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경제학에서 '노동'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대상이 마르크스경제학에서는 세가지 개념으로 구분된다.

1) 상품의 물질적이고 유용한 속성(사용가치)를 만들어내는 노동인 '구체노동'.
2) 상품의 교환가능한 속성(가치)을 만들어내는 노동인 '추상노동'.
3)인간이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을 일정기간 타인에게 판매하는 상품인 '노동력'.

1과 2의 구분이 '노동의 이중성', 1&2와 3의 구분이 '노동과 노동력의 구분'에 해당한다. 둘다 자본론 1권 전반부에 등장하며, 마르크스가 스스로 고전파경제학과 구별되는 자기 이론의 독창성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현대경제학과 비교할때 고전파와 마르크스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후 가치-화폐-자본으로 이어지는 마르크스경제학의 핵심 개념들이 주류와 달라지는 근원도 이 노동 개념의 차이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 주류경제학에서는 2가 없고 1,3이 구분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 가격과 구분되는 가치 개념이 없기 때문에,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인 '추상노동'이란 개념도 존재할 수 없다.
- 노동은 생산물을 만드는데 투입되는 생산요소 중 하나이며, 투입 이전에 시장에서 일정한 가격(임금)으로 거래된다. 즉, 생산과정에서의 노동과 시장에서 거래되는 노동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가치의 실체는 노동'이라는 것을 논증한 이론이다. 그런데 이것을 주류경제학의 시각으로 이해하려들면 모순이 발생한다. 주류에서 지적하는 노동가치론의 문제는 보통 다음과 같은 논리적 과정에서 나온다.
a) 주류에서 '노동'은 원료,자본,토지 등과 함께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여러 생산요소 중 하나다. 즉, 하나의 생산물이 만들어질 때 노동은 일정한 비율만큼 생산에 기여할 뿐이다.
b) 주류에게 가치는 가격과 동의어다. 가격은 상품이 화폐와 교환되는 비율, 즉 상대가격이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생산물과 생산요소는 모두 상대가격을 갖는다.
c) 노동은 생산요소인 동시에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다. 따라서 노동은 상대가격을 갖는다. 노동의 가격을 특별히 '임금'이라고 부른다.
=> 결론 : 가치(=상대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만이 아니다. 노동과 자본, 토지 등을 결합하는 생산기술과 소비자의 선호, 즉 수요와 공급을 이루는 요인 모두가 가치를 결정한다 . 노동 역시 임금이라는 가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노동이 가치의 실체라면, 노동이 자신의 가격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따라서 노동가치론은 성립할 수 없다.

주류의 a,b,c 는 마르크스의 1,2,3과 각각 대응된다. a)에서의 노동은 '구체노동'이고, b)에서는 '추상노동'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c)에서의 노동은 사실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경제학의 논리다. '가치의 실체는 노동'이라는 명제에서 노동은 가치생산노동인 '추상노동'이다. 그런데 주류는 구체노동(물질생산노동)과 노동력(거래되는 노동능력)이 뒤섞인 '노동' 개념을 가지고 (가치도 아닌)상대가격을 논하고 있으니, 서로 딴 소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주류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은 시작부터 평행선을 달리기 시작한다.

결국 노동가치론을 주류의 시각이 아닌 그 자체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이중성'과 '노동과 노동력의 구분'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의 이중성은 생산물과 노동의 관계가 물질적 생산관계(유용성, 구체노동)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관계(교환가능성, 추상노동)를 갖는다는 것이다. 반면 주류경제학은 생산과 교환 모두를 '물질과 물질의 관계'로 치환시키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작용'이라는 의미의 노동을 일개 생산요소의 지위로 떨어뜨린다.
노동과 노동력의 구분은 생산하는 '힘'과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르고, 자본주의에 와서 거래대상(상품)이 된 것은 후자라는 의미다. 노동자는 일정기간 동안 고용주에게 자신의 노동능력을 사용할 권리를 임금을 받고 파는 것인데, 실제로 생산현장에서 그 노동자가 얼마만큼의 '힘'(노동)을 발휘할지는 생산과정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임금'은 노동력을 사용할 권리를 파는 대가로 지불된 것이지, 실제로 노동자가 노동한 만큼의 대가로 지불되는 것이 아니다. 임금은 '노동력의 가격'이지, 주류의 시각처럼 '노동의 가격'인 것이 아니다.

이같은 인식에 따라 주류의 a,b,c를 다시 마르크스의 이론으로 교정하면 다음과 같다.
ㄱ) 상품의 사용가치=구체노동에 의해 창출된 상품의 물질적 속성. 주류의 주장대로 사용가치의 생산에는 노동만이 아니라 원료, 기계,토지 등 생산수단이 기여함. 하지만 이런 이질적 물질들 간의 기술적 관계는 '생산함수'처럼 수량화 될 수 없음. 계산가능성은 질적 특성(사용가치)이 아닌 양적 특성(가치)을 통해서만 가능.
ㄴ) 상품의 가치=상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추상노동의 양.
상품의 가격 =해당상품과 화폐의 교환비율. 가격은 사회전체적/장기적으로는 가치(추상노동)량을 반영하지만, 개별상품별/단기적으로는 그 수준을 이탈하게 됨.
ㄷ) 노동력의 가치(임금) =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추상노동의 양.

지금까지의 논의는 노동가치론, 즉 가치의 실체가 노동이라는 이론이 주류의 오해와는 다르게 내적정합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왜 노동인가'를 완전히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혹자는 가치의 실체가 노동인지 아닌지는 '믿음'의 문제이지만, 그 자체로 내적정합성을 갖춘 이론이며 주류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이론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의 유효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걸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가정이나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로서 노동가치론의 (유효성이 아닌) '타당성'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