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버틀러의 21년도 인터뷰 번역입니다.

Q: 《젠더 트러블》이 출간된 지 31년이 지났습니다. 이 책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페미니즘 내 이성애적 규범들에 대한 비판을 의도했지만, 성별 범주에 대한 비판이 더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라는 의미는 10년 씩 지날때마다 동일하게 유지되진 않습니다. 여성이라는 범주는 변할 수 있고 변하고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여성의 더 큰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포함하도록 '여성'의 범주를 재고해야 합니다. 젠더의 역사적 의미는 규범이 재 제정, 거부 또는 재창조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성의 범주가 트랜스 여성을 포함하도록 확장된다고 해서 놀라거나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성성의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트랜스 남성이 '남성'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심지어 즐거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Q: 젠더 트러블의 중심 개념인 '수행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젠더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많은데, 어떤 의견이신가요?

A: 당시 저는 화행에 관한 학계의 일련의 논쟁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수행적' 화행은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하거나 새로운 현실을 만들려고 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판사가 판결을 선고하는 것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판사에게는 일반적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하지만 판사가 전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판사가 일련의 절차에 따라 일련의 관습을 인용하는 것일까요? 후자라면 판사는 개인이 아닌 지정된 권위로서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권한을 발동하는 것입니다. 판사의 행위는 인용이 되며, 판사는 정해진 절차를 반복합니다.



Q: 그게 젠더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A: 저는 30여 년 전에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의 내적 현실을 표현한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스스로를 재창조한다고 말할 때 성별에 대한 관습을 인용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제겐 우리 중 누구도 문화적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동시에 우리 중 누구도 문화적 규범에 의해서 완전히 결정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젠더는 역사적 제약을 극복하거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는 협상이자 투쟁이 됩니다. 우리가 '여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여성성의 영역, 즉 사회 내에서 여성성을 확립하는 일련의 관습이라는 (때로는 상충되기도 하는) 영역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만' 강요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현실은 변화할 수 있고, 실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Q: 오늘날의 퀴어들은 종종 젠더가 '태어날 때 지정된다(지정성별)'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의미는 꽤 다른 것 같네요.

A: 젠더는 한 번만 지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정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젠더를 지정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젠더를 '지정'하는 수 많은 기대들이 뒤따릅니다. 그렇게 하는 힘은 신체에 규범을 지정하고 재지정하고 신체를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동시에 규범에 반하는 방향으로 신체를 움직이게도 하는 젠더 장치의 일부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젠더를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그에 따른 모든 문화적 규범을 통해 부과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별은 또한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 우리는 그 지정하는 힘을 이어받아 법적 및 의학적 수준에서 성전환을 포함하는 자기 지정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Q: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요즘 정치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정적인 정체성 범주에 회의적인 사람으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저는 우리가 그 '중심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정치적 견해는 정체성이 정치의 기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맹, 연합, 연대는 확장하는 좌파의 핵심 용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반대하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그 초점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차이를 넘어 사회적 권력에 대한 복잡한 근거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가난한 사람, 불안정한 사람, 쫓겨난 사람, 성소수자(LGBTQI+), 노동자, 인종차별과 식민지 예속의 대상이 된 모든 사람들을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근거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 근거는 항상 별개의 집단이나 정체성에 대한 것만은 아니며 인종차별, 여성혐오, 동성애 혐오, 트랜스혐오에 대한 반대 뿐만 아니라 지구와 원주민의 삶의 방식 파괴를 포함한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파괴를 포함하는 중첩되고 상호 연결된 예속에 대한 것입니다.




Q: 아사드 하이더(오인된 정체성이라는 책이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됨)와 같은 이론가들은 미국의 인종 간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이론을 채택했습니다. 하이더는 정체성 형성이 불안정하고 항상 본질적이지 않다는 당신의 관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익은 보통 훨씬 더 고정된 정체성의 이상을 내세워 승리를 거두지 않나요?

