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소유했다는 것 자체가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 그렇게 따지면 1970년대 영국은 일시적으로 사회주의였나?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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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면, 이러한 국가 소유의 기간산업과 은행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한 광범위한 계획경제의 도구로서 기능해야 함. 근데 중국의 기간산업과 은행이 “수출”을 위해서 혹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서 그에 봉사하는거야 아니면 노동자의 수요와 공급을 위해 존재하는 거임? 만약 그렇다면 자본가는 떵떵거리면서 농민공의 열악한 상태란 존재할 수 없는데.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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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하면, 중국에서 자본가는 돈은 엄청 많이 벌 수 있고 소비 면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는 있어도 통치 엘리트들의 주축이라기보다는 통치엘리트들에게 종속된 존재임
시타(redlx74l8r48)2023-08-0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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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유산업은 경제 전체를 자본가들의 이익이 아니라 국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기 위한 수단임. 물론 여기서 국익은 공산당의 영구집권과 한 몸인 것으로 이해됨.
시타(redlx74l8r48)2023-08-0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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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중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사회주의라는 것이 아님. 사회주의의 정치체제는 자유자본민주제보다도 훨씬 직접적이고 참여적인 민주제임. 반면 중국의 정치체제는 고도로 간접적인 엘리트 통치체제임.
시타(redlx74l8r48)2023-08-0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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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 스스로가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것은 다른 요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냐 아니냐가 기준이지, 자본가 스스로가 통치를 하느냐 아니냐는 전혀 기준도 아니고, 중국 지도층 스스로가 자본가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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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도 프로레타리아트 독재 시기에는 당연히 노동 계급의 엘리트들이 어느 정도 양적으로 독재 시기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 체계는 경제 체계의 객관적 이해방식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며, 중국도 자본가 계급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국가의 역활은 감소하고 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이 증가할 것입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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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엘리트 통치 체제가 아닌 곳은 존재할 수 없음. 애당초 엘리트가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하니까 엘리트인 것임. 통치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에 대립물로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니 엘리트로 인정받는 것이지, 통치 행위에 전혀 간섭할 수 없는 사람은 엘리트가 아님.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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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미 중국 통치 시스템이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지 않고 공산당의 영구 집권과 동일시되는 국익을 추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자본가 일부가 공산당원이든 아니든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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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미 중국의 통치 체제를 고도로 간접적인 엘리트 통치체제라고 얘기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통치하는 이들은 어느 체제에서든 다 엘리트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엘리트들이 어떻게 선발되고 어떻게 국민에게 책임을 지느냐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통치체제는 프롤레라티아 독재와는 관계없고 현실적으로 평범한 노동자들이 공산당원이 되어 공산당 상층부까지 올라가는 것은 극히 힙듭니다. 중국의 통치체제는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본 현능주적 통치제제입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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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른 글타래에서 중국의 정치경제체제를 자본주의로 회귀할 수도 있고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도 있는 과도적 체제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언급했습니다. 저는 그 양반들의 주장에 동감합니다. 현재로서는 자유주의적 정치성향이 증가할 것입니다라고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서방에서는 더 권위주의적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데, 공산당/국가의 권위가 더 증가하고 자본가들을 더 옥죄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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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의 1당 집권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나무 자명해서 의미가 없습니다. 어느 정부도 그 정부의 실존이 위협받는 수준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운동을 추동할 수 없습니다. 위 논제에서 중점적으로 묻는 것은 그러한 일당 독제 구조가 “현재” 자본주의에 봉사하는가 사회주의에 봉사하는가 입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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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나 서방 측이 자본가를 옥죄는 이유는 그것의 국가독점자본주의적 성질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향성은 중국 자본의 확대와 생존에 있는 것이지, 무슨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가의 해체에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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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말한 귀족적 통치 체계, 즉 현인 통치와는 중국의 통치 체제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능력주의 체제에 가깝지요.