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성공, 아니면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에 비해 주요 대형 산업 사회들이 여지 없이 방역에 실패한 이유로 우리는 이제 이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 다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좀...마땅치 않다는 느낌부터 듭니다.


우선, '선진국'이라는 말부터는 사회과학적 용어가 아니라서 정확한 정의도 불가능합니다. 뭐가 '선진국'이죠? 단순히 '부자나라'가 '선진국'이라면 카타르 (1인당 명목 국민총생산 6만9천불)나 미국 (1인당 명목 국민총생산 6만5천불)은 '선진국'이 돼야 하는데, 이 두 나라에 대해 '선진'이라 한다면 반대하는 사람부터 무지 많을 것입니다. '선진국'의 의미 늬앙스상 '부자나라'인데다가 그 모델이 타자들에게 모종의 '매력'을 과시해야 하는데, 카타르의 절대 왕정도, 미국의 유료 의료나 교육도 적어도 인류의 상당 부분에게는 하등의 매력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통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후발 주자들은 유럽의 선발 주자를 향해 '선진국'과 같은, 선망이 섞인 명칭들을 남발했습니다. 굳이 "유럽에 있는 부자나라"가 '선진국' 됨의 기준치라면 네, 우리 대한민국도 이제 선진국 맞습니다. 유럽의 이태리 (1인당 명목 국민총생산 3만2천불)나 서반아 (1인당 명목 국민총생산 2만9천불) 정도의 1인당 명목 국민총생산 (3만1천불)의 수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선진국"이라는 말이 맞다는 것인가요?


잠깐만, 좀 더 생각해봅시다. 굳이 "나라"라는 복잡다단한 여러 요소들의 조합에서 "대자본"만 떼어서 이야기하자면 네, 한국 대자본은 구미권 내지 일본 재벌들과는 이제 나란히, 같은 대열에서 선다고 봐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예컨대 기술 생산 부분은 좀 약하긴 합니다. 국내 재벌이 생산하는 휴대전화 단말기 1대당 그 값의 약 5%를 해외에다가 기술 사용료로 지불해야 할 정도로 아직 좀 취약한 부분은 있긴 하지요. 그러나 예컨대 자본의 '흐름'을 보자면 "자본의 한국"은 이제 투자대상국보다 차라리 투자국입니다. 2019년 한국으로의 해외투자는 140억불이었다면 한국으로부터의 해외투자는 무려 280억불, 즉 그 금액의 두 배나 됐습니다. 참고로, 한국 자본의 제1호 투자대상국은 이제 바로....미국입니다. 유랍에 비해 미국 세제가 업자에게 하도 유리하게 돼 있기 때문이죠. 물론 아무리 삼성은 대한민국을 배타적으로 지배한다 해도,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액 (약 2천2백억불)은 월마트의 절반에도 못미칩니다. 삼성잔자의 매출 규모는 대략 아마존 정도 되는 것이죠. 그래도 미국, 독일, 중국, 일본, 영국, 스위스 국적의 기업들만이 보이는 연간 매출상의 "세계 20대기업" 중에서는, 거인 중-일 이외에 유일하게 아시아계 기업으로 들어온 것은 사우디의 아람코 (석유) 이외에는 삼성전자입니다. 그렇다면 '선진국'이 맞다는 거죠?


아닙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대단히 부정확한 단어입니다만, '선진국'은 그래도 단순한 '부자 나라' - 내지 '부자 기업' - 이외에는 '메력적 모델'이라는 늬앙스를 풍기는 용어입니다. 예컨대 부자 나라 미국의 세계 최대 기업인 월마트인데, 과연 박봉과 착취에 시달리는 그 2백만 명 넘는 노동자들의 삶을 세계에서 선망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을까요? "월마트 모델"은 '매력'이라기보다는 '미국병' 같은 단어를 차라리 연상케 합니다. '선진국'은 저로서 사용하기가 불편한 단어지만, 이 단어를 그래도 굳이 사용하자면 "모범적 방역의 나라 코리아"의 평균적 노동자의 삶은 외부인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와야 할 것입니다. 물론 부자나라인 만큼 적어도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은 많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겐 선망의 대상이긴 하지요. 한국의 통계상의 평균 연봉 (3만불)은 이태리나 서반아와 엇비슷하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싱가포르, 홍콩 다음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위에서 누차 이야기했지만 '먕목 액수'만은 '선진성'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비교적 고액의 연봉을 받았다가 혹시나 잘리면? 한국에서의 실업수당은 길어야 10개월 정도고, 실업자 등 약자의 생존을 담보해야 하는 복지 지출은 여전히 총생산의 11% 정도 밖애 안됩니다. 산업화된 사회 치고, 멕시코와 터키 다음으로 복지 지출이 제일 적은 거죠. 그리고 그 고액 연봉을 받기 위해서 과연 어느 정도의 품을 팔아야 하는 것인가요? 업종마다 다르지만, 서비스업 노가다라고 할 택배 노동자 같으면 여전히, 50년 전의 평화시장의 시따들처럼 하루에 14-15시간 고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과로사 희생자들도 계속 생겨납니다. 무거운 택배 상자를 날라주는 일만은 과로사로 이어지나요? 넷마블의 게입 개발자부터 교사 (!) 등 교육 공무원까지 계속해서 과로사로 쓰러지는 사회는 대한민국입니다. 일주일에 70-80시간씩 일하다가 돌연사하게 되는 분들에게는, 한국이 자본수입국이 아닌 자본수출국이 됐다는 거나, 삼성의 매출이 웬만한 나라의 총생산과 맞먹을 정도라는 게 과연 위로나 될까요?


'선진국'이라는 단어부터 시대착오적이지만, 굳이 그 단어를 그래도 쓰자면 미국도 한국도 '선진국'과는 사이 멀지요. 노동자로 하여금 편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꿈 맞게 살게끔 해주고 환경을 덜 해치는 나라, 남녀 평등이 제대로 된 나라, 소수자들에게 관용적이고 통합적인 나라는 '선진국'일 것입니다. 삼성 이씨를 위시한 재벌가들이 이 나라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는 이상 우리가 - 아무리 1인당 명목 소득이 올라간다 해도 -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로 나아갈 확률은 0,0%입니다. 재벌 지배란 역사 발전의 장애물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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