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백 초기에 반란군 장교들 체포해도 걍 불쌍하다고 대충 석방하는 경우만 봐도 그렇지
그런 애들 대부분이 또 반란군 조직해와서 잡혀오는데 그때서야 처벌하고 그랬지.
강제 수용소니 굴라그니 자유투사들이 인권문제로 선전하기도 하는데, 소련에서 내전 때문에 수감자가 가장 많은 해의 수감률보다 미국의 평시 수감률이 훨씬 높다는건 아는지 되묻고 싶음.
소련은 그 어려운 시기임에도 온건한게 문제가 될 정도로 졸라 온건한 사회였음. 당시 야만으로 가득찼던 제국주의 국가들과 비교하면 답 바로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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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정치적 숙청? 우리편에 총쏘는 세력 잡아가두면 정치적 숙청임? 지금 스탈린 시기 얘기하는거 아닌건 알지?
내전으로 망가진 시회보다 평화로운 사회의 수감률이 높다는 것에서 이상한거 못느낌?
처음부터 이 글은 소련 초기를 말한거고, 심지어 너가 말하는 스탈린 시대에서도 수감률은 내전 시기를 못넘었음. 그리고 행정력이 맛이 갔으면 반란군+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폭적 지원을 어케 막아냈겠노? 내가 망가졌다고 한건 오랜 전쟁에 의한 사회의 황량화일 뿐이고, 당시 지도부와 정부는 굳건하고 행정은 정상적으로 기능했음.
씹창난것도 씹창난건데 그 동네는 교도소도 민영화해서, 마약과의 전쟁한답시고 단순 마약중독자들한테 10년형싹 때리던게 불과 30년 전 일이기도 함. 미국이라고 첼시 매닝같은 내부고발자들 수감 안하는것도 아니고
피장파장이 아니라 미국보다 소련이 민중의 인권 상황이 훨씬 나았던 사회임. 심지어 그 무시무시하다는 스탈린시대에서조차도 그러하다. 그런걸 무시하면서 자유투사들이 일방적으로 소련을 공격할 당위도 근거도 없음. 나도 소련이 이상사회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유주의 미국보다는 훨씬 나은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 뿐임.
뭐 동일비교하는데 오류는 딱히 없다는거지. 결국 똑같은 짓에 플러스 알파해서 수감률이 그모냥이니
그러면서 농민대중들에게는 한없이 차갑게 대우한 소비에트 ㅠ
그래서 농토 분배한게 어떤 정부노?
그래서 반란 일으킨 농민들에게는 독가스와 가족 인질로 대처한건 어떤정부노?
농민이면 소비에트 정권에 대항해 반란해도 무사하리라는 건 어디서 나온 발상이노?
반란이 진압해야되는건 당연한 도리긴 한다쳐도 내전이라는 명분하에 억압적 조치가 정당화 되기엔 좀 엇나간게 있지 않았누 뭐 이것도 일시적인거라하면 그것도 맞지만
소비에트도 농민들한텐 한없이 가혹했지
못살겠다고 들고일어난게 아니라 비축식량 공출에 맞서 들고 일어난거지. 근데 흉작과 내전이 겹친 상황에서 공출할만한 비축식량이 있는 농민은 부농이나 최소 중농일까 아니면 빈농일까.
대규모 아사를 막고 노동자 농민의 정부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수적인 식량공출에 반대하는 부농의 반란이이라고 봐야지.
크트 통피는 들고 일어났다는게 언제를 말하는건지... 쿨락 반란 말하는거임?
파리 코뮌의 교훈을 잊었냐고 볼셰비키 탓해도 할말 없음. 그런 순진한 행동은 다음번에는 다시는 반복되서는 안 될 실수다.
스탈린주의는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Ja
소련 초기경제에서 굴라그에 의한 강제노동이 빠질수가 없는데 너무 온건했다? 실화? - dc App
님도 온건하게 우랄산맥에서 나무 베면서 함 노동해보쉴? - dc App
근거는?
30년대 이전 노동교화형 통계를 들고오고 그런 말을 하던가.
소련의 주 공업지대였던 우랄산맥이나 카프카스 개발을 그럼 누가 주도했다 생각함? 소련 초기 주요 생산품이였던 각종 광물이나 목재등 각종 원자재를 과연 누가 그 힘든 개짓거리를 해서 소련성장에 기여했을까 - dc App
1학년때 소련관련 영문책찾아보다 나온거라 지금 찾으라면 시간이 좀 걸리긴하는데 당시 소련개발상황이 지방에 대한 제국주의적 약탈자 이다란 소리까지 본 기억이 생생한데 참 이거야뭔 - dc App
ㅋㅋㅋ 소련 초기에 얼마 있지도 않은 굴라그가 어떻게 광물을 캐고 나무를 벰? 그렇게 써먹을 수형자가 많았으면 왜 트로츠키가 노동의 군사화로 제대 장병들과 타지역 노동자들 투입해서 원자재 수급함?