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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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중국 자본가와 엘리트들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중국 공산당의 1당 체제를 붕괴시키고 형식적 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할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시로 러시아와 일본의 민주주의 체제가 중국의 그것과 얼마만큼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지, 또 일본과 미국,유럽이 얼마나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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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단순히 권력 장악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적 행위입니다. 그 조직의 주체가 한 집단 내에서 어떤 개체가 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것은 정치의 부분일 뿐 근본이 될 수 없습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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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근본은 그 정치 권력을 장악한 집단의 행위, 즉 그 집단의 구성이 자신의 실존을 확대 재생산 하려는 것에 있지 그 집단의 정치 권력 장악은 그것을 위한 하나의 단계이자 수단에 불과합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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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는 중국의 민간 경제 부문 세력가들은 중국 공산당의 1당 체제를 붕괴시키고 형식적 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의 지배력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행을 추구하는 세력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고 관건은 중국이 현재와 같은 공산당 통치 아래서 계속 발전할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그 발전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난다면 일반 국민들이 먼저 동요할 것이고 자유주의 세력들이 그 동요에 빌붙을 것입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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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통치 모델은 자본주의적 능력주의가 아닙니다. 중국에서 통치 엘리트 후보들의 능력은 철저히 [국익을 신장시킬 능력 = 공산당의 권위를 강제력으로가 아니라 성과를 통해서 유지할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실무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서 철저히 검증되고 끊임없이 더 향상되게끔 훈련과 교육을 재촉받습니다. 또 일말의 부정부패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중국에서는 트럼프, 바이든, 문재인, 박근혜, 이명박, 윤석렬 따위는 구청장도 될 수 없습니다. 이런식의 통치 엘리트 선발과 검증 과정은 중국 외의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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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통치엘리트들이 특정 자본가들을 옥죈다면 그것은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본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서거나 - 자본가들 개개인은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본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힘듭니다 - 그 특정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 행동이 장기적인 국익을 해친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자본가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가들에게 애국은 우선 순위가 아닙니다. 중국의 통치 시스템은 국익절대우선주의입니다. 그것은 전통적 의미의 국가주의나 전체주의가 아닙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에 사는 이들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주의입니다. 물론 그 주의는 중국 사회가 여전히 계급사회라는 사실과 양립할 수 있습니다. 즉 그 주의는 지배이데올로기, 특히 공상당 통치의 영구 보장을 위한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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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국가가 초계급적인 존재도 아니고 자꾸 국익을 강조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당연히 국익을 신장시키는 것이 자본주의 능력주의에서 중요한 것이겠지요. 근데 그 국익이 어떤 집단에게 주요한 이익이 되나요? 노동 계급 아니면 자본계급? 그 이익의 방향과 규모가 항상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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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더 능력주의적 체제인 것은 맞습니다. 무슨 선거가 능력주의적 체계입니까? 선거는 정치적 합의를 위한 체계이지 그 체제에 객관적 봉사의 능력으로 그 사람을 측정하기 위한 체계가 아닙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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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말한 겁니다. 국가 독점자본주의는 그 “국가”의 자본을 확대 하기 위한 것이지, 그 국가 내의 자본가 개인의 확대가 아닙니다. 또 그 국가의 특정 개인과 그 국가 자체가 점점 동일시 되어 질 수 있는 체계입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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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능력주의에서는 국익을 신장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얘기했습니다. 중국 사회는 여전히 계급사회이지만 (즉 노동자들이 착취되고 있고 통치엘리트들이 과도한 권위를 행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수준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정치경제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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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만큼 공허한 소리도 없습니다. 그 국익이 누구를 위한 국익이란 말입니까? 노동자입니까, 아니면 자본가입니까, 아니면 지주입니까, 아니면 관료입니까, 아니면 소부르주아지입니까? 당연히 모든 국가는 국익을 추종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국가의 확대재생산에 필수적인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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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능력주의가 국가와 무관할 수 있으나 국가 체계 내에서 자본주의 능력주의는 국익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능력주의 신앙이 강한 국가에서는 국가 공무원을 뽑는 것에 무엇을 기준으로 뽑는다는 말입니까?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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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자본가 분파들의 이익,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안정화와 가능한 최대의 질적 경제성장, 공산당의 영구 집권과 한몸으로 이해되고 여전히 계급사회적 성격이 유지되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본의 이해관심을 초과한다는 의미에서의 국익 - 이렇게 셋을 구별한다고 할 때 중국의 통치 체제는 세번째 것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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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모두에서 전부 나타날 수 있겠지만, 그 양태는 각각의 결합에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민족주의적 능력주의에서는 당연히 민족과 국가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는 수준에서 국익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국익적 수준은 그 국가의 독점 자본에 얼만큼 봉사하느냐로 정해지는 것이고요. 