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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매일 일어나는 이 전투가 우리들에게 삶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서 비범하고 숭고한 영웅주의 발현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자유로운 삶이냐, 싸움에서의 죽음이냐!"라는 외침과 함께, 부대원들은 자신들보다 강한 적을 격파하고 그들을 도망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우리가 행한 행동은 어리석기 그지 없었습니다. 총알 하나가 허벅지에서 맹장 근처를 지나 배로 나왔던 것입니다. 나는 말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우리의 역습은 실패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험이 없는 부대원 한명이 경솔하게 "지휘관이 죽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부대원들은 내 부상이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레에 태워 12베르스타(12.08km)를 이동했고 나는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1921년) 3월 14일, 나는 Leo Zin'kovsky의 보호 아래 의식불명상태로 있었고 15일 밤에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베르쉬(우크라이나 혁명반역군의 참모장)를 필두로 모든 사령관과 참모진들이 쿠릴렌코, 코진등에게 1~2백명의 병사를 보내라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내가 다시 말에 오를 떄까지 조용히 숨어지낼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 명령에 서명했고 자부드코가 우리 지역에서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유격대를 창설하도록 허락했습니다. 16일 아침이 되자 나와 함께 있는 작은 분견대를 제외하고 다른 부대는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이 순간 기병 9사단이 우리를 덮쳐 진형을 형성하돌고 강요했습니다. 마침내 아조프 해안에 슬로보단에 도착하고서야 다섯 시간동안 쉴 수 있었습니다.


3월 17일 새벽, 우리는 노보스포스포프카를 향해 진군했습니다. 그러나 17베르스타(18.1km)를 나아가자 우리는 다시 활력넘치는 적군의 기병대와 조우했습니다. 그들은 쿠릴렌코를 놓쳤지만 그 대신 우리와 만난 것입니다. 25베르스타(26.6km) 정도 도망친 후 (우리는 지쳐서 도저히 싸울 수가 없었다.) 기병대가 우리를 덮쳤습니다.  무얼한단 말입니까? 나는 무기력해서 말에 오르기는 커녕 일어나거나 앉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나는 수레 바닥에 누워있는데 200야드(182.88m) 밖에서 끔찍한 백병전이 벌여져 학살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오직 나를 위해서, 나를 벌지  않기 하기 위해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이르자 그들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안전한 방법은 없었습니다. 새로운 병력이 끊임없이 도착하고 있기 때문에 적군은 우리보다 대여섯배의 병력을 투입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열명의 유대인 기관총 사수-당신이 나와 함께 있을 때 봤던 총(루이스 경기관총)-가 내 수레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지휘관, 당신의 생명은 우리 농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당신의 의지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곧 죽겠지만 당신과 당신을 보살펴줄 사람을 구해낼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우리의 말을 전하는 것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그들 중 한명이 나를 껴안았고,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볼수 없었다. 잠시 후 레오 진코프스키가 나를 품에 안고 근처를 지나던 농민의 수레로 나를 옮겼다. 기관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나싶더니 멀리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볼셰비키의 돌파를 막은 것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나는 3~4 베르스타(3~4.1km)를 달려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그 기관총 사수들은 모조리 죽었습니다.


얼마 후 우리는 그곳을 다시 지나갔고, 스타로두보프카 마을의 농민들은 기관총 사수들을 묻었던 공동묘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친애하는 친구여, 소박하고 정직한 그 용감한 농민들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눈물을 참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나는 당신에게 이 이야기가 나를 낫게 하는 것같다고 말해야할 것 같습니다. 같은 날 저녁 나는 말에 올라 그곳을 떠났습니다.



-네스트로 마흐노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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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마적의 두목은 한순간도 방에 쳐박혀 있지 않았기에 혁명가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실제로 자신들이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타찬카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니)


혁명가는 인민을 "위한 말"을 하지만 마적은 인민과 "함께 행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