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따르 케이 볼 센세가 정리한 당나라의 주류적 역사모델인 데스.
인간 천天으로 명명되는 자연 원리에 의해 낳아진 산물로 따라서 하늘이 이미 정한 선천적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음. 그러나 선천적 본성인 인간의 욕구가 통제 없이 발휘될 경우, 그들의 사물에 대한 소유 활동이 서로 충돌해 투쟁이 발생하고 이것이 사물의 소진으로 이어지게 됨. 그래서 인간은 세계를 후천적으로 변형시키는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통해 여러 문물들로 욕구를 한정시키고 사물을 풍부하게 하여 욕구와 사물 사이를 중재하여 세계가 유지될 수 있게 함. 이것이 순자의 이론. 그에 따르면 이를 통해 인간은 세계의 운행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참천지'를 행함. 이후에도 삼재에 참여한다느니 하면서 이런 사상은 계속되지.
선왕 앞서 말한 욕구와 사물의 절제, 분별 등을 최초로 행한 존재들. 문명이 처음 시작한 삼대에서부터 여러가지 문명적 요소들을 새로이 만들어 간 복수의 인간들임. 문물 제도를 이미 존재하던 사회로부터 학습한 후대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깨우쳤단 점에서 독특함을 가지고 있음. 동중서는 선왕이 문명을 만들 때 자연 원리를 본땄으며 이것을 지금 남겨진 선대 문명들에 대한 기록들을 알 수 있다고 보았지. 선왕들의 문명이 자연을 참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근거가 "주역"임.
한편 이 선왕들의 문명 창조가 의도적이었는 지 비의도적이었는 지에 대한 논쟁이 존재했음. 누군가는 선왕이 이러한 문명을 만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자연에 대한 철저한 사유를 했다고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들은 그런 사유를 한 적이 없었으며 그저 사회를 개선하려다보니 자연스레 지금과 같은 문명을 형성한 것이라고 보았지.
문명 선왕들이 창조한 인문적 요소들. 기술, 법, 윤리 등 다양한 영역을 일컬음. 집이나 약, 무기 같은 것들도. 모두가 자연적 사물이든, 인간의 자연적 소질이든 자연적 산물을 제재하고 기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음. 맹자는 이 선왕들이 창조한 문명을 컴퍼스에 비유하며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원으로 그리려면 컴퍼스가 필요하듯 선정을 하려는 마음이 있는 통치자들은 이를 선왕의 문명으로 실현시켜야 한다고 주장함.
경전 선왕들이 어떻게 문명을 창조했는 지에 대한 설명이 실린 책. 시경, 서경, 주역 등 당대의 역사적 자료들과 책들임. 신유학 운동 이전까지는 이 책들의 내용 자체를 어떤 법전처럼 계승하고, 그 텍스트의 면밀한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 주류였으나 신유학 이후 중요한 것은 글자가 아닌 본의라며 좀 더 창조적인 해석이 유행함. 공자가 정리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 텍스트들은 산별적으로 흩어져 있었음.
공자 공자는 물론 성인이지만 다른 고대 성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위치에 있음. 그는 이미 고대 문명의 계승이 끊겨가는 쇠락기에 살았으며, 군주가 되어 통치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음. 그래서 그는 훗날을 위해 통치의 모범인 성왕들의 기록을 정리하여 경전을 만듬. 이후 진나라가 세워지면서 고대 문명의 계승은 완전히 끊어졌지만 공자의 경전이 계속 전수되면서 후대 군주들은 계속 삼대를 계승할 수 있게 됐음.
그러나 이러한 공자관은 신유학 이후로 많이 바뀜. 그들은 이후 왕조들이 삼대를 전혀 잇지 못하고 있다고 봤으며 공자를 경전의 편집자로서보다도 논어의 주인공으로서 더 중시했음. 그들은 공자가 쇠락해가던 성왕의 문명을 책으로 자세히 기록을 남기고, 역사의 옳고 그름 등을 판단(춘추)하는 행위를 통해 군주가 아님에도 군주의 일을 행하였고, 논어에서 인간이 해야 될 수양과 윤리를 제시함으로서 모든 인간에게 선왕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주장함. 즉 이들에 따르면 공자 이후로 고대의 도통은 군주가 아닌 수양한 인간에 의해 전수되기 시작했으며, 더 이상 이런 통치의 도는 군주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모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는 것임. 이런 역사철학이 그들의 내성외왕 수양과 향약 공동체의 결성으로 이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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