세계주의적 능력주의만이 능력주의의 전부가 아닙니다. 능력주의 그 자체만으로는 엄청 공허하며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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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세계관에 대해서는 조금도 공감이 가지 않는군요. 어떻게 계급사회적 성격이 주인데 그것을 “초과”한 통치체계가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도무지 그러한 예시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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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가가 실질적으로 장기적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망조가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미국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국의 제조업을 공동화시키는 수준의 경제 금융화와 글로벌화는 미국의 특정 자본주의 부문 및 그들과 결탁한 통치 엘리트들의 이익을 추구한 것이었지 하나의 전체로서의 미국 자본주주의 장기적 패권 유지를 추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식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그런 추구가 불가능합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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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를 억죄는게 공동부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동계급의 엄청난 반발로 인해 독점 자본이 노동계급을 일정 부분 회유하기 위한 자본주의적 수단이지 무슨 초계급적인 조치가 아닙니다. 동지의 말대로라면 무슨 유럽은 사회주의 국가였습니까?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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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사회를 초과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해관심을 초과한다는 것입니다. 한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적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노동자들 위에서 군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자본주의적인 체제보다는 더 국익 추구적이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라고 다 같지 않은데 (사민주의와 자유지상주의 사이에는 의미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 자본주의와 아예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국익절대우선주의 사이에 차이가 없을까요?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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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의 장기적인 수준과 단기적인 수준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며 기계적인 것도 아닙니다. 애당초 단기적인 수준이 보장되지 않으면 장기적인 수준이 유지될 수 없어요. 미국이 장기적 국익을 포기한 것은 미국의 자본 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이익률이 감소하여, 해외 시장으로 자본 유출을 해야했기 때문이지 미국 자본가 계급의 단시안적 이기심이 중국보다 높았던게 아닙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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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일부 나라들에서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보다 더 통제되는 자본주의였습니다. 유럽 사민주의는 쇠퇴해왔지만 여전히 미국식 자유지상주의적 자본주의보다 보통 사람들에게 더 높은 삶의 질을 확보해주고 있죠. 중국은 유럽보다 더 자본주의를 - 자본주의적 요소 - 를 통제합니다. 중국이 유럽보다 보통 사람들이 더 살기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양국의 시스템의 차이보다는 중국이 생산력 발전을 늦게 시작했다는 것과 더 관계 있습니다.
미국은 장기적 국익을 포기했다기보다는 애초 미국의 자유주의적 정치경제시스템에 장기적 국익, 아니 장기적인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요소가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중국은 일당 현능주의 통치 시스템의 성격상 자본가들을 통제하고 장기적 국익을 조직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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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사민주의는 10년과 45년 사이에 질적으로 달라지며, 45년에는 자본주의와 구분조차 되지 않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 국가의 구체적 환경 속에서 독점 자본의 행동이 구체적 수준에서 달라질 수 있지만, 여전히 국익, 즉 독점자본의 생존과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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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이라고 일체되게 말해서는 안된다고 저는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미국이 무슨 대단한 자유주의 국가입니까. 시위를 총기로 진압하는 나라인데. 노동계급의 성장으로 인해 자유주의 국가 구조를 함부로 바꾸었다간 폭동이 날까 무서웠고, 케인즈주의적 경제체제의 붕괴로 미 독점자본의 위기로 인해 유출을 더 간편하게 한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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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이란 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어떤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이 주는 이익으로도 환원이 안 되는, 확보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익입니다. 그 이익에는 일상 생활상의 이익만이 아니라 안보 이익도 포함되죠. 이상적으로 말하면 그 이익은 계급 사회의 철폐와 진실로 민주적인 경제운용이 이뤄질때 획득됩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향하는 도정에는 어떤 스펙트럼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계급사회지만 적어도 자본주의적 계급사회가 가하는 국익 불감증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 있습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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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밝혔듯, 자본주의의 모순은 무슨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중국도 때가 되면 미국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겁니다. 그리고 미국도 선거에서만 그러한 구조가 나타나지 차관급 이하의 구조에서는 심각한 정도의 능력주의가 나타나는 것은 중국과 다를바 없습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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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상의 이익과 안보 이익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안보 이익입니까. 계급적으로 중립적인 안보위기와 치안 유지가 있을거라 보십니까? 그것의 파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미국아닙니까?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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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자본의 생존과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럽 자본주의와 미국 자본주의 사이에 차이가 없어도 유럽 자본주의는 조금 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입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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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든 미국이든 국익을 추구하는 것은 같습니다. 