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빛나는 노동자투쟁을 선도하며 구미권의 좌파세력들에게도 눈길을 끌었던 남한 사회주의자들은 어째서 몰락하였는가?
이를 단지 과격성이나 대중영합의 부재, 부르주아 정치 내의 반영세력 부재로 보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프레임에 놀아나는것에 불과하다. 한때 반도 남부를 불사르며 천천히 전진해갔던 노동자 운동은 현재 종말을 맞이한듯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 많던 사회주의자들이 사라지고 현재는 자칭 사회주의자 조국으로 대변되는 586, 정의당, 민중당등 부르주아적 노동자당만이 남은것인가?

일견 신식민지성을 띄고 일견은 국가독점 자본주의적 성향을 지녔던 남한의 구성은 혁명의 적기라고 보기엔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겨우 20년만에 그 파산선고인 정의당이 탄생할만큼 약하진 않았다.

필자는 남한 사회주의세력 붕괴에 가장 큰 원인을 '당'에서 찾는다. 갤주가 그토록 강조한 자발성이 보이고 있는 가운데 주요한 정파와 그룹들은 그 자발성을 읽어내지 못했다. 먼저 가장 거대한 세력을 이루었던 민족해방(NL)계의 편협한 정세관은 노동 정치세력화라는 핵심적인 목표보다 조국통일을 우선으로 하여, 민주노조운동을 정치화시키는데 실패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들의 민족해방노선이 변혁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랜 스탈린주의적 전통과 민족주의의 막내딸인 NL사상또한 많은 부분 비판하고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아예 부정하는것은 자유주의적 패착이다.
그러나 이들은 민족 해방이라는 목표가 사회주의와 병진해야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일견 민족적 사상을 가진것처럼 보이는 우파 자유주의 정당들에게 투항하였고, 그들에대한 투쟁을 소홀이하였다. 이는 현재 586세대의 투항적, 패배주의적 민주당 지지관을 고착화시켰다. 일련의 변혁적 민족해방운동또한 존재했지만, 이들은 노동자를 세력에 포섭하는데 실패한 데다, 북조선의 체제에 무비판적으로 굴종해, 일종의 남한 내 조선노동당 지역당 건설운동에 그칠 뿐이었다.

이에 비해 노동중심성을 가지고 있었던 범 좌파, 민중민주계, (PD) 평등파 계열은 거의 아나키즘적 오류로 보일 만큼 단일공장, 조직의 일상투쟁에 고착되었다. (이후 이 지리한 일상적 경제투쟁을 정치화시키지 못한 결과가 바로 민주노총의 타협주의 경향이다.) 사노맹이 붕괴된 이후, 그나마 가능성 있었던 개량과 혁명의 밸런스는 노회찬의 남한사회주의노동당이었다. 인천에서 일부의 성공을 거둔 이들 또한 결국 맹동주의자들의 외면과,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성을 부여하려 한 전노협의 미온으로 실패했다. 그들 이후로 노동운동은 하향세에 접어들었고,  민주노동당이라는 민주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좌파 수준에 머무는 기나긴 황혼을 맞이하였다.

민족지상주의의 환상,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성을 두려는 경향이나, 당장의 혁명만을 바라보는 맹동주의, 결국 두 노선은 당면한 '공산주의 정당 건설과 의미있는 정치화'를 실패했다.
노동자의 혁명적 정치세력화와 부르주아 의회 참여를 완전히 분리시켜놓고 보았던 시각은 당시에는 소수파였던 베른슈타인류 개량들에게 힘을 보태주었고,  결국 한때는 사회주의자라고 쉽게 분류할 수 있던 자들을 정의당의 조국찬성표나 던지는 국회의원들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비관에 빠져서는 안된다. 아직까지 노동현장에서 끊임없이 정치세력화를 외치면서도 달력 파업, 일상투쟁에 매몰되지않은 자들이 있으며, 부르주아 개량 노동자정당에서 시작했으되 변혁성을 되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들이 있다. 사회변혁노동자당과 노동당 진보신당계열 일부의 대중적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과 정의당 내 좌익 반대파 민주사회주의 그룹과 모멘텀등이 그것이다.

글에는 힘이 없다는 한 드라마의 표현처럼 이 글을 보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바로 곁에서 투쟁 현장을 찾아가 관계 맺고 의식화하라. 정당에 걸어들어가 당을 좌파화시키고, 비슷한 이념의 동지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그것이 갤주님이 원하시던 자발성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