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갤에 침공이 많이오는데 침공오는분들도 읽어봐라 이거야 츄라이 츄라이
K. 마르크스: 자본론: 정치경제학비판 I(상),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15.
제1편 상품과 화폐
제1장 상품
제1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
상품은 우선 우리 외부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며, 이것의 속성들에 의해 인간의 온갖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물건이다. 이 욕구의 성질이 어떠한가, 예컨대 욕구가 위장에서 나오는가 또는 환상에서 생기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물건이 인간의 욕구를 어떻게 만족시키는가, 즉 생활수단으로서 직접 만족시키는가, 아니면 생산수단으로서 간접적으로 만족시키는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자본1,43)
한 물건의 유용성은 그 물건으로 하여금 사용가치가 되게 한다. 그러나 이 유용성은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주어지고 있으며, 그 상품체와 별도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철⋅밀⋅금강석 따위 상품체 자체가 사용가치 또는 유용한 물건이다. (…) 사용가치는 오직 사용 또는 소비에서만 실현된다. 사용가치는 부의 사회적 형태가 어떠하건 부의 소재적 내용을 이른다. 우리가 고찰하는 사회^형태에서 사용가치는 동시에 교환가치를 지니는 물건이다.(자본1,44-45)
교환가치는 먼저 양적 관계, 즉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비율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동하므로, 교환가치는 어떤 우연적이고 순전히 상대적인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상품 자체에 고유한 내재적 교환가치라는 것은 일종의 형용모순인 것처럼 보인다.(자본1,45)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 등은 모두 밀 1리터의 교환가치를 표현한다. 따라서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 등은 교환가치로서는 서로 대체할 수 있는 동일한 크기임에 틀림없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첫째로 특정한 상품의 서로 다른 교환가치들은 동일한 그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둘째로 교환가치는 교환가치와는 구별되는 그 어떤 내용의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자본1,45)
이 공통적인 ‘그 무엇’은 상품의 기하학적⋅물리적⋅화학적 또는 기타의 자연적 속성일 수 없다. 그런 속성들은 상품들의 유용성에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그것들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한에서만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된다. 그러나 상품들의 교환관계는 분명히 상품의 사용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 사용가치로서 상품은 무엇보다도 질적으로 구별되지만, 교환가치로서 상품은 오직 양적 차이를 가질 뿐이고, 따라서 교환가치에는 사용가치가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자본1,46)
만약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속성, 즉 그것이 노동생산물이라는 속성만 남는다. 그러나 그 노동생산물 자체도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만약 우리가 노동생산물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그 노동생산물을 사용가치로 되게 하는 물적 구성요소와 형태들까지도 무시하게 된다. (…) 노동생산물의 유용성이 사라짐과 동시에 노동생산물에 체현된 노동의 유용한 성질도 사라지고, 따라서 노동의 상이한 구체적 형태도 사라진다. 이들 노동은 더 이상 서로 구별되지 않는 동일한 종류의 노동, 즉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환원된다.(자본1,47)
이제 노동생산물들은 유령 같은 모양, 동질적인 인간노동이 응고되어 있는 모양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물들은 인간노동력이 그 지출형태와는 관계없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그것들의 생산에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다는 것, 인간노동이 그것들 속에 퇴적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생산물은 그들에게 공통적인 이런 사회적 실체가 응고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 상품가치다.(자본1,47)
만약 우리가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해 버린다면, 남는 것은 위에서 규정한 바와 같은 상품의 가치뿐이다. 따라서 상품의 교환관계 또는 교환가치에서 나타나는 공통인자는 바로 상품의 가치다. 우리는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교환가치야말로 가치의 필연적인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임을 보게 될 것이다.(자본1,47)
그러면 그 가치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하는가? 그 물건에 들어 있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인 노동의 양에 의해 측정한다. 노동의 양은 노동의 계속시간으로 측정하고, 노동의 계속시간은 시간⋅일⋅주 등으로 기준으로 측정한다.(자본1, 48)
만일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지출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면,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가 게으르거나 숙련도가 낮을수록 상품을 생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므로 상품의 가치는 그만큼 더 클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의 실체를 이루는 노동은 동등한 인간노동이며,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다. 상품세계의 가치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회의 총노동력은, 비록 무수한 개인 단위의 노동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거대한 하나의 동질의 인간노동력으로 계산된다. 각 단위의 노동력은 노동력의 사회적 평균단위라는 성격을 가지고 또 이와 같이 작용하는 한, 다시 말해 한 상품의 생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 걸리는 한, 서로 다름 없는 동일한 인간노동력이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평균적 노동숙련도와 노동강도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시간이다.(자본1, 48)