단지 개별적 요소, 즉 미국 국적의 특정 자본이 미국의 국익에 안맞는 경우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그러한 자본을 규제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미국의 독점 자본의 실체를 봉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신다면 미-중 무역전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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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읰ㅋㅋㅋㅋ 자본주의에 인간을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어딨습니까. 그 피에 물든 오물덩어리에. 오히려 역겨운 인두겁을 쓰고 나타난 더 끔찍한 괴물에 불과하지요.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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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적으로 중립적인 안보이익은 물론 없습니다! 중국의 모든 안보이익은 공산당의 영구집권과 동일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포함해 어떤 사회도 외국의 침공과 간섭을 포함한 재난과 범죄에 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대비는 지배계급과 통치엘리트들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한테도 이익을 줍니다. 현재 중국은 미국의 일체의 간섭을 무력화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강력 범죄율이 낮은 편인 나라이기도 하죠.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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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노동계급이 더 강했어서 국가를 위협할 정도가 되었기에 국가가 그 정도만큼 양보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 노동계급이 어느 정도 약화되었으니 다시 침탈하는 것에 불과하고요. 무슨 자본주의에 인간성이라는 알 수 없는 것이 침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당시 환경의 자본주의 실존에서 가능한 몇 안되는 방안이었기 때문입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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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유럽 노동계급이 투쟁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정도의 복지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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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본주의는 피에 물든 오물덩어리에서 기원했지만 유럽 사민주의 나라들의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보다 보통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장해줍니다. 그 차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저는 사민주의를 아주 혐오합니다.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데는 미국식 자본주의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고 사민주의하는 나라들이 엄청 미국에 굴종적이기 때문입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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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보통사람들에게 무슨 공통적인 수준의 이익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범죄가 많다는 것은 오히려 하층 계급을 국가가 강하게 억압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 전쟁으로 인해 국가의 손실은 지배 계급에게 더 큰 타격을 주지 노동계급에게 더 많은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그 전쟁터로 노동 계급을 보내는 것은 “상대 국가가 아니라” 그 국가 그 자체입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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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노동자 계급이 미국 노동자 계급보다 더 투쟁했다, 아니다 - 이런 류의 얘기에는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 미국도 70년대까지는 나름의 미국식 사민주의국이었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죠. (유럽) 사민주의의 전성기가 지난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차이가 큽니다.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도 차이가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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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말하지만 자본주의가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노동계급의 투쟁이 보존해 주는 것입니다. 그 양자의 차이를 명백히 구분하지 않으시네요 아까부터.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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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의 서구의 노동 투쟁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유럽 사민주의와 미국의 자본주의를 말하려고 하시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통피막으면쓰는계정(naver3559)2023-08-0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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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은 결정적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소위 중진국 트랩을 벗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향후 10년 사이에 결판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미국과 그 애완국들 동맹이 가하는 압력에 굴하지 않고 국가 주도적 경제굴기를 계속 추구할 수 있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중국에 전쟁에 휘말리지도 않고 압력에 굴하지도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애초 그렇게 땅덩이 크고 인구 많은 나라가 그렇게 경제발전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을 쥐어짠다고 다 그정도 경제 발전을 할 수 있다면 지구상에는 조그만 중국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시타(redlx74l8r48)2023-08-0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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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노동자들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면 - 계급 투쟁이라는 것도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동원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싑게하는 자원/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상식이 있어야 합니다 - 계급투쟁 자체가 힘들어집니다. 글로벌화를 포함해 자본주의가 자본가에게 더 유리한 그런 식의 변모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계급투쟁이 미미해졌다고 오랜 세월 누린 삶의 질이 갑자기 악화되는 것은 일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미국보다는 유럽 사민주의국들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그 나라들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들입니다.
