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무렵 대학가엔 반제직접투쟁론(AIDS)을 주장하는 일련의 그룹이 있었다. 그리고 86년 초 “미제의 스파이 박헌영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강철’ 명의의 팸플릿이 나타난다. 학생운동권에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NLPDR)을 표방하는 NL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초였다. NL계는 87년 6월 항쟁을 주도하면서 학생운동의 다수파를 이룬다. “호헌 철폐, 직선 개헌”이란 외침은 대중노선을 지향한 이들의 노선을 단적으로 드러내준 구호였다. 그러나 88년 북한 관련 서적이 대거 출판되는 것과 맞물려, NL계 안에선 입장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서울대 운동권 출신의 한 인사는 “88년 초부터 입장 차이가 생겨 89년엔 NL계 안에 3∼4개의 흐름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86년의 구국학생연맹 조직노선을 이어받은 ‘반제청년동맹’ 등의 RMO(혁명적 대중조직)론과, 88년 조국통일투쟁을 주도한 ‘조국통일’ 그룹, 학생회와 대중조직을 강조하면서 전대협의 주류를 이뤘던 ‘자주민주통일(자민통)’ 그룹 등이다. 줄기에선 그리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반미투쟁과 조국통일투쟁, 반파쇼 민주화투쟁을 각각 강조했다고 한다.주체사상의 수령론과 혁명이론, 사회성격론, 조직노선 등에 대한 차이도 드러났다. 89년 말께 ‘관악자주파’는 NLPDR론을 북한과 다르게 해석하고 주체사상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상당수 NL그룹은 수령론을 포함한 주체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맞섰다. 이런 상황은 91년께까지 계속됐다.한편 상대적으로 학생회 등 대중조직을 중시하지 않던 RMO 계열은 92년 대선 때 범민주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면서 세력을 얻었다. 그 뒤 이 그룹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대선 때 독자후보에 입각한 연합전술을 주장했던 ‘관악자주파’는 93년 무렵, 일부 PD(민중민주)계와 함께 지금의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의 전신체를 꾸린다.90년대 중반부터는 RMO 계열도 분화하기 시작했다. 수령관을 받아들이며 주체사상을 따르는 ‘정통 주사’ 그룹과, 주체사상을 독자적으로 해석하는 그룹 등으로 나뉘었다. ‘사람사랑’으로 불렸던 그룹은 후자에 속한다. 이 두 그룹이 요즘의 한총련 NL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민주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전북총련의 경우도 한때 ‘사람사랑’쪽으로 분류됐으나, 이후 ‘인간 중심’을 표방하면서 지난해 한총련을 탈퇴했다.
한겨레21 1999년 09월 23일 제276호
한겨레21 1999년 09월 23일 제276호
링크등록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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