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창조력은 자유를 요구한다. 자연을 기술에 그리고 기술을 계획에 복종시켜 자연자원이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의 목적이다. 그리고 이 목적보다 훨씬 높은 목적이 있다: 인류의 창조력을 모든 억압, 한계, 굴욕적 의존으로부터 즉시 해방시키는 것이 인류 최고의 목적이다. 이 목적이 실현되면 개인간의 관계, 과학, 예술 등은 외부의 어떠한 "계획"이나 강제의 그림자도 알지 못할 것이다. 정신적 창조력이 어느 정도 개인적이고 어느 정도 집단적인가는 전적으로 예술의 창조 주체인 인간이 결정할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행기 체제는 이와 전혀 다르다. 노동계급 독재체제는 미래의 문화가 아니라 과거의 야만상태를 반영할 뿐이다. 따라서 반드시 정신적 창조활동에 대해서 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활동에 엄격한 제한을 가해야 한다. 혁명의 강령은 애초부터 이 한계들을 일시적 악이라고 간주했다. 새로운 체제가 강화되는 것과 비례하여 모든 제한들이 차례로 철폐되어 자유에 길을 내줄 의무가 있다. 어쨌든 내전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던 해에 혁명 지도부는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혁명정부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창조적 자유에 대해 제한을 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과학, 문학, 예술 분야에서 사령관이 되어 명령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인식하고 있었다. 레닌은 "보수적" 예술 취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술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아주 조심스러워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무능력을 적극적으로 자백했다. 당시 예술 및 교육 인민위원이었던 루나차르스키(Lunacharsky)는 모든 종류의 모더니즘을 장려했는데 그의 행위에 대해 레닌은 종종 당혹스러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사적인 대화를 통해 톡톡 쏘는 발언을 했을 뿐 자신의 예술 취향을 법으로 만들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새로운 시기가 전개될 1924년 필자는 다양한 예술 그룹 및 경향들과 맺는 국가의 관계를 이렇게 정식화했다: "이들 모두에게 혁명에 봉사하는 예술활동을 할 것이냐 아니면 혁명에 거역하는 예술활동을 할 것이냐를 절대절명의 조건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예술적 자치의 영역에서는 완전한 자유가 부여되어야 한다."


노동계급 독재체제는 혁명의 열기에 사로잡힌 대중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세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던 실험, 모색, 투쟁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두려움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방식들을 통해서만 새로운 문화 시대가 준비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 년의 역사 가운데 처음으로 대중은 모든 영역에서 활기를 띠고 있었으며 자유롭고 대담하게 사고하고 있었다. 예술의 모든 젊은 힘은 감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 첫 몇 년 동안 희망과 용기가 충천하면서 사회주의 입법의 완벽한 모델들이 수립되었을 뿐 아니라 혁명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했다. 동시에 기술수단이 빈약했지만 소련의 영화는 현실에 대한 접근방식의 신선함과 활력으로 전 세계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좌익반대파에 대한 투쟁 과정에서 문학 학교들은 하나하나 질식되어 죽었다. 그리고 문학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모든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거세 과정이 반 이상 무의식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더 심각했다. 현 지배층은 정신적 창조행위 뿐 아니라 이것의 발전과정마저 정치적 차원에서 금지할 임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명령을 내리되 동의는 구할 필요가 없다는 이 방식은 강제수용소, 과학 영농, 음악 분야 등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철학, 자연과학, 역사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건축, 문학, 극 예술, 발레 등에도 군대의 명령처럼 당 중앙기관의 지시 사항들이 익명으로 인쇄되어 배포되고 있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직접 봉사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관료집단은 미신과 같은 공포심을 가지고있다. 이들이 자연과학과 생산영역을 연결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은 크게 보아서 틀린 것이 없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단기적 실용성에만 주목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실용성 있는 발견을 포함하여 발명의 가장귀중한 원천을 행정적 위협으로 봉쇄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모든 발명과 발견은 예상하지 못한 길을 헤매는 과정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자, 수학자, 문헌학자, 군사이론가 등은 관료집단의 명령행정을 통해 쓰디쓴 경험을 체득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광범위한 일반화를 극구 피한다. 대개 무식한 출세주의자인 어떤 "공산주의 교수"가 레닌이나 심지어 스딸린의 저작에서 별 관계도 없는 문구를 인용하여 이들의 일반화된 결론을 불순한 것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자기 생각을 보호하고 과학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머리 위에 강요되는 억압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관료집단의 정책은 한없이 더 큰 해악을 가져왔다. 언론인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학자, 역사학자, 심지어는 통계학자까지도 자신의 작업이 당 노선의 일시적인 좌충우돌과 간접적으로라도 모순을 일으키지 않도록 머리를 싸맨다. 소련 경제, 국내외 정책에 대해서는 "지도자"의 연설문에서 인용한 뻔한 말들로 모든 논지를 방어하고 난 후에야 글을 쓸 수 있다. 특히 글을 쓰기 전에 글의 모든 부분이 아무 문제가 없으며 당국이 좋다고 판단하도록 증명하는 일을 먼저 착수해야 한다. 당국의 견해에 100% 동조할 경우 이후에 발생할 불쾌한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결과 가장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한다: 글의 독창성이 거세되고 무미건조함이 글 전체를 지배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소련의 공식 국가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2년 동안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외국어로 번역될 가치가 있는 저서는 단 한 권도 나오지 않았다. 소위 마르크스주의 저작이라는 것들이 미리 승인을 받은 케케묵은 생각들을 반복하고 현재의 통치 상황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오래된 인용구들을 여기저기에 옮겨 놓은 형식적인 집적물에 불과하다. 이런 책들이 수백만 권 국가기구를 통해 배포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교와 아첨과 기타 끈적거리는 물질로 제작된 책자들일 뿐이다. 뭔가 가치 있거나 독창적인 것을 말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감옥에 갇혀 있거나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한편 소련의 모든 사회 분야가 발전하면서 거대한 과학적 문제들이 속속 제기되어 창조적인 노력을 목마르게 찾고 있다! 이론 작업에 반드시 필요한 양심은 더럽혀지고 짓밟히고 있다. 심지어 레닌 전집의 주석까지도 수석 편집인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판이 바뀔 때마다 내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지도자들"의 이름은 확대되고 반대파 인사들의 이름은 비방 받으며 이들의 이론적·정치적 궤적은 은폐된다. 당사와 혁명사 교과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은 왜곡되고 중요 문서는 은폐되거나 위조되며 명성은 창조되거나 파괴된다. 지난 12년 동안 지도자의 책이 계속해서 내용을 바꾸는 것만 비교 분석해도 관료지배층의 사고와 양심이 얼마나 타락해 왔는지를 한치의 오차 없이 추적할 수 있다.