등소평 시기에 이루어진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개혁
https://m.dcinside.com/board/kpd/151080?headid=80
국가가 소유했다는 것 자체가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 그렇게 따지면 1970년대 영국은 일시적으로 사회주의였나?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면, 이러한 국가 소유의 기간산업과 은행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한 광범위한 계획경제의 도구로서 기능해야 함. 근데 중국의 기간산업과 은행이 “수출”을 위해서 혹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서 그에 봉사하는거야 아니면 노동자의 수요와 공급을 위해 존재하는 거임? 만약 그렇다면 자본가는 떵떵거리면서 농민공의 열악한 상태란 존재할 수 없는데.
간단히 말하면, 중국에서 자본가는 돈은 엄청 많이 벌 수 있고 소비 면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는 있어도 통치 엘리트들의 주축이라기보다는 통치엘리트들에게 종속된 존재임
중국의 국유산업은 경제 전체를 자본가들의 이익이 아니라 국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기 위한 수단임. 물론 여기서 국익은 공산당의 영구집권과 한 몸인 것으로 이해됨.
그렇다고 중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사회주의라는 것이 아님. 사회주의의 정치체제는 자유자본민주제보다도 훨씬 직접적이고 참여적인 민주제임. 반면 중국의 정치체제는 고도로 간접적인 엘리트 통치체제임.
자본가 스스로가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것은 다른 요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냐 아니냐가 기준이지, 자본가 스스로가 통치를 하느냐 아니냐는 전혀 기준도 아니고, 중국 지도층 스스로가 자본가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사회주의도 프로레타리아트 독재 시기에는 당연히 노동 계급의 엘리트들이 어느 정도 양적으로 독재 시기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 체계는 경제 체계의 객관적 이해방식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며, 중국도 자본가 계급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국가의 역활은 감소하고 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이 증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트 통치 체제가 아닌 곳은 존재할 수 없음. 애당초 엘리트가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하니까 엘리트인 것임. 통치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에 대립물로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니 엘리트로 인정받는 것이지, 통치 행위에 전혀 간섭할 수 없는 사람은 엘리트가 아님.
저는 이미 중국 통치 시스템이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지 않고 공산당의 영구 집권과 동일시되는 국익을 추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자본가 일부가 공산당원이든 아니든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중국의 통치 체제를 고도로 간접적인 엘리트 통치체제라고 얘기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통치하는 이들은 어느 체제에서든 다 엘리트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엘리트들이 어떻게 선발되고 어떻게 국민에게 책임을 지느냐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통치체제는 프롤레라티아 독재와는 관계없고 현실적으로 평범한 노동자들이 공산당원이 되어 공산당 상층부까지 올라가는 것은 극히 힙듭니다. 중국의 통치체제는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본 현능주적 통치제제입니다.
저는 다른 글타래에서 중국의 정치경제체제를 자본주의로 회귀할 수도 있고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도 있는 과도적 체제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언급했습니다. 저는 그 양반들의 주장에 동감합니다. 현재로서는 자유주의적 정치성향이 증가할 것입니다라고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서방에서는 더 권위주의적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데, 공산당/국가의 권위가 더 증가하고 자본가들을 더 옥죄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1당 집권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나무 자명해서 의미가 없습니다. 어느 정부도 그 정부의 실존이 위협받는 수준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운동을 추동할 수 없습니다. 위 논제에서 중점적으로 묻는 것은 그러한 일당 독제 구조가 “현재” 자본주의에 봉사하는가 사회주의에 봉사하는가 입니다.
중국이나 서방 측이 자본가를 옥죄는 이유는 그것의 국가독점자본주의적 성질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향성은 중국 자본의 확대와 생존에 있는 것이지, 무슨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가의 해체에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플라톤이 말한 귀족적 통치 체계, 즉 현인 통치와는 중국의 통치 체제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능력주의 체제에 가깝지요.
만약 중국 자본가와 엘리트들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중국 공산당의 1당 체제를 붕괴시키고 형식적 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할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시로 러시아와 일본의 민주주의 체제가 중국의 그것과 얼마만큼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지, 또 일본과 미국,유럽이 얼마나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치는 단순히 권력 장악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적 행위입니다. 그 조직의 주체가 한 집단 내에서 어떤 개체가 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것은 정치의 부분일 뿐 근본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근본은 그 정치 권력을 장악한 집단의 행위, 즉 그 집단의 구성이 자신의 실존을 확대 재생산 하려는 것에 있지 그 집단의 정치 권력 장악은 그것을 위한 하나의 단계이자 수단에 불과합니다.
