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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이렇게 민족해방 계열 조직의 회원을 비롯한 새로운 당원들이 대거 입당함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기반은 크게 강화됐다.
창당 당시 31개 지부 26개 지구당으로 출범한 민주노동당은 2년이 지난 2002년 정기 당대회 무렵에는 13개 광역시,도 지부, 85개 지구당 또는 지구당(준), 2003년 정기 당대회 무렵에는 무려 105개 지구당으로 늘어났고, 2004년 총선 직후인 6월 말에는 지구당 140개로 창당 당시의 5배로 늘어났으며, 2005년 1월에는 다시 151개로 증가했다.
평등파가 집단 탈당한 2008년 3월 경에는 지구당이 191개로 늘어나, 창당 이후 8년 사이 7배 이상, 연평균 20개씩 증가한 것이다.
지구당이 늘어나면서 지역의 활동가도 크게 늘어나고 재정 기반 또한 탄탄해졌다.
재정과 지역 기반이 강화되고 중간 간부층이 두터워진 결과는 2002년 지방선거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에서 거둔 8퍼센트가 넘는 득표율과 제3당 부상이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00년 한 해 당비 수입은 한 달 평균 7000~8000만원, 1년 전체 8억 19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1년에는 11억 7700만원, 2002년의 당비 수입은 대선을 위한 특별당비(4억 5700만원)가 추가로 들어와 1년 전에 견줘 2배에 가까운 19억 9700만원으로 증가했으며, 2003년에는 32억원, 2004년에는 66억 8500만원으로 늘어나 2004년 말에는 창당하던 해의 8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조금전에도 설명한 제도 개혁과 기반 확대 전략은 때마침 조성된 유리한 외적 환경, 즉 기성 정당에 대한 국민의 반감 고조,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등과 맞물리게 된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부터 지지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공직 당선자들도 늘어나 2002년 지방선거를 통해 제3당으로 부상했으며,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그 자리를 확고히 굳히게 된다.
대선의 경우 득표율이 1997년에는 전국 유효득표수 1.2퍼센트(30만 6000여표)에 그쳤지만 2002년에는 3.9퍼센트(95만 7000여표)로 3배 이상 높아졌고, 총선의 경우 2000년에는 전국 유효득표수(지역구)의 1.18퍼센트(22만 3000여표)에 지나지 않았지만 2004년에는 4.3퍼센트(91만 5000여표)로 4배 정도 높아졌고, 결국 울산 북구와 창원에서 각각 1명의 지역구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2002년 지방선거부터 도입된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의 경우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8.1퍼센트(139만 9000여표)에서 2004년 총선에서는 13.0퍼센트(277만 3000여표)로 2년 사이에 60퍼센트 증가했고, 8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당선시켜 지역구 의원 2명을 합쳐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게 됐다.
진보정당의 국회 진출은 1960년 이후 4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선거 시장에서 거둔 비약적인 성장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더욱 높여 원내 진출 이후 1년 넘게 지지율이 두 자리 수에 머물렀고, 당원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기록한 이런 성장과 성공의 이면에는 당내 경쟁과 갈등의 격화라는 부정적인 요소가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지만, 민주노동당은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분열의 길로 치닫게 된다.
2020년 5월 25일 월요일자 글입니다.
내일은 2000년~2004년의 민주노동당 역사를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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