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비오듯 쏟아지는 불행은 얼마나 처참한가! 혁명의 결과는 그 희생을 정당화시킬까?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결실이 없는 허망한 질문에 불과하며 철저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마치 역사 과정이 대차대조표로 계산될 수 있는 모양이다! 인간 생존의 난관과 고통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도움이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독일의 시인 하이네(Heine)는 어느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리고 바보들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대한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 우울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태어났으며 자식을 낳고 있다. 예를 찾을 수 없는 전세계적 위기가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살율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인간은 결코 자살에 의존하지 않는다. 짐이 너무 무거워 참을 수 없을 때는 혁명으로 살길을 모색한다. 더욱이 사회의 격동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대개의 경우 제국주의 전쟁에 노동자와 인민을 총알 밥이 되게 만든 작자들이다. 아니면 최소한 이 전쟁을 미화하거나 인정한 작자들이다. 이제 우리가 질문할 차례이다: "전쟁은 스스로를 정당화시켰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준 것이 무엇이며 가르쳐준 것이 무엇인가?" ....... 지난 세기 60년대 미국 남북전쟁의 과정에서 5만 명이 살해되었다. 이 희생들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미국의 노예소유자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행진했던 영국의 지배계급들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다!" 흑인들과 영국 노동계급은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이지." 그리고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는 조금의 의심도 가질 수 없다. 남북전쟁을 통해 무한한 실용적 진취성, 합리화된 기술, 경제적 활력 등으로 무장한 현대 미국이 탄생했다. 미국의 이러한 업적들로부터 인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것이다. 10월 혁명은 이전의 어떤 혁명보다 사회의 소유관계에 깊이 침투했다. 따라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창조적인 결과를 드러내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거대한 변화의 일반적 방향은 벌써 명확하게 이해된다: 소비에트 공화국은 자본가들의 비난에 대해 머리를 숙이거나 변명을 늘어놓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인류 발전의 관점에서 이 새로운 체제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렇게 질문해야한다: "사회 진보는 어떻게 표현되고 측정될 수 있는가?"
-레프 트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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