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본적으로 파시즘 운동은 사회적 추락으로 격분한 소부르주아 인자들(소상인, 자영업자, 관리자 등)과 룸펜프롤레타리아(만성 실업자, 2류 범죄자, 그밖의 사회하층)가 의회 밖에서 결집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경찰과 군대 경험자들이 또한 가세하여 종종 핵심 인자가 된다. 좌익, 조직노동자 그리고 먹잇감이 된 소수자에 대한 거리 폭력과 물리적 공격이 파시스트 조직들을 연결하는 접착제가 되는 한편, ‘서민’의 방어와 극단적 국가주의 선동을 특징으로 하는 이념적 포장도 존재한다. 경쟁하는 파시스트 조직들 사이의 정치적 차이는 주로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을지 또는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할 효과적 전술이 뭔지에 대한 것이다.

파시즘이 유럽에 처음 등장한 것은 1차 대전 이후였다. 극심한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와 의회정치가 신뢰를 잃고, 눈이 돌아간 소부르주아의 갈망을 해결하지 못할 때였다. 1917년 10월 혁명의 핵심 가운데 한 명이었던 트로츠키는, “진정한 공산당이 희망의 혁명 정당이라면, 대중운동으로서의 파시즘은 반혁명적 절망의 당이다. 혁명적 희망이 프롤레타리아 대중 전체를 사로잡을 경우, 소부르주아 상당수가 혁명을 향한 길로 이끌린다(「코민테른의 전술 전환과 독일의 상황」, 1930년 9월 26일).”라고 통찰했다. 1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와 독일에 혁명적 기회가 나타났지만, 프롤레타리아는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실패했다. 공산당의 정치적 미숙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파시즘 운동은 이전에 노동조합주의(syndicalist)와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았다가 국제주의와 결별하고 민족주의와 영토 확장으로 옮아간 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22년 무솔리니가 이끈 국가파시스트당은 준군사조직 ‘검은셔츠단’ 정치깡패를 이끌고 로마에서 행진했다. 그 후 국가권력을 손에 쥐었다.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으로 알려진) 국가사회주의당과 그의 ‘갈색셔츠단’은 1933년 1월 권력을 장악하기 전까지 노동조합원, 좌익, 유태인 그리고 여타의 소수자들을 공격하면서 지지를 조직했다. 이 두 경우 모두 대자본가들의 후원을 받았다. 그들은 파시스트를 조직노동운동과 좌익 정당 파괴의 효과적인 무기로 생각했다(다니엘 구에린 『파시즘과 대기업Fascism and Big Business』 참고).

2)파시스트들은 단순한 극우가 아니다. 단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인 것만도 아니다. 단순히 소수자와 좌파에 대한 사악한 폭력과 혹심한 탄압을 자행하는 권위주의자들인 것만도 아니다.

파시스트들은 협소하고 형식적인 자유민주주의조차 파괴하고,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노동계급 조직을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들은 선거를 폐지하고 싶어 하고, 사회 대다수가 누려 온 자유를 전면 공격하려 한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활동한다. 히틀러는 아우슈비츠라는 대량 살인 공장을 지어 유대인 6백만 명을 도살했다.

파시즘은 중간계급 대중에 기반을 둔 독특한 정치 운동이다. 물론 소수 대자본가 개인들이 파시스트 정당을 지지해 자금을 제공하곤 했다. 또, 파시스트 운동이 노동계급의 후진적인 인자들을 일부 포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직 노동계급 운동의 상당 부분을 포섭한 적은 없다.


파시즘의 주요 지지 기반은 언제나 중간계급이었다. 중간계급은 매우 모순된 계급 지위와 사상이 그 특징이다. 그들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동요하며 심각한 위기 때 양쪽 모두를 비난하며 오락가락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효과들 때문에 삶이 망가지지만 그에 맞서 싸울 조직은 없는 각종 자영업자들(소기업주, 농민, 소상점 주인 등)과 조직되지 않은 관리직·전문직 종사자들(중간관리직 공무원, 많은 변호사와 의사 등)은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집단적 힘도, 대기업주들의 경제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