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둘은 구분하긴 힘들겠지만 학살 옹호와 혐오표현을 굳이 구분하겠다면, 나라면 이렇게 구분할듯하다.
학살 표현은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이용해서 괴벨스주의적 선전행위하고 생각하다. 물론 그 논리가 부실하고 근거조차 다 틀린경우가 많겠지만 일단 마지못해 최후의 수단이 학살인 것처럼 미화해야한다. 이렇게 해서 더 많은 선을 행했습니다와 같이. 예를 들면, 코소보 폭격도 있고, 유대인 학살도 있다. 코소보 폭격의 경우엔 폭격을 함으로서 학살을 하겠지만 더 많은 생명을 살릴 것이다라는 이유로 학살을 옹호했고, 유대인 학살의 경우는 이렇게 함으로써 나쁜 유전자를 없애고 좋은 유전자만 남아 미래에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삶을 살 것이다. 라는 의견으로 흘러갔다. 즉 학살옹호는 이게 잘못 알 든, 잘 알 든간에 일단 그 상황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그랬다는 경우가 있다.
또 학살의 경우엔 그 대상의 선악과 상관이 없을 수 있음. 예를 들어 드레스덴 폭격이나 (이는 좀 논란이 있을 수 있음) 가자학살의 경우임. 드레스덴 폭격의 경우는 독일 민간인을 쏴 죽였으며, 이에 대해 많은 군인들이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게 독일의 패망을 압당기며, 이렇게 함으로서 연합군이 덜 죽을 것이라는 옹호론으로 인해 실행된 작전이다. 가자 학살의 경우 이스라엘 총리의 말이 인상깊은데 "나는 아랍인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창의성과 근면성을 높이 평가해 줄만하다. 그러나 인구격차로 인해 우리 이스라엘에 피해가 오며 그래서 나는 그들을 죽일 것이다." 라는 것이다. 즉 학살옹호는 내가 그들을 싫어하고 말고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매우 자본주의적인 관점으로 해석해야한다. 내가 얻을 피해와 내가 얻을 보상을 비교하며, 학살을 할지 안할지 결정한다. 큰 범위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이 도태되어야 하는 같은 경우나 이번 일본에서의 노인 코로나 감염은 합리적이다라는 의견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이 나빠서 죽이는 것도 아니며, 그들에게 돈을 줄 수 있으면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 하면 망하고, 국가적으로 비효율적이니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방조하며, 오히려 가속화해야한다. 라고 말한다. 여기엔 도덕이 없다.
그러나 혐오 표현은 저번에도 설명했듯, 근거와 논리가 없다. 애당초 그게 혐오의 정의이다. 혐오란 의학적으로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며, 철학적으론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부정평가이다. 내가 모르니까 그들은 나쁘고 죽어야한다. 이게 혐오의 이유이며 전부이다. 무지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다. 이것은 학살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그들이 무섭고 역겹다고 생각하니 그들을 어디에 가두자, 아니면 추방하자 역시 혐오이지만 이건 학살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혐오만으론 학살을 일으킬 수 없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 대해 혐오적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통념상의 이유로 그 사람들 앞에선 웃고 대우해 줄 수 있는 문제이다. 또한 그것은 그저 인터넷에 적는 무근거적이며, 무논리적인 매우 감정적인 표현의 발현일 뿐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대부분 혐오표현과 학살옹호는 궤를 같이한다. 사람은 예로부터 무식을 싫어하며, 유식을 지향한다. 자신의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며, 이로인해 사실은 내가 잘모르는 대상에 대해 무조건적인 부정표현을 하고 싶고 이러한 행위는 수위가 높아지며 학살까지 가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이러한 혐오적 행위가 사회통념상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부끄러움의 발로로 학살옹호 단계까지 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학살 행위는 암으로 인한 사망이다. 혐오적 감정은 발암 인자이다. 학살 해야한다고 말하는 혐오 표현은 암 1-2기에 해당하며, 학살옹호는 암 3-4기에 해당한다. 암의 stage에 따른 치료법이 다르듯, 우리는 이 혐오표현과 학살옹호에 대해 다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혐오 표현은 아까도 말했다시피 매우 감정적인 행위다. 감정적인 행위는 논리가 없으며, 이를 처 부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밴이 답이며,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학살옹호는 논리적인 행위이다. 이게 혐오적 학살옹호이든 비 혐오적 학살옹호이든 이것이 논리적인 행위임은 생각해 볼만하다. 그래서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학살옹호에 대해서 정면으로 논박하고, 이게 힘들다면, 우리의 논리력과 근거를 얻기위해 공부하고 훗날을 기약해야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학살옹호자의 그 더러운 밑낯을 드러내며, 자신의 무지와 정면으로 마주보게 해야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학살 옹호와 혐오표현의 차이 아닐까.
어렵군
논리구조만 갖춘다면 부정적 영향이라도 혐오가 아니라는건데 그렇다면 여자는 임신하는동안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때문에 채용하지 않겠다는 신념은 혐오가 아니라는 뜻이 되나?
ㅇㅇ 그건 쓰래기 같은 생각이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혐오라고 보기 힘들지. 그건 자본주의적 마인드 아닐까? 사실 그 자본가 입장에선 여자가 임신을 하든, 남자가 팔이 짤렸든, 일만 제대로 돌아간다면 채용하겠다는 의미니 혐오라 보기 힘들듯.
정말 거지 같은 정의로구나
오히려 그런건 구조적 착취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혐오라기 보단.
딱히 혐오나 구조적 착취가 차이가 다르게 나쁘다는게 아님. 단지 이러한 구분으로 해결책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함.
그러고보니 학살이든 뭐든 제대로된 평가가 자리잡을려면 양쪽 다 무의미질때까지 기달려야되는 어떤 이상한 소리가 생각남 ㅅㅂ... ㅁㄴㅇㄹ
개인적인 생각으로, 분명 목숨을 앗아가기 전에 선택할 수 있었던 어떤 포인트가 있는데, 자기 의견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듯한 느낌이야. 학살옹호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