이와 같이 어떤 물건의 가치량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 즉 그것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드는 노동시간이다. 이 경우 개개의 상품은 그것이 속한 종류의 평균적 표본으로 여겨질 뿐이다. 따라서 동일한 노동량이 들어 있는 상품들, 동일한 노동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상품들은 동일한 가치량을 가진다. 한 상품의 가치와 다른 상품의 가치 사이의 비율은 전자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과 후자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 사이의 비율과 같다. ‘가치로서는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에 불과하다.’(자본1, 49)
그러므로 만약 상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상품의 가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노동생산성이 변할 때마다 변한다. 노동생산성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자들의 평균적 숙련도, 과학과 그 기술적 응용의 발전 정도, 생산과정의 사회적 조직, 생산수단의 규모와 능률, 그리고 자연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자본1,49)
일반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한 물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은 그만큼 작아지며, 그 물품에 응고되는 노동량도 그만큼 적어지고, 따라서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작아진다. 반대로 노동생산성이 낮으면 낮을수록 물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은 그만큼 커지며,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커진다. 이와 같이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량에 정비례하고 노동생산성에 반비례한다.(자본1,50)
어떤 물건은 가치를 가지지 않으면서 사용가치일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그 물건의 유용성이 노동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경우에 그러하다. 예를 들면 공기, 처녀지, 자연의 초원, 야생의 수목 등이 그러하다. 어떤 물건 그리고 인간노동의 어떤 생산물은 상품이 아니면서 유용할 수 있다.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써 자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람은 사용가치를 만들기는 하지만 상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그는 사용가치를 생산할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즉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해야 한다.(자본1,50-51)
끝으로, 어떤 물건도 사용대상이 아니고서는 가치일 수 없다. 만약 어떤 물건이 쓸모없는 것이라면, 거기에 들어 있는 노동도 쓸모없는 것이어서 노동으로 계산되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런 가치도 형성하지 못한다.(자본1,51)
제2절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처음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이중성을 가진 물건으로 나타났다. 그 뒤 노동도 또한 이중성을 가지고 나타났다. 즉 노동이 가치로 표현되는 경우에는 더 이상 사용가치를 창조하는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은 내가 처음으로 지적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했다.(자본1,51)
우리는 노동의 유용성이 생산물의 사용가치로 표현되는 노동, 또는 노동의 생산물을 사용가치로 만들어 스스로를 표현하는 노동을 간단히 유용노동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 우리는 노동의 유용효과만 고려한다.(자본1,52)
저고리와 아마포가 질적으로 다른 사용가치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만들어낸 노동도 질적으로 서로 다른 것(즉 재봉노동과 직조노동)이다. 만약 이 두 물건이 질적으로 다른 사용가치가 아니라면, 따라서 질적으로 다른 유용노동의 생산물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결코 상품으로 서로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저고리는 저고리와는 교환되지 않으며, 어떤 사용가치가 동일한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일도 없다.(자본1,52)
다양한 사용가치들[상품체들]의 총체는 다양한 유용노동들(유⋅속⋅종⋅변종으로 분류된다)의 총체, 즉 사회적 분업을 반영한다. 이 사회적 분업은 상품생산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반대로 상품생산이 사회적 분업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고대 인도의 공동체에서 노동은 사회적으로 분할되어 있었지만 그 생산물은 상품이 아니었다. 더 가까운 예를 든다면, 어떤 공장에도 노동은 체계적으로 분할되어 있으나, 이 분업은 노동자들이 자기의 개별 생산물을 교환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립적으로 행해지고 상호 의존하지 않는 사적 노동의 생산물만이 서로 상품으로 마주한다.(자본1,52)
생산물이 일반적으로 상품 형태를 취하고 있는 사회, 즉 상품생산자 사회에서는, 개별 생산자들이 상호 독립적으로 자기 자신의 계산에 따라 수행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유용노동 사이의 질적 차이는 하나의 복잡한 체계, 사회적 분업으로 발전한다.(자본1, 52-53)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 노동, 유용노동으로서 노동은 사회 형태와 무관한 인간생존의 조건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따라서 인간생활 자체를 매개하는 영원한 자연적 필연성이다.(자본1,53)