아직까지는 중국의 민간 경제 부문 세력가들은 중국 공산당의 1당 체제를 붕괴시키고 형식적 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의 지배력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행을 추구하는 세력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고 관건은 중국이 현재와 같은 공산당 통치 아래서 계속 발전할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그 발전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난다면 일반 국민들이 먼저 동요할 것이고 자유주의 세력들이 그 동요에 빌붙을 것입니다.
중국 통치 모델은 자본주의적 능력주의가 아닙니다. 중국에서 통치 엘리트 후보들의 능력은 철저히 [국익을 신장시킬 능력 = 공산당의 권위를 강제력으로가 아니라 성과를 통해서 유지할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실무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서 철저히 검증되고 끊임없이 더 향상되게끔 훈련과 교육을 재촉받습니다. 또 일말의 부정부패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중국에서는 트럼프, 바이든, 문재인, 박근혜, 이명박, 윤석렬 따위는 구청장도 될 수 없습니다. 이런식의 통치 엘리트 선발과 검증 과정은 중국 외의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어떤 통치엘리트들이 특정 자본가들을 옥죈다면 그것은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본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서거나 - 자본가들 개개인은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본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힘듭니다 - 그 특정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 행동이 장기적인 국익을 해친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자본가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가들에게 애국은 우선 순위가 아닙니다. 중국의 통치 시스템은 국익절대우선주의입니다. 그것은 전통적 의미의 국가주의나 전체주의가 아닙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에 사는 이들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주의입니다. 물론 그 주의는 중국 사회가 여전히 계급사회라는 사실과 양립할 수 있습니다. 즉 그 주의는 지배이데올로기, 특히 공상당 통치의 영구 보장을 위한
무슨 국가가 초계급적인 존재도 아니고 자꾸 국익을 강조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당연히 국익을 신장시키는 것이 자본주의 능력주의에서 중요한 것이겠지요. 근데 그 국익이 어떤 집단에게 주요한 이익이 되나요? 노동 계급 아니면 자본계급? 그 이익의 방향과 규모가 항상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중국이 더 능력주의적 체제인 것은 맞습니다. 무슨 선거가 능력주의적 체계입니까? 선거는 정치적 합의를 위한 체계이지 그 체제에 객관적 봉사의 능력으로 그 사람을 측정하기 위한 체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말한 겁니다. 국가 독점자본주의는 그 “국가”의 자본을 확대 하기 위한 것이지, 그 국가 내의 자본가 개인의 확대가 아닙니다. 또 그 국가의 특정 개인과 그 국가 자체가 점점 동일시 되어 질 수 있는 체계입니다.
자본주의 능력주의에서는 국익을 신장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얘기했습니다. 중국 사회는 여전히 계급사회이지만 (즉 노동자들이 착취되고 있고 통치엘리트들이 과도한 권위를 행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수준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정치경제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국익만큼 공허한 소리도 없습니다. 그 국익이 누구를 위한 국익이란 말입니까? 노동자입니까, 아니면 자본가입니까, 아니면 지주입니까, 아니면 관료입니까, 아니면 소부르주아지입니까? 당연히 모든 국가는 국익을 추종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국가의 확대재생산에 필수적인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능력주의가 국가와 무관할 수 있으나 국가 체계 내에서 자본주의 능력주의는 국익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능력주의 신앙이 강한 국가에서는 국가 공무원을 뽑는 것에 무엇을 기준으로 뽑는다는 말입니까?
