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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의 유인과 분열의 불씨
지금까지 한 논의를 요약하면, 민중민주 계열과 민족해방 계열이
민주노동당이라는 동일한 정당으로 합류하게 된 요인 내지 이유로 우선 객관적 조건의 변화를 들 수 있다.
특히 민중민주 계열에 해당되는 것으로, 소련, 동구의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북한의 위기, 한국사회의 민주화 진전 등과 같은 객관적인 환경의 변화 때문에 혁명적 사회주의의 설득력이 없어진데다가 조직원들이 하나둘씩 이탈하는 가운데 새로운 구성원이 제대로 충원되지 않아 재정과 조직력이 크게 약화됐고, 다른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조직의 존립 자체가 어렵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친북 반미 노선과 김대중과 그 정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입장을 견지해오던 전국연합, 한총련, 전농 등 민족해방 계열의 경우 북한의 위기가 가시화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민족민주정당 건설의 필요성이 절박해졌지만, 이 세력의 민주노동당 참여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조직력의 약화와 1997년부터 민족민주정당의 가장 큰 대중적 기반인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건설 참여였다.
다음으로 주체적 조건의 변화가 있다. 민중민주 계열의 경우
일부 조직(진정추 -> 진보정치연합)이 그동안 이상형으로 상정했던 소련, 동구 사회주의의 실패가 분명해지자 혁명적 사회주의와 비합법 전위정당 건설에서 사민주의와 합법 대중정당 건설로 노선을 바꾸었고, 민족해방 계열 역시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비판적 지지의 명분이 약화된 데다가 민족민주정당 건설의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상정했던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결국 민주노동당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후자의 경우 지역이나 사람에 따라 민주노동당에 참여하는 시기가 다른데, 그것은 독자정당(후보)이 선거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의 차이 때문이다.
즉 노동자가 밀집해 있거나 대중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해 선거에 자신감을 가진 지역이나 인사들은 일찍이 참여했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이나 인사들은 2001년 9월 민주노동당 강화라는 조직적 결의가 있은 후에 참여했다.
또한 민주노총의 1998년(2008년이라 되어있길래 수정) 민주노동당 참여와 지지 결정과 2001년 7월의 헌법재판소 결정, 그리고 2002년 8월 선거법 개정으로 민주노동당의 민중민주 계열은 협상 카드를 하나 더 갖게 됐고 민족해방 계열은 더 많은 참여의 동기가 생기게 됐다.
마지막으로 양 계열 조직 모두 이념이나 노선 또는 조직 문화의 차이가 이후에 정당의 운영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거나 파벌 갈등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거나 과소평가했다.
민중민주 계열(주로 진정추 또는 진보정치연합 지도부)은 제도나 정치력(정확하게는 다수의 힘)으로 민족해방 계열의 노선과 조직 문화를 통제하거나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민족해방 계열은 입당 초기에는 소수파이지만 당내 기구를 통해 협의해 최대한 관철시키도록 하면 될 것이며 (중장기적으로는) 대중적인 사업을 통해 자파 당원을 늘리고 대중적 지지를 확대해 자주, 민주, 통일 정당-대중적인 정당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민주노동당에 합류하게 된다.
파벌연합에 의한 민주노동당의 창당이라는 사례가 갖는 이론적 시사점은 무엇일까.
첫째, 파벌들의 이념이나 성향이 비슷하면 통합이 용이하다.
소련,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북한의 위기,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은 그동안 대립과 갈등의 주요 요인을 제거했고 이념적 거리도 좁혔다.
둘째, 조직 내외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위협과 기회로 작용했다. 위협 요인으로는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붕괴, 북한 사회주의의 위기,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 등이 있었는데, 이것들이 혁명적 사회주의의 인적, 재정적 기반과 대중적 설득력을 크게 약화시켜 양대 파벌 조직의 근간을 흔들어놓아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만들었고, 조직을 해체하거나 다른 탈출구를 찾는 노력을 하게끔 압박을 가헸다.
기회 요인으로는 1996년~1997년 총파업에 따른 민주노총의
정치 노선 변화(독자 정당 건설)와 민주노동당 참여, 전국구 의원
선출 방식을 규정하는 선거법의 위헌 결정과 뒤이은 선거법 개정이 있는데, 이것들은 조직 통합을 위한 협상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됐다.
이런 위협 요인과 기회 요인은 특히 민족해방 계열 내의 비판적 지지를 견지해온 파벌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대신 민주노동당 참여를 주장하는 파벌의 입지를 강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민족해방 계열의 조직적인 참여를 유인하는 인센티브로 작용했다.
셋째, 파벌 내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조직 통합을 통한 생존의 발전 전략을 선택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몰아닥친 조직 내외 환경의 급년이 초래한 조직 와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파벌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은 (민중당의 경우처럼) 조직 해체가 아니라 그동안 격렬한 대립과 경쟁 관계에 있던 다른 파벌조직과의 통합을 통해 조직을 살리고 확장하는 방안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이해관계가 일치해야 한다. 민중민주 계열은 조직(진보정치연합)의 생존이라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게 됐고, 민족해방 계열은 민족민주정당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중략)
그러나 상호 신뢰의 형성이라는 조건은 충족되지 않았다. 조직의 존립에 대한 위협이 지나치게 커서 대북 인식 등 통합 당시까지 남아 있던 노선-정책의 차이나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인 이미지가 초래할지도 모르는 갈등의 발생과 해결 가능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 결과 창당 이후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파벌 간의 갈등과 대립을 통제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제도, 양립하기 어려운 양대 파벌의 조직 문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고 따라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결국 이후 분란의 불씨가 됐다.
2020년 5월 17일 토요일자 글입니다.
내일은 민주노동당 파벌의 특징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