사용가치인 저고리⋅아마포 따위, 즉 상품체는 자연재료와 노동이라는 두 요소의 결합이다. 저고리⋅아마포 등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유용노동 모두를 제거한다면, 남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어떤 개입 없이 자연이 제공하는 일정한 물질적 바탕뿐이다. 인간은 생산과정에서 오직 자연 자체가 하는 것처럼 일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오직 물질의 형태를 변경할 수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런 형태를 변경하는 노동에서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력의 도움을 받는다. 따라서 노동은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사용가치, 즉 물적 부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 윌리엄 페티가 말한 바와 같이, 노동은 물적 부의 아버지이고 토지는 그 어머니이다.(자본1,53-54)
만약 생산활동의 명확한 질, 따라서 노동의 유용한 성격을 무시한다면, 생산활동은 다만 인간노동력의 지출에 지나지 않는다. 재봉과 직조는, 비록 질적으로 다른 생산활동이지만, 모두 인간의 두뇌⋅근육⋅신경⋅손 등의 생산적 소비이고, 이 의미에서 모두 인간노동이다. 재봉과 직조는 인간노동력 지출의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 상품의 가치는 순수하고 단순한 인간노동, 즉 인간노동력 일반의 지출을 표현하고 있다.(자본1,54-55)
인간노동은 특수한 방향으로 발달하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 자기의 육체 안에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순한 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한 평균적 노동 자체도 나라가 다르고 문화의 발전단계가 다르면 그 성격도 달라지지만, 일정한 사회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다. 더 복잡한 노동은 강화된 또는 몇 배로 된 단순노동으로 여길 뿐이며, 따라서 적은 양의 복잡노동은 더 많은 양의 단순노동과 동등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환산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경험으로 안다. 어떤 상품이 복잡한 노동의 생산물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가치를 통해 단순노동의 생산물과 동등하게 되고 일정한 양의 단순노동을 대표할 뿐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노동이 그 측정단위인 단순노동으로 환원되는 비율은 생산자들의 배후에서 진행되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교환)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생산자들에게는 관습에 의해 전해 내려온 것처럼 보인다.(자본1,55)
교환=통약가능과정, 중요하다. 분리된 생산과 소비를 통합시키는 과정이고 통약가능성을 성립
재봉과 직조는 질적으로 상이하기 때문에 사용가치인 저고리와 아마포의 형성요소로 된다. 그러나 재봉과 직조의 특수한 질이 무시되고 양자가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질을 가지는 한, 재봉과 직포는 저고리와 아마포의 가치의 실체를 형성한다.(자본1,56)
그러므로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은 사용가치와의 관련에서는 질적으로만 고려되고, 가치와의 관련에서는 노동이 벌써 단순한 인간노동으로 환원되어 있으므로 양적으로만 고려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이 ‘어떻게’ 수행되며, 또 ‘무엇을’ 생산하는가가 문제로 되며, 후자의 경우에는 노동력이 ‘얼마나’ 지출되는가, 즉 노동의 계속시간이 문제로 된다. 상품 가치의 크기는 그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량만을 표시하기 때문에, 상품들은 어떤 일정한 비율을 취하면 그 가치가 동일하게 된다.(자본1,56)
‘생산성’은 물론 언제나 구체적 유용노동의 생산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어떤 특수한 생산활동이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하는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용노동은 그 생산성의 상승 또는 저하에 비례해서 생산물을 많거나 적게 생산한다. 이와는 반대로, 생산성의 변동은 가치로 표현되는 노동 그것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생산성은 구체적 유용형태를 취한 노동의 속성이므로, 노동의 구체적 유용형태가 무시되어 버린다면 생산성은 가치로 표현되는 노동과 아무런 관련도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동일한 시간에 수행되는 노동은 생산성의 변동과는 관계없이 항상 동일한 가치량을 창조한다. 그러나 생산성이 변동할 때 노동은 동일한 길이의 시간에 상이한 양의 상품을 생산한다. 즉 생산성이 상승하면 더 많은 상품을, 생산성이 저하하면 더 적은 상품을 생산한다.(자본1,57)
함수로 표현을 하자면 이와 같을 것이다. V=F(L), L=F(T)->V=F(L(T))
이를테면 상품 100단위를 생산하는데 100시간이 들었다. 1 단위당 가치는 1h다., 총 가치는 100시간
생산성이 2배로 증가하면 100시간에 200단위 생산 가능 단위당 가치는 0.5시간으로 감소한다.
물론 총 가치는 똑같이 100시간
따라서 생산성은 총 가치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생리학적 의미(모든 노동은 우리 인간의 근육, 신경 두뇌를 써서 하는것.)에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이 동등한 또는 추상적인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상품의 가치를 형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특수한 합목적적 형태로 인간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며, 이런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사용가치를 생산한다.(자본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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