특정 자본가 분파들의 이익,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안정화와 가능한 최대의 질적 경제성장, 공산당의 영구 집권과 한몸으로 이해되고 여전히 계급사회적 성격이 유지되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본의 이해관심을 초과한다는 의미에서의 국익 - 이렇게 셋을 구별한다고 할 때 중국의 통치 체제는 세번째 것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능력주의가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모두에서 전부 나타날 수 있겠지만, 그 양태는 각각의 결합에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민족주의적 능력주의에서는 당연히 민족과 국가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는 수준에서 국익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국익적 수준은 그 국가의 독점 자본에 얼만큼 봉사하느냐로 정해지는 것이고요. 세계주의적 능력주의만이 능력주의의 전부가 아닙니다. 능력주의 그 자체만으로는 엄청 공허하며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동지의 세계관에 대해서는 조금도 공감이 가지 않는군요. 어떻게 계급사회적 성격이 주인데 그것을 “초과”한 통치체계가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도무지 그러한 예시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모든 국가가 실질적으로 장기적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망조가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미국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국의 제조업을 공동화시키는 수준의 경제 금융화와 글로벌화는 미국의 특정 자본주의 부문 및 그들과 결탁한 통치 엘리트들의 이익을 추구한 것이었지 하나의 전체로서의 미국 자본주주의 장기적 패권 유지를 추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식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그런 추구가 불가능합니다.
자본가를 억죄는게 공동부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동계급의 엄청난 반발로 인해 독점 자본이 노동계급을 일정 부분 회유하기 위한 자본주의적 수단이지 무슨 초계급적인 조치가 아닙니다. 동지의 말대로라면 무슨 유럽은 사회주의 국가였습니까?
계급사회를 초과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해관심을 초과한다는 것입니다. 한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적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노동자들 위에서 군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자본주의적인 체제보다는 더 국익 추구적이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라고 다 같지 않은데 (사민주의와 자유지상주의 사이에는 의미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 자본주의와 아예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국익절대우선주의 사이에 차이가 없을까요?
이윤의 장기적인 수준과 단기적인 수준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며 기계적인 것도 아닙니다. 애당초 단기적인 수준이 보장되지 않으면 장기적인 수준이 유지될 수 없어요. 미국이 장기적 국익을 포기한 것은 미국의 자본 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이익률이 감소하여, 해외 시장으로 자본 유출을 해야했기 때문이지 미국 자본가 계급의 단시안적 이기심이 중국보다 높았던게 아닙니다.
유럽 일부 나라들에서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보다 더 통제되는 자본주의였습니다. 유럽 사민주의는 쇠퇴해왔지만 여전히 미국식 자유지상주의적 자본주의보다 보통 사람들에게 더 높은 삶의 질을 확보해주고 있죠. 중국은 유럽보다 더 자본주의를 - 자본주의적 요소 - 를 통제합니다. 중국이 유럽보다 보통 사람들이 더 살기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양국의 시스템의 차이보다는 중국이 생산력 발전을 늦게 시작했다는 것과 더 관계 있습니다.
제가 묻고 싶은건 도대체 말씀하시는 국익절대우선주의가 뭡니까. 그게 도대체 독점자본의 실존에 “반하여” 일어나긴 하는 예시가 있습니까?
미국은 장기적 국익을 포기했다기보다는 애초 미국의 자유주의적 정치경제시스템에 장기적 국익, 아니 장기적인 하나의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요소가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중국은 일당 현능주의 통치 시스템의 성격상 자본가들을 통제하고 장기적 국익을 조직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유럽의 사민주의는 10년과 45년 사이에 질적으로 달라지며, 45년에는 자본주의와 구분조차 되지 않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 국가의 구체적 환경 속에서 독점 자본의 행동이 구체적 수준에서 달라질 수 있지만, 여전히 국익, 즉 독점자본의 생존과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이라고 일체되게 말해서는 안된다고 저는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미국이 무슨 대단한 자유주의 국가입니까. 시위를 총기로 진압하는 나라인데. 노동계급의 성장으로 인해 자유주의 국가 구조를 함부로 바꾸었다간 폭동이 날까 무서웠고, 케인즈주의적 경제체제의 붕괴로 미 독점자본의 위기로 인해 유출을 더 간편하게 한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국익이란 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어떤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이 주는 이익으로도 환원이 안 되는, 확보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익입니다. 그 이익에는 일상 생활상의 이익만이 아니라 안보 이익도 포함되죠. 이상적으로 말하면 그 이익은 계급 사회의 철폐와 진실로 민주적인 경제운용이 이뤄질때 획득됩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향하는 도정에는 어떤 스펙트럼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계급사회지만 적어도 자본주의적 계급사회가 가하는 국익 불감증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밝혔듯, 자본주의의 모순은 무슨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중국도 때가 되면 미국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겁니다. 그리고 미국도 선거에서만 그러한 구조가 나타나지 차관급 이하의 구조에서는 심각한 정도의 능력주의가 나타나는 것은 중국과 다를바 없습니다.
