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문화를 좋아하고 일본인들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재밌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적 적대감이나 경쟁의식은 딱히 없다. 심지어 역사문제에서도 일본의 입장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고 박유하 교수에 대한 처벌에 반대한다. 토착왜구 척결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아마 나의 취향과 역사관을 알면 나 역시 척결하려 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습관적으로 일본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자국을 비하하는 일뽕형 국까에 더욱 찬동하기 어렵다. 애초에 우리와 일본의 직접적인 비교는 어려울뿐만 아니라 역사적 조건 자체가 너무 다르다. 한일 문제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국까든 국뽕이든 공통적인 문제는 서로 다른 역사적 경로에 억지로 가치의 우열을 두려 하는 데 있다.

일뽕=국까들부터 보자. 역사적으로 우리가 일본에 비해 근대화도 늦고 가난했다는 것이 이들의 근원적인 콤플렉스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기원적 이미지를 '후진적이고 가난한 조선후기'와 근대화된 일본 혹은 이미 발달한 상업을 가진 에도시대의 화려한 도시문화의 비교에서 찾는다.

하지만 후진적이고 가난한 조선이란 이미지 자체가 이미 근대화로 동양을 앞지른 서구의 시각에서 비춰진 상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 이미지는 상당부분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더럽고 불결한 조선에 대한 보고를 남긴 선교사들 그리고 식민지 관료들의 기록에서 연원한다. 그런데 상하수도를 제대로 못갖춘 비위생적 생활상에 대한 고발은 불과 몇십년 전 일본에 대해서도 똑같이 되풀이됐을 뿐만 아니라 그게 몇세대 전 선교사 자신들 조상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리고 에도시대의 화려한 상업이 무엇을 대가로 치른 것인지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일면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성곽 주변의 화려한 도시문화와 상업은 영주와 무사계급의 사치와 무력과시를 기반으로 하며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수요와 단절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업은 물론 농업생산력도 고만고만한 전근대사회에서 으레 그렇듯 발달한 상업은 외부사회에 대한 잔혹한 약탈(전쟁) 혹은 내부로부터의 가혹한 수탈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반면 조선은 건국이념부터 농민 중심의 복지국가를 지향했고 농업시설과 도구 개량 그리고 기술보급을 국가시책으로 삼은 명실상부 '농업 사회주의 국가'였다. 안정적인 농업 인적자본 축적을 위해 향촌사회의 안정과 도덕적 교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는 '농민은 살려서는 안되지만 죽여서도 안된다'는 중세 일본 위정자의 잔혹한 금언과 정 반대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가난했을지언정 조선시대 농민의 평균적 삶의 수준은 비교적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전란과 개인의 변덕에 좌우되는 잔혹한 통치보다는 수백년간 안정된 농촌사회 내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도덕적 규범을 따르는 통치 아래 있는 게 농민 입장에서 훨씬 낫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전근대 시대 전반을 보더라도 조선 농민으로 태어나는 건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양란을 거치고 나서도 빠르게 높은 인구밀도를 회복한 것은 조선만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전란으로 토지를 잃고 뿔뿔이 흩어진 인구를 단기간 내 다시 농촌사회로 불러들이고 이들이 다시 높은 인구증가율을 가져온 것이다. 요새말로 조선이 가진 사회적 자본이다.

물론 전근대사회의 제약 속에서 '상업'과 마찬가지로 '농촌복지'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전근대사회에서 농업생산력을 아무리 발전시켜도 인구부양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맬서스 함정'에 빠진다. 그것이 많은 경제사학자들이 지적하는 후기 조선사회의 위기이다. 농업발달로 인구밀도는 높아졌지만 농업기계와 비료가 도입되기 이전이라 노동생산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고 토지도 쉽게 늘릴 수 없어 생활수준이 정체/하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설상가상으로 인구증가는 유교적 관료국가인 조선의 행정비용을 늘린다. 인구증가에 따라 토지의 집약도는 증가하는데 정작 국가는 토지 한 단위당 정률(1/10 미만)의 세금을 매기던 유교적 조세원칙을 고수하느라 나중에는 하급관료와 군인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이런 경제적 모순이 임진왜란부터 나타는 군대의 약체화(어느 순간부터 조선은 대규모 회전 자체를 사실상 포기하게 된다)와 하급관료의 중간수탈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조선과 같은 농촌 복지국가가 부딪힌 모순은 일본처럼 봉건제 아래 상업을 발달시킨 전근대적 사회의 질곡(ex영주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영지의 나무를 베면 당장 추워서 죽게 생긴 사람도 베어버리는 행태)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에도시대와 후기조선을 비교해도 쉽게 우위를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전근대 사회의 일본이 결국 근대화의 승기를 먼저 잡았다는 점에서 결과론적인 일본 우위론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그 동안 많았다. 하지만 일본이 근대화라는 지표에서 명확히 우리보다 문명적 우위에 있었던 시기는 200년도 채 안된다. 그에 비해 전근대 사회에서 한국이 경제적 생활수준이나 문화에서 명백한 문명적 우위를 점한 것은 2000년이 넘는다. 게다가 일본이 우리보다 근대 문명적 우위를 점하는 시기도 이제 끝나고 있다. 어쩌면 이미 끝났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교통 통신 인프라가 일본을 추월한 건 이미 10년 전의 일이다. 중간재를 제외하고 부가가치율이 높은 최종 무역재의 기술력과 생산성에서 일본이 명확히 우위를 점하는 분야는 거의 없다. 심지어 국민 1인당 생활수준도 따라잡혔다. 실질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1인당 생활수준에서 한국이 일본을 이미 역전했다. 문화는 물론 정치에서도 무엇하나 일본의 우위를 단언할 수 없게 됐다.

신기한 게 토착왜구를 척결해야 한다고 광분하는 사람들이나 한국을 얕잡아 보는 일뽕들이나 한국이 이미 일본을 따라잡았고 일부 추월했다는 점을 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도한 일뽕과 국뽕 양극단을 오가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우리가 기록된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일본보다 열위에 있지 않았으며 근대적 기준에서 보더라도 이제 일본보다 못하지 않다는 단순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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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어저께 제식갤애들이 분탕친거 기억하잖아

나도 그 분탕질보고 예전에 봤던 박가분 폐북에 쓴글 떠올라서 그 글을 갤에 올려봤음

너희들이 박가분을  별로라고 생각하는건 알지만 이 글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