군대까지 개발활동에 굴릴정도로 소련은 자복축적에 급급했는데 그럼 수형자들은 가만히 냅뒀겠음? - dc App
당연히 노동에 의한 교화는 소비에트 초기부터 중요한 개념이였는데 그럼 그게 온건 운운한거랑은 무슨 상관임 대체
For example, in the Urals region alone, the forestry industry would require more than 500, 000 workers in 1929 and 1930.Matters were further complicated by the terrible conditions at ma - dc App
걍 구글링좀만해보니 이런말 튀어나오는데유? - dc App
굴라그 인구가 폭증하고 생활수준은 떨어져서 경제적 '이익'이 의미가 될 정도로 굴라그 굴린건 30년대부터고요
게이는 1929,1930이란 말이 안보이노
at many civilian camp. workers faced inadequate housing, food and frequently fled their jobs - dc App
'소련 초기경제' 운운하고 위의 본문도 소련 초기의 정치적 탄압(의 부족)에 대한 내용인데 20년대말 30년대 초 얘기는 대체 왜 꺼내노
1920-30이 초기가 아니면 시벌 대체 언제가 초기임? - dc App
1917-1920년대 중반 정도가 초기지. 본문만 잘 읽어봐도 '적백내전' 얘기중인데.
밑에 댓글로 뭔 수감률로 인민에게 따뜻한 정부 이러길래 쓴건데 그럼 윗댓글은 뭐임? - dc App
게이는 초기란 말이 무슨뜻인지 모르노
내가 쓴 댓글은 아니지만 그것도 내전기 얘기지 스탈린 시기 얘기가 아닌데
맨 댓글 중간에 '심지어 네가 말하는 스탈린 시기에서도'란 말이 있네. 상식적으로 그럼 이 이전에 말하던건 스탈린 시기 얘기가 '아니라는' 게 당연하지
아니 정부수립 십몇년도 안된 시기가 20-30시기인데 이때가 소련초기지 아님 뭔 중기여? 소련이 한 50년쯤에 망했누? - dc App
초기, 초반은 시작부터 특정 기간까지를 이르는 상대적인 말이고 당연히 맥락에 따라 다름. 본문에서 분명히 혁명과 내전기를 다루고 있단걸 알 수 있는데 '소련 초기'라고 댓글 단걸 가지고 뜬금없이 스탈린 시기를 지칭한다고 예측하라는 소리임?
남이 관심법이라도 써주길 바라나
너가쓴글은 아니긴한데 윗댓글만봐도 스탈린시대에도 소련의 인권상황 뭐시기하길래 어이없어서 쓴글이긴 함. 근데 10년대에는 강제수형같은게 없었다는 데이터같은건 있냐? - dc App
강제수형이 무슨뜻임. 수형이 당연히 강제지. 그리고 수형자를 노동에 투입하는 건 현대 남한에서도 하는 일이고. 노동교화는 당연히 10년대~20년대 초중반에도 있었지만 1. 그게 경제적,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 정도로 많은 숫자고 2. 누명, 정치사상 등으로 마구잡이로 수감되고 3. 노동교화소의 생활수준이 폭락한건 스탈린 시기의 일임.
강제노동이나 노동교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끔찍하게 열악한 조건에서 그거 하다가 죽어나가는게 문제지.
스탈린 시기 전까지는 아니였더라도 당장 ㅅ련에서 굴라그의 공식적인 성립이 1919년이고 레닌죽고 스탈린이 정권잡은게 22년인데 그걸 구분하는게 뭔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진짜 현대의 노동교화와 그당시의 노동교화가 1:1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도 의문이고 - dc App
위에도 말했지만 뭔 소련시기 전체 이후까지 인권이 보장되니 마니 이런말이 어이없어서 쓴글이고 글쓴이가 적은 적백내전시기랑은 핀트가 좀 안맞긴 했었음. 그건 미안ㅋ - dc App
적백내전이 마무리되고 레닌 사망까지를 혁명기, 초기로 보고 권력투쟁기를 거쳐서 스탈린이 본격적으로 집권하는 27년부터 전후까지 스탈린 집권기로 보는거지. 이건 어케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난 계속 내전기 소비에트 체제의 유화적이고 온건적인 태도를 말한 것.
이야 그럼 독일은 무슨 천사들만 모인 나라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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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이전 얘기인데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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