생활상의 이익과 안보 이익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안보 이익입니까. 계급적으로 중립적인 안보위기와 치안 유지가 있을거라 보십니까? 그것의 파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미국아닙니까?
독점자본의 생존과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럽 자본주의와 미국 자본주의 사이에 차이가 없어도 유럽 자본주의는 조금 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입니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국익을 추구하는 것은 같습니다. 단지 개별적 요소, 즉 미국 국적의 특정 자본이 미국의 국익에 안맞는 경우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그러한 자본을 규제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미국의 독점 자본의 실체를 봉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신다면 미-중 무역전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읰ㅋㅋㅋㅋ 자본주의에 인간을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어딨습니까. 그 피에 물든 오물덩어리에. 오히려 역겨운 인두겁을 쓰고 나타난 더 끔찍한 괴물에 불과하지요.
계급적으로 중립적인 안보이익은 물론 없습니다! 중국의 모든 안보이익은 공산당의 영구집권과 동일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포함해 어떤 사회도 외국의 침공과 간섭을 포함한 재난과 범죄에 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대비는 지배계급과 통치엘리트들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한테도 이익을 줍니다. 현재 중국은 미국의 일체의 간섭을 무력화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강력 범죄율이 낮은 편인 나라이기도 하죠.
유럽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노동계급이 더 강했어서 국가를 위협할 정도가 되었기에 국가가 그 정도만큼 양보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 노동계급이 어느 정도 약화되었으니 다시 침탈하는 것에 불과하고요. 무슨 자본주의에 인간성이라는 알 수 없는 것이 침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당시 환경의 자본주의 실존에서 가능한 몇 안되는 방안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럽 노동계급이 투쟁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정도의 복지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모든 자본주의는 피에 물든 오물덩어리에서 기원했지만 유럽 사민주의 나라들의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보다 보통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장해줍니다. 그 차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저는 사민주의를 아주 혐오합니다.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데는 미국식 자본주의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고 사민주의하는 나라들이 엄청 미국에 굴종적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보통사람들에게 무슨 공통적인 수준의 이익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범죄가 많다는 것은 오히려 하층 계급을 국가가 강하게 억압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 전쟁으로 인해 국가의 손실은 지배 계급에게 더 큰 타격을 주지 노동계급에게 더 많은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그 전쟁터로 노동 계급을 보내는 것은 “상대 국가가 아니라” 그 국가 그 자체입니다.
유럽 노동자 계급이 미국 노동자 계급보다 더 투쟁했다, 아니다 - 이런 류의 얘기에는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 미국도 70년대까지는 나름의 미국식 사민주의국이었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죠. (유럽) 사민주의의 전성기가 지난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차이가 큽니다.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도 차이가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자꾸 말하지만 자본주의가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노동계급의 투쟁이 보존해 주는 것입니다. 그 양자의 차이를 명백히 구분하지 않으시네요 아까부터.
1960-70년대의 서구의 노동 투쟁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유럽 사민주의와 미국의 자본주의를 말하려고 하시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현재 중국은 결정적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소위 중진국 트랩을 벗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향후 10년 사이에 결판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미국과 그 애완국들 동맹이 가하는 압력에 굴하지 않고 국가 주도적 경제굴기를 계속 추구할 수 있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중국에 전쟁에 휘말리지도 않고 압력에 굴하지도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애초 그렇게 땅덩이 크고 인구 많은 나라가 그렇게 경제발전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을 쥐어짠다고 다 그정도 경제 발전을 할 수 있다면 지구상에는 조그만 중국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자본은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노동자들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면 - 계급 투쟁이라는 것도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동원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싑게하는 자원/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상식이 있어야 합니다 - 계급투쟁 자체가 힘들어집니다. 글로벌화를 포함해 자본주의가 자본가에게 더 유리한 그런 식의 변모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계급투쟁이 미미해졌다고 오랜 세월 누린 삶의 질이 갑자기 악화되는 것은 일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미국보다는 유럽 사민주의국들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그 나라들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