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l danger is that if we hear enough lies, then we no longer recognize the truth at all."

발레리 레가소프



1. 계속된 경고를 무시했다


1986년 4월 26일 소비에트연방(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북부 도시 프리피야트. 잠에서 깬 루드밀라의 눈에 저 멀리서 번쩍, 빛줄기가 보입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데 소방관인 남편 바실리가 긴급 호출을 받자 루드밀라는 불안해집니다. 

이 시각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원전). 직원들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올라오지만, 현장 책임자 디아틀로프는 단순 화재일 뿐이라고 역정을 냅니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피를 토하는데 말이죠.

지역 위원회에선 긴급회의가 열리고 한 의원이 “보고보다 심각한 것 같으니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경고하지만, 위원장의 한마디에 오히려 도시가 봉쇄되고 맙니다.

“위험하지 않다고 국가가 말하고 있네. 인민들이야 경찰을 보면 겁을 먹을 거야. 도시를 봉쇄하게. 전화선을 끊어 그릇된 정보의 확산을 막게.”


결국 사고 지역 주변 30km 이내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지지만, 방사능 낙진은 영국과 스웨덴까지 날아간 후였습니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이런 일이 반복됩니다. 
2. 보고 절차 복잡했고 책임 떠넘기기 급급했다
‘체르노빌’에도 이런 '웃픈' 장면이 나옵니다. 발전소장이 높으신 분들께 보고하는 장면이죠. 
“제가 마린 부서기관에게 보고했고, 마린이 프롤리셰프 부서장에게, 프롤리셰프가 중앙위 위원 돌기크에게, 돌기크께서 고르바초프 서기장께 보고했습니다." 

이 중요한 일을 알리는데 대체 몇 다리를 거쳐야 하는 건지요. 그는 슈체르비나 에너지부 장관이 현장에 오자 한달음에 달려가 서류를 건넵니다. 엄청난 기밀정보인 줄 알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죠.


“책임 소재가 있는 인원 명단입니다, 장관님.”

발전소장이 엔지니어를 탓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련 정부는 이 모든 죄를 발전소장 등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진실이 아니라) 잘못을 씌울 자”(‘체르노빌’에서)이기 때문일까요.



3. 정보 공개 쉬쉬하고 차단에만 힘썼다


1986년의 체르노빌은 어땠을까요. 

원전 폭발 사후 처리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던 슈체르비나 장관은 자신과 함께 일하던 핵물리학자 레가소프 교수에게 조용한 산책을 제안합니다. 

‘바빠 죽겠는데 웬 산책이냐’ 불평하던 레가소프 교수는 낯선 이들이 따라오는 걸 보고서야 장관의 의중을 눈치채죠. KGB(소련 정보기관)가 감시하고 있었던 겁니다.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보려 애쓰는 이들을 도와주기는커녕 혹시나 이 일을 소문낼까 걱정해 도청은 기본이요 미행까지, 이들을 감시하는 데만 힘을 쏟은 겁니다.

사고 원인 조사를 위해 백방으로 뛰던 핵물리학자 울라나는, 심지어 도서관에서 논문 대출마저 거부당하는데요. 소련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보를 은폐하고, 진실을 캐내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데만 전력을 다한 겁니다. 


4. 환자들은 방치됐다


발전소 화재를 진압하러 갔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루드밀라는 미칠 지경입니다. 수소문해보니 모스크바 병원으로 옮겨졌다네요. 피폭당한 사람과 접촉해선 안 되지만 그에게 방사능의 위험성을 제대로 경고해준 사람은 없었고, 루드밀라는 남편이 죽을 때까지 곁에 있게 됩니다. 그 후 홀로 아이를 낳지만 아이는 곧 죽고 말죠. 방사능의 무서운 후유증이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소련 정부는 끝까지 피폭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 암 발병률이 대폭 증가했는데도 침묵했죠. 

“방사능으로 인한 질병과 사망이 빈번했음에도 소련 정부는 공식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1987년까지 소련 정부가 내놓은 공식 사망자 수는 31명이었다.” (‘체르노빌’에서)

그리고 21세기 반복된 테이프처럼 우한에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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