A: 우파는 정당한 비판을 받은 정체성의 형식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종 정의를 위한 운동을 '정체성' 정치로 축소하거나 성적 자유를 위한 운동이나 성폭력 반대 운동을 '정체성'에만 관심이 있다는 식으로 희화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운동은 정의, 평등,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지를 재정의하는 데 주로 관심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운동은 급진적인 민주주의 운동에 필수적이므로 우리는 희화화를 거부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이는 좌파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특정 정체성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저는 우리가 사회와 경제 세계의 복잡성을 파악하거나 급진적 정의, 평등, 자유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분석을 하거나 동맹을 구축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정체성을 표시하는 것은 서로 연결된 억압에 더 잘 대응하기 위해 연합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는 방법입니다.

(Making identity: 뭐라고 번역해야할지 몰라 정체성 표시라고 번역했어요 한국 용어가 따로 있을지도... 정체성을 가시화하고 사회적 역학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억압과 차별 사이의 복잡한 상호 연결 및 교차점을 고려하는 것, 또한 정체성 가시화란 정체성을 사회에서의 경험, 관점 및 상호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인정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Q: 오늘날 우리는 억압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정치 철학자 올루페미 오타이는 특권적 관점을 '탈중심화'하려는 고귀한 의도가 오히려 쉽게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A: 네, 백인이 흑인의 경험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인이 인종 문제에 대해 개입을 완전히 거부한 채 마비되어있을 이유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직적인 인종차별을 추적, 폭로, 반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모든 흑인의 경험을 대변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백인들이 우리 자신의 특권에만 몰두한다면 우리는 자기도취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백인 중심주의를 재확산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길 거부하는 백인들이 더 이상 늘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Q: 당신의 성 정체성이 당신의 정치 이론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A: 저의 '성 정체성'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족뿐만 아니라 여러 학교 및 의료 권위에 의해 제게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정의하고 패배시키는 데 사용되는 언어를 점령하는 방법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가 흥미로웠던게 무엇이냐면, 제가 다양한 대명사들을 받은 이래로, 저는 여전히 대명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대명사를 정하거나 심지어 제가 선호하는 대명사가 무엇인지 물어볼 때면 항상 다소 놀랍고 감동을 받곤 합니다. 저는 'they(성별 중립의미로 쓰이는 단수 they)'의 세계를 즐기고 있지만 쉽게 답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젠더 트러블'을 썼을 때는 '논바이너리'라는 카테고리가 없었는데, 지금은 제가 그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을 이유가 없더라고요.



Q: 당신은 종종 전 세계 시위대의 표적이 되어 왔습니다. 2014년 프랑스에서는 동성 결혼 반대 시위대가 '젠더 이론 (théorie du genre) '을 비난하며 거리 행진을 벌였습니다. 2017년에는 브라질의 복음주의 기독교 시위대가 '당신의 이데올로기를 지옥으로 가져가라'고 외치며 당신을 본따 만든 인형을 화형에 처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젠더 이데올로기 운동은 성이 생물학적이며 실제적이라고 주장하거나 성은 신이 정한 것이고, 반면에 젠더는 파괴적인 허구이며 '인간'과 '문명', '신'을 모두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동성애 정치는 바티칸과 여러 대륙의 보수적인 복음주의 및 사도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의 쇠퇴를 흡수하기 위해 규범적 가족이 필요한 프랑스와 다른 곳의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강화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반페미니즘, 동성애 혐오, 성전환 혐오를 동시에 표방하며 재생산의 자유와 트랜스젠더 권리 모두에 반대합니다. 이 운동은 젠더 연구 프로그램을 검열하고, 젊은이들이 토론해야 할 중요한 주제인 젠더를 공교육에서 제외시키려고 합니다. 또한 성적 자유, 성 평등, 성 차별 및 성폭력 금지법을 위한 주요 법적 및 입법적 성공을 되돌리려고 합니다.



Q: 당신은 항상 당신의 젠더 이론이 학문적 논쟁뿐만 아니라 레즈비언과 게이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얻은 정보에 기반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당신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상가가 되었습니다. 커밍아웃 이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나요?

