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보니까 기본소득 떡밥이길레 번역해봄

쉰떡밥이긴한데 이쁘게 봐달라 이거야


쥬지주의 관점에서 본 기본소득임

원글 : https://mises.org/wire/hidden-costs-universal-basic-income

The Hidden Costs of a Universal Basic Income
보편적 기본소득의 숨겨진 비용

10/10/2019 Arkadiusz Sieroń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 이하 기본소득) 은 현행 복지제도의 대안으로써 큰 관심를 끌고 있다. 일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모든 시민들에게 동일한 액수의 돈을 준다는 아이디어이다. 따라서 기존의 복지제도와는 달리, 기본소득에는 수단검사[역주 : 정부의 도움 없이 생활 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기초하여 정부지원, 복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결정하는 검사]도 구직욕구진단검사도 없이 지급된다. 그렇게해서 어느 누가 직업이 없다 하더라도 생계수단이 없는 채로 남겨지진 않을 것이다. 이거 참 멋지지 않나?


문제는 그 정책을 위해서 어떻게든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화을 위해 2억 5천만 명의 미국 성인이 있고 각자 (대선 후보 앤드류 양(Andrew Yang)의 제안대로) 매달 1,000 달러를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매달 총 2500억 달러, 연간 총 3조 달러의 비용이 소모된다. 이는 미국 GDP의 약 14%, 정부 총지출의 42% 또는 연방 지출의 73%에 달하는 금액이다. 비교하자면 의료, 국방, 교육에 대한 총 지출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겨우" 연간 1만 2천 달러 (또는 가계소득 중앙값의 19%, 또는 개인소득 중앙값의 36%) 라고 말하고 있다. 이 비싼 정책에 행운이 있기를!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 유토피아적인 발상인 이유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보편성에서 벗어나거나(예를들어 젊은이들에게만 혜택을 제공하는 것), 무조건성에서 벗어나거나(예를들어 소득 기준의 도입), 상징적인 수준으로 적은 금액까지 지불을 줄여야 할 것이다. 다른 선택사항으로는 세금을 대폭 인상하거나 "현대 화폐이론"을 활용해 인쇄기를 돌리는 방법이 있다.


처음 두 가지 선택사항은 이 정책의 개념을 왜곡하여 또 다른 기존의 복지정책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빈곤을 근절시키지도 않고 사회보장을 크게 증가시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 가지 옵션은 정책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 (예를들어 임금에 대한 추가적인 세금 부담으로 인한 실업률 증가)를 초래하거나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적인 혜택의 감소로 이어지는 등 경제 전반에 걸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실질적인 수준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하다는 것은 신화와 같은 이야기다.


이는 핀란드에서 시행했던 보편직 기본소득 실험(정부에 의한 정책은 아니었다)에 관하여 OECD 경제학자들이 쓴 최근 보고서인 "기본소득제냐 단일급여감소율제냐? 핀란드 사례에서의 인센티브, 포괄 조정, 지불 가능성 비교"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핀란드의 현행 사회복지제도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기엔 너무 비싸거나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충분한 혜택을 줄 것이고, 결과적으로 빈곤선(the poverty line) 이하의 인구 비율이 11.5%에서 14.3%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기본소득의 두 번째 경제적 문제는 노동 공급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다. 경제분석 결과 비급여 소득의 증가는 예산제약선 (예산선, the budget constraint line) 을 상향조정하고 유보임금(reservation wage)을 높여 근로시간 단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이는 기본소득과 비슷한 개념인 음의 소득세 (negative income tax) 를 활용했던 이전 실험에서 보여준 결과와 유사한데, 특히 여성과 청년층의 경우 노동 시장으로 이끄는데 더욱 어려움을 보였다. 대가없이 돈을 준다는 것이 일 하지 않는 기회비용을 줄여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별로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여기엔 윤리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복지국가에선 혜택을 받기 위해 시간과 정신적인 노력을 들여야하기 때문에 복지 수혜자들에게 좋지 않다며 비판한다. 그러나 이는 앞뒤가 바뀐 접근이고, 2018년 토머스 우즈(Thomas Woods)가 연설했던 배은망덕함을 나타낸다.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적으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기본소득 지지자들로부터 사회적 낙인을 찍거나 심리적 부담을 지우는 것 같이 부정적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사실 복지수당은 정부가 (사회의 돈을 통해) 어려운 개인에게 제공하는 특권이다. (분명히 해야할 것은 내가 정부를 칭찬하거나 복지국가를 지지한 것이 아니고, 단지 복지 수혜자가 복지로부터 받는 혜택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비뚤어진 관점은 기본소득이 특권이 아닌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의 결과물이다. 즉, 지지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기여와 시장에서 벌어들일 수입의 가능성에 관계없이 납세자가 제공하는 소득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누군가가 이 정책에 자금을 대야 할 것이란 점인데, 이때문에 기본소득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일부 사람들 얻는 특권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이 기본소득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그 소득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소득과 노동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으로 요약된다. 즉, 사람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불쾌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문제를 접하게 된다. 첫째, 모든 사람들이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된 다음엔, 비록 저임금이지만 꼭 필요한 일을 누가 할 것인가? 노동의 불쾌감을 아예 없앨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현실 세계의 본질일 뿐일까? 로봇이 우리 할머니를 돌볼까? 예상되는 결과는 경제 전반에 걸친 생산량의 현저한 감소로, 이는 전반적인 빈곤화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의 지지자들은 기본소득이 개인의 독립성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은 우리에게 관료, 상사, 남편, 변덕스러운 시장의 횡포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킴으로써 사회경제적 독립을 약속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토피아적인 사회주의자들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주머니에 돈만 있다면 일은 선택사항 중 하나가 된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독립의 약속에 뒤따르는 역설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기본소득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의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만은 리바이어던(Leviathan)에게 더욱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로버트 니스벳 (Robert Nisbet) 은 공동체를 위한 탐구 (The Quest for Community) 에서 소속감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만약 가족, 이웃, 그리고 지역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면, 그 빈자리는 정부와 중앙집권국가가 메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던 것인가? 기본소득이란 단순히 우리가 가질 수 없었던 유토피아가 아니라, 사실은 디스토피아였던 건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