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대에 중국의 중체서용, 조선의 동도서기,일본의 화혼양재라는 개념이 제기되었음.

세 가지 개념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제기되었는데 서양의 물질문명은 기꺼이 수용하겠지만 동양의 정신적 가치는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동아시아인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음. 그런데 중국과 한국은 실패하고 일본만 성공했지. 왜일까?

우선 동도서기를 살펴보면 동도서기의 가장 모범적 사례는 가령 이런 것임. 아침에 자명종 소리에 일찍 눈을 뜨고 식사를 간단히 하고 상쾌하게 비데를 이용해 용변을 봄. 그리고 안경을 쓰고 주역을 읽음. 오랜만에 스승에게 전화가 오니까 무릎을 꿇은 자세로 전화기를 받쳐 들고 머리를 조아리며 스승과 통화를 함. 스승을 찾아뵙고자 검정 세단을 몰고 병원을 감. 스승은 병원에 입원하신 상황이지만 적절한 항생제 치료로 이삼일 후면 퇴원이 가능함. 이런 상황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스승의 제자들이 일제히 스승의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내용의 글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의 댓글을 다는거지.

과연 이런 동도서기적 유토피아는 가능할까? 단언컨대 불가능함. 현실은

자명종 따위에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음.  자연적 기의 흐름에 따라 이른 시각에 저절로 눈을 뜨는 것이 진정한 도학자의 자세임. 비데도 꺼림칙함. 낭비되는 물이 자연을 파괴할 것을 우려하면서 새끼줄만 이용하는게 나음.  검정 세단도 적절치 않음. 자연을 파괴하면서 휘발유를 사용하는 것은 우주적 기의 순환작용에 역행하는 행위이기 때문임.  종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지만 한의사는 치료할 줄을 몰라 쩔쩔매고 온천수로 씻겨 보지만 그때뿐임. 블로그에는 남자만 글을 올릴 수 있으며 여자가 블로그질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됨. 장유유서가 무너진 인터넷 공간은 악 그 자체임.

정신문명과 기술문명이 구분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넌센스임.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을 과연 19세기 동도서기론자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선 남녀와 노소에 관한 기존의 관념을 버려야만 함. 서양의학을 수용하기 위해선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한 동양의학을 버려야 함. 서양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왕정체제를 버려야만 함.

동도서기론이란 이를테면 왕정체제를 유지하면서 서양의 정치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남녀 차별과 장유유서 관념을 유지하면서 인터넷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이니 성공할 리가 있냐?

일본은 중국 및 조선과는 다른 길을 걸었음. 그들이 내세운 화혼양재란 실질적으로 베버(M. Weber)가 말한 탈주술(Entzauberung)의 길임. 탈주술이란 일체의 주술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 탈주술이란 일체의 주술적 요소를 신(God)에게 맡기는 것이며 주술적 요소를 신에게 맡기고 나면 인간 세계에는 탈주술적 요소밖에 남지 않음. 주술적 요소를 완전히 신에게만 맡겨버린 인간은 현세에서 탈주술적 측면, 즉 과학과 기술, 자본주의를 마음껏 발달시킬 수 있게 됨. 그러한 과학과 기술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고 하는 서양의 정신문명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 하나님 하나만 절대적 존재이며 그 밑의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신분제도의 극복은 탈주술로 인해 가능했던 것임.

극단적 내세주의 사상을 주장하는 기독교가 바로 그 길을 걸었는데 기독교는 주술적 측면을 철저히 신과 내세에만 맡겼음. 그 결과 현세는 완전히 탈주술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영혼이 빠져 나간 인간의 몸을 해부하는 것은 신에 대한 불경이 아니게 됨. 신은 우주를 창조하셨고 과학자는 그 창조된 질서를 합리적으로 신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마음껏 발견할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임.

일본의 근대 사상가들 또한 이런 길을 걸었음. 그들은 극단적 탈주술과 극단적 주술적 세계관을 동시에 지녔는데 그들은 한편으로는 귀신이 없다느니 동양의 정신적 가치를 부정하느니 하면서 대단히 합리적인 태도를 지녔음. 그러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정신적 중심인 덴노(天皇)를 신격화함으로써 탈주술적 요소와 주술적 요소가 극적으로 갈라져 동거할 수 있는 지점이 되게 됨.

일본의 근대는 주술적 요소를 온전히 덴노에게 맡김으로써 덴노의 말씀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사상을 주입시킴으로써 덴노가 맡은 주술적 측면 이외의 모든 측면은 탈주술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음. 덴노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자고 하면 그대로 따를 뿐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터부시 됨.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주장을 그대로 따를 뿐 그에 대한 아무런 의심도 제기해서는 안 되는 기독교의 교리와 마찬가지임. 덴노의 절대적인 명령에 따라 일본인들은 현세를 일사분란하게 탈주술적으로 발전시키게 되고 이것이 바로 동도서기 및 중체서용과 화혼양재의 차이점임.

즉, 화혼양재란 “일본의 혼과 서양의 기술문명”의 결합이 아니라 “덴노의 혼과 서양의 기술 및 정신”의 결합을 의미했음. 그런 덴노의 영역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서 대신 현실세계에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거임. 난징에서 수십만 명을 학살해도 괜찮고 731부대에서 살아 있는 사람 몸을 칼로 가르고 장난질을 쳐도 괜찮음. 결국 덴노의 초월적 명령이 중요한 것이며 현실에선 덴노의 명령대로 서구의 기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도 좋은거임.

즉 동도서기와 중체서용은 화혼양재와는 다른 결과를 빚을수밖에 없었음. 중국과 조선에는 하나님이나 덴노와 같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없었음. 따라서 현실을 완벽히 탈주술화할 수가 없었으며 현실은 늘 주술적 요소와 과학적 요소가 뒤범벅이었음. 결론적으로 덴노와 하나님께 초월적 영역을 양보한 대신 현실의 정신적, 물질적 측면을 일관되게 탈주술화할 수 있었던 유럽과 일본의 근대화를 이룰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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