이에 못지 않은 재앙이 예술 분야의 서적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유파들의 투쟁은 지도자들의 의지에 따라 달리 해석되어 왔다. 이 유파들에게 일종의 강제수용소가 생겨났다. 세라피모비치나 글라드코프 같이 재능은 없으면서 "올바른 사상이 박힌" 작가들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다. 예술적 양심 때문에 자신의 작품에 필요한 만큼의 흠집을 낼 수 없는 재능 있는 작가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지도자들의 인용구들을 외우고 있는 어용 교수나 강사들의 사냥감이 되고 있다. 가장 출중한 화가들은 자살하거나 아주 먼 옛날의 사건에서 소재를 찾거나 아예 침묵을 지킨다. 진실이 담긴 매우 훌륭한 내용의 책들은 밀수품 신세가 되어 책방 카운터 밑에서 불쑥 튀어나와 마치 우연하게 세상에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소련 예술의 일대기는 일종의 순교자 열전이다 『프라우다』 사설에서 "형식주의(formalism)"에 반대하는 교시가 실린 후 작가, 미술가, 무대감독, 심지어 오페라 가수들이 줄줄이 굴욕적인 참회를 마치 전염병이 돈 것처럼 해댔다. 차례차례 이들은 자신의 과거 죄를 참회하고 철회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여 이 "형식주의"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은 피했다. 당국은 과거 예술행적을 철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불편한 현상을 장기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새로운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스딸린이 시인 마야코프스키에 대해 몇 마디 찬사를 늘어놓자 그의 문학적 평가가 몇 주 내로 바뀌었으며 교과서가 개정되고 거리의 이름이 바뀌었고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새로운 오페라에 대해 고위 청중이 소감을 말하자 이것이 즉시 작곡가들을 위한 지시사항으로 돌변했다. 어느 작가회의에서 공산주의청년동맹의 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스딸린 동지의 암시는 모두에게 법과 같다." 그러자 참석자 모두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물론 이중의 몇몇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문학에 대한 조롱을 완성하기라도 하듯 러시아어 작문도 제대로 못하는 스딸린이 문체의 고전이라고 선언되었다. 이 노예적 굴종과 경찰의 통치에 가끔 자발적이지 않은 코메디가 연출되기는 하지만 뭔가 지극히 비극적 구석이 있다. 당국의 공식 입장은 이렇다: 문화는 사회주의적 내용을 가지고 있되 민족적 형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문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행복한(!)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불충분한 경제적 토대를 가지고 문화를 발전시킬 수는 없다. 예술은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 과학보다 훨씬 뒤떨어진다. 어쨌든 "미래의 건설상을 묘사하라",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지적하라", "인류를 교정하라" 등의 당국의 주문은 철물점의 가격표나 기차시간표와 같은 정도로만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


예술은 민족적 형태를 띠면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 『프라우다』는 예술가들에게 이렇게 지시 내린다: "인민이 원하지 않는 것은 심미적 가치가 없다." 옛날 인민주의자들(Narodnik)은 대중을 혁명적으로 교육하는 과업에 기예를 발휘해야 할 임무를 거부한 채 테러에 의존했었다. 이들의 엘리트주의 공식은 인민이 어떤 예술을 원하고 원치 않는지를 결정할 권리가 관료집단에게 있는 상황에서 더욱 반동적 성격을 띤다. 관료집단은 자신이 선택하여 책을 출판하면서 독자들에게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결국 관료집단의 이해를 반영하고 이들이 인민대중에게 매력적 존재로 비치게 만드는 예술 형태를 찾아내는 것이 핵심 중에 핵심이다.


그러나 이것은 헛된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관료집단 자신이 이렇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제1차 5개년 계획도 제2차 5개년 계획도 10월 혁명이 촉발한 문학의 부흥을 재현하지 못하고있다." 이 말은 아주 온건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적 몇몇 예외에도 불구하고 테르미도르 반동 시기는 예술사에 평범한 재능의 예술인, 어용 예술인, 아첨꾼 예술인이 판을 쳤던 시기로 뚜렷이 남을 것이다.

-배반당한 혁명 중



'혁명정부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창조적 자유에 대해 제한을 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과학, 문학, 예술 분야에서 사령관이 되어 명령을 내려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