 요즘 칼부림 어쩌구 하니까..." 함.
"그쵸. 아니, 죄송합니다."
하더라.
사바사라곤 하지만 내가 삼십 살면서 겪은 게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아니, 죄송합니다."는 "아니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만 말해 제발..." 인 경우가 많았어. 근데ㅋㅋㅋ 그렇게 사과할 문젠가?란 거는 동시에 "그렇게 미안할 문제가 아닌데..."라는 거야. 글케 미안해할 상황은 아닌데... 싶어서 나도 참 안타깝더라. 사람은 참 좋았어.
아무튼 상대가 그런 신호를 보냈으니 뭐, 나도 굳이 더 말해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고 싶진 않았다.
하는데 난 소변이 안 나와서ㅋㅋㅋㅋㅋ 이 인간 먼저 문 열고 나가면 내가 참 어색하겠는데; 했더니
대변기 칸 너머 소변 소리 끊겼는데도, 지도 같은 마음이었는지ㅋㅋㅋㅋ 그냥 기다리더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치만, 선생님 같은 분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저는 기분 좋았습니다. 그... 사과하신 마음과 이유가 대충 어렴풋이 이래저래 해석이 됩니다만, 저는 꽤 기분 좋네요.
내가 지금 꽤 기지배같은 가봐?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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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진짜 국정원이 "선생님?"하고 오는 줄 알았다. 2인1조로 나 잡으러 온 줄... 내가 로갤하는 게 결국 들켰구나! 제기랄! 하면서...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