A: 저는 커밍아웃한 적이 없습니다. 14살 때 부모님에 의해 아웃팅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50년 넘게 부치, 퀴어, 트랜스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어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매우 자주 드나들었던 게이 및 레즈비언 바의 영향을 확실히 받았으며, 그 당시에는 양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저는 인터섹스 그룹을 만나 그들이 의료 시설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었고, 결국 여장, 트랜스젠더, 성별 일반의 차이에 대해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비학문적 활동가 그룹에 참여해왔고, 이는 제 인생에서 계속된 부분입니다.



Q: '퀴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에 래디컬 게이와 레즈비언 정치에서는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었나요?

A: 제가 젊었을 때의 시위는 분명 커밍아웃할 권리, 차별과 병리화, 폭력에 대한 투쟁이었으며, 가정과 공공장소 모두에서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정신병리화와 그로 인한 치명적인 결과에 맞서 싸웠습니다. 또한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몸으로 살 수 있는 집단적 권리, 우리가 잃은 생명들과 사랑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슬퍼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 투쟁은 HIV가 등장하고 Act Up이 등장하면서 매우 극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Act up 즉,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은 1980년대에 HIV/AIDS 전염병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한 국제 옹호 단체입니다. 위기에 대한 정부 및 의료 대응의 부족과 HIV/AIDS 환자가 직면한 차별 및 낙인을 해결하기 위한 직접 행동, 시위 및 시민 불복종을 위해 설립됐습니다.)

저에게 퀴어는 정체성이 아니라 동성애 혐오에 대항하는 투쟁에 동참하는 방식이었어요. 사실 퀴어는 정체성 단속에 반대하는 운동, 즉 경찰(단어 그대로 보다는 법집행기관과 규범 및 사회 구조를 의미하는 것 같네요)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위는 의료, 교육, 공공의 자유에 대한 권리,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우리는 더 쉽게 숨 쉬고 움직이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새로운 형태의 친족 관계, 공동체, 연대를 상상하고 창조했습니다, 비록 그 형태가 때때로 분열되기도 했을지라도요.

저는 다이크(레즈비언의 한 부류) 시위에 나갔지만 또한 국제 인권에 대해서도 일했기에 그 한계가 무엇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인종차별, 경제적 불의, 식민주의에 동등하게 반대하는 광범위한 연대가 퀴어 정치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죠. 퀴어 마르크스주의 그룹, 경제 및 인종 정의를 위한 퀴어,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퀴어, 점령과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그룹인 'alQaws'에서 이 원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alQaws: 사회적, 문화적 및 정치적 차별을 겪는 성 소수자 및 성 소수자 커뮤니티를 지원하기 위해 활동하는 팔레스타인의 비영리 단체입니다.)



Q: 오늘날의 정치 일상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A: 오늘날 나는 특히 의료와 교육을 공공재로 바라보는 퀴어와 페미니스트 운동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반자본주의적이며 인종 정의, 장애권리, 팔레스타인 정치적 자유에 대한 투쟁에 헌신적이며 또한 지구의 파괴와 원주민 생활 세계에 반대합니다. 이는 자스비르 푸아르, 사라 아메드, 실비아 페데리치, 앤젤라 데이비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합니다. "Ni Una Menos"와 폐지 페미니즘(abolition feminism)의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보다 더 넓은 전망이 나타나고 있으나 또한 전염병으로 인해 세계적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는 어려운 시기기도 합니다.

(abolition feminism : 징벌적 사법 시스템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페미니즘의 한 갈래입니다.)



Q: 많은 성 정체성 이론가들이 여러분의 작품이 그들에게 미친 직접적인 영향에 대해 썼습니다. 줄리아 세라노 '주디스 버틀러 엿먹어라!'라는 구절이 포함된 시 낭독 행사에 참석한 부끄러운 경험을 회상했고 조디 로젠버그는 '어머니날의 젠더 트러블'에 몰입도 높은 성찰을 썼습니다. 지적 유명인이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어떤 느낌이었나요?

A: 제 이름에 걸맞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건 매우 도움이 되었어요. 많은 퀴어와 트랜스분들이 자신의 이름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점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아마 제 생존은 제 이름과 거리를 두고 살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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