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의 주축 중 대부분은 소위 명문대학교 재학생, 혹은 그 출신들이 독점하였다. 운동권 세력판도가 NL, PD 계파로 분류되기 이전에 이미 출신 대학에 따라 서열이 갈려지는 셈이었는데, 명문대 출신과 3류대 출신이 똑같이 운동권 활동을 벌일 경우 3류대 운동권은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비웃음을 사고, 해당 학교 학생들의 호응도 이끌어내기 어려워서 적극적으로 운동권에 개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심한 경우에는 명문대가 주축이 된 운동권 조직이 3류대 학생회에 개입해 학내분규를 조장 혹은 학생회 자금만 유용해 버리고 발을 빼는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 학벌과 학력 덕분에 명문대 출신들은 사회에서 한 자리씩 하는 선배들의 도움을 받거나, 사상적 전향 이후에도 국가고시든 어디든 먹고 살 길과 능력이 있었지만[15], 3류대가 운동권 전력을 가질 경우 앞날이 심하게 암담했다(...). 운동권 활동한다고 성적도 좋지 못할 경우 구직에 직접적으로 지장이 가다보니, 평판도 나빠지고 낙인이 제대로 찍혀서, 따로 먹고 살 만한 능력이 없는 이상 정말 미래가 답답해지는 것.[16][17]

게다가 3류는커녕 아예 대학조차 나오지 못한 일부 노동자 출신 운동가들은, 위장취업했다 전향하거나 위장취업을 포기하는 등의 여러 이유로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 운동권들을 보며 '돌아갈 집이 있다는 말이 저런 것이었구나'라며 더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애초 386은 학생만 조명했지 노동자들은 들러리일 뿐이었다는 것.(참고영상)[18]

여담으로 이런 운동권 출신들의 악습적인 학벌 차별[19]을 줄곧 당한 인사 중엔 고졸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다. 그래서 유시민 전 장관의 경우 "일부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힌 운동권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었다"며 서울대 출신인 자신이 고졸인 노무현을 공개지지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영상.

이런 경향은 그 뒤에도 여전하다. 2006년 인천 5.3 운동 20주년을 맞이해서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열렸는데, 이곳에 초대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명문대 학생운동권들, 당시 지역공장에 위장취업했던 학생운동가들(일명 학출) 일색이었고, 당시 시위대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평범한 노동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노동자들이 가두정치투쟁에 나섰던 최초의 투쟁이라고 추켜세우면서 노동자는 빼버리는 코메디를 연출한 것이다.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