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가 대세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순순히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형태를 바꿀 국가들도 있을거잖아
그렇게 바뀐다면 형식적으로는 자본가들이 전위당에 재산 및 생산수단을 전부 헌납하고 인민의 일부가 되겠지
하지만 생산수단과 자본의 차이가 없다고 해도 자본가와 무산자 간의 차이가 없다고 할수 있을까?
아니다 아비튀스라는 거대한 장벽이 하나 남아있다
아비튀스의 차이는 돈이 전부인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졸부들과 기성 자본가들을 나누는 기준이다
아비튀스의 차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교육에 대한 노력, 효율적인 교육법, 삶의 태도, 인맥 등등에서 차이가 날거고 그러면 아무리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진다고 해도 옛 자본가 출신들이 옛 무산자 출신들에 비해 우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로 바뀌었다고 해도 행정 및 정치 같은 분야들은 옛 자본가 출신들이 독점할거다
옛 무산자들도 그걸 당연하다 여길거고
그러고는 우리도 사회주의 국가라고 꺼드럭대겠지
일단 형식은 사회주의 정부가 맞고 단지 지식의 차이로 옛 무산자들이 뒤쳐지는거니까
이런걸 해결할 방법이 있긴 한가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프롤레타리아 우대조항이 있었음. 1935년전까진 소련 헌법에 부르주아 출신은 공민권을 박탈한다고 했고
왜 안됨? 다 했음. 아니면 이북처럼 친일파 출신들은 고위직 등용 금지 시켜버리면 됨. 물론 어느정도 작업되면 해소시키면 됨.
노동자들을 그들만큼 교육시키면 2~3대즈음 지나면 해결되지 않을까
좋은 한국어 쓰면 안되냐 행동양식이라는
그리고 둘 다 사실이 아님. 첫째는 일시적으로 자본가 계급 출신들이 여러 분야들의 기능적 효용을 담당할 수 있으나, 결국 사회주의 행동양식에 맞지 않게 행동한다면 쫓겨날 것이고 노동자 계급 출신들 역시 이러한 행동양식들을 배우고 노동자 계급의 행동양식으로 개조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음.
필자는 이러한 행동 양식이 계급 출신이라면 변하지 않은 고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변하는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압력을 가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음. 또한 그러한 사회적 행동양식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주체는 노동계급의 의식적 집단인 당이 독점하고 있고.
아비투스는 하나의 사고양식이고, 또 그러한 사고양식은 오직 외화되어 들어났을 때 현실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행동양식으로 봐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개인의 취향이나 배경, 가치관들은 오직 그것이 물질적 외화로 나타났을 때에 의미를 가지며, 그러한 경우 오직 행동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나야만 함.
애당초 아비투스라는 것이 개인의 습관 같은 것(물론 이것보다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양상을 띄지만)인데, 행동양식이라는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할 이유도 없지.
아비투스가 왜 행동양식이 아님. 알면 알수록 행동양식이라는 표현이 찰떡인 것 같은데.
아비투스는 사고양식과 행동양식이 조화를 이루어 결국엔 이 둘이 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놉. 아비투스는 오직 “행동양식”만을 의미하는게 더 적절해보임. 왜냐하면 표현되지 않은 개인의 사고양식은 사회적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에 사회적 접근 방향인 아비투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임. 즉 이러한 아비투스는 실제로 그러한 사고양식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 그리고 우리가 그걸 관찰했을 때 의미를 가진다고 봄.
단순히 이를 행동양식으로만 환원하는 것은 위험한 것 같음. 물론 우리가 이 아비투스에 대해서 한 개인이 가치관, 판단 방식, 취향 등을 표현해낸다는 것은 행동양식의 역할이 맞음. 하지만 내가 보았을때 아비투스라는 개념의 범위는 이리 협소하지는 않음.
행위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한다고 가정해본다 하였을때에도 결국 가치관, 판단방식, 취향 등 내적 구조가 사회적 구조를 통해 밀접히 상호작용되어 형성되었음이 보이기때문임. 단순히 관찰하지 못하여서 우리가 그사람의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계급과 관련한 개인적인 인지 상태가 사회적 조건에 의해 형성되었기에 그것이 바로 '아비투스'인거지
내가 생각하기에 님이 행위를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행위가 대중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이라는 매개를 필요로 함. 예를 들어 나만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취향 역시 행위를 매개로 하지 않는다면 현실과 어떠한 관계도 맺을 수 없고, 사회적 의미 역시 가질 수 없음.
예를 들어, 내가 내면적인 취미로 특정 곡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러한 곡을 듣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취미가 현실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없음. 공개적인 행위 뿐 아니라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행위이며, 그것이 사회 구조적으로 형성되었을지라도 행동양식임은 변함이 없음.
가치관, 판단양식, 취향 등 범주를 행위를 통해 외적 세상으로 표출해낸다는 것은 인정하겠다만 단순히 내재화되어있다고 해서 사회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과 이로 인해 '아비투스'가 행동양식 만을 의미하는 것은 인정하지 못하겠음. 위의 범주 등이 결국 사회 내 구조적인 현상에 따라 우리의 인지 상태가 형성되어 그 인지를 바탕으로 행위를 표출하는 것임.
결국에 사회구조적 문제에 따라 결정된 개인적인 인지를 바탕으로 그러한 행위를 표출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인지라는 개념을 '아비투스'에서 의미없다고 가정하고 제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함.
또한 나는 행위를 좁게 잡기보다는 행위라는 존재도 인정하되 이를 존재하게한 사고양식의 중요성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음.
사고 양식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님. 아비투스로 나타니기 위해서는 행동양식이 필연적으로 전재되어야 하며, 행동양식은 사고양식을 통해서만 발현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임. 인지행위는 행동양식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그리고 특수한 행동양식으로서 전제되어 있다고 해석해야 함.
또 이러한 아비투스는 순수하게 개인적인 것이 아닌 하나의 사회적으로 보편화 된, 그리하여 요구되는 하나의 당위적 측면이 있다고 고려해야 함. 고로 개인의 내제적 생각과 별개로 존재하는 보편적인 생각이라는 지점을 고려한다면 “사고”라기 보다는 양식이라는 표현이 더 맞아보임.
ㅇㅋ 내가 뭔가 착각했던 것 같음
아비투스가 뭐니 아버지이빨이라고 해야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아비투스가 따로 생길거라 생각함. 윗댓글들 말대로 사회 형성 초기에 자본가 출신들의 행정/정치 개입을 견제함으로써 부르주아 아비투스의 정착을 저지해야 사회주의 아비투스가 온전히 성장해서 정착되겠지.
그 인맥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먹힐까가 우선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