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생운동을 시작할 때, 한총련은 이적단체였고 열혈청춘들은 국가보안법에 의한 수배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한총련 대의원(단과대 학생회장 이상)이 되었다.
김영삼 정부가 저지른 최고의 패악질인데 김대중 정부 때도 그 탄압은 여전했고, 노무현 정부가 되면서도 수배자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달라진 것은 경찰에 출두해서 형식 상의 탈퇴서(라고 쓰고 실제로는 반성문)를 쓰면 정상참작이 되어서 실형을 살지는 않았다. 물론 그전에도 알아서 한총련 탈퇴서를 쓰러 경찰서에 가던 사람들도 있었다더라.
그러나 그것을 투항이라고, 전향이라고 여긴 신념의 강자들은 그 탈퇴서를 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그렇게 큰 일인가 싶다가도 영화 <암살>에 나온 항일독립운동가들과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선배들을 따라배우자던 한총련 대학생들에게 그 결정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는 소위 PD성향의 대의원들도 따로 조직을 결성하지 않고 함께 한총련 활동을 했었는데, NL은 싫어도 경찰과 공안당국에 투항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감옥행을 택한 대의원들도 있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1997년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지정당한 이후부터 대의원 이상을 한 수천 명이 양심수였다. 그 수많은 양심수들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또다른 아버지였던 분이 바로 사진의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님이시다.
당시 나는 수배자들을 보호하거나 빼돌려서 도망보내는 일들을 했던 적이 제법 있었는데, 그러다가 수배자들이 경찰의 보안수사대에 의해서 연행이 되면 가장 먼저 대공분실 앞으로 달려오신 분이 권오헌 선생님이셨다. 누구보다 날카롭고 뜨거운 발언을 하셨고, 따뜻한 가슴으로 한총련 열혈청춘들과 잡혀간 수배자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안아주셨다.
이외에도 말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경험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어르신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왜 그리 감동받았는지 모른다. 대한민국에 있었던 그 수많은 양심수들은 권오헌 선생님이 없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버티지 못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저녁 7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양심수 석방문화제>에서 마지막 순서로 나오셔서 발언을 하셨는데, 지금 폐암 4기로 투병 중이시라고 한다. 말씀을 하시다가 기침을 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광장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예의 그 날카롭고 따뜻한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다.
*한총련 세대 학생운동가가 쓴 글을 가져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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