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명한 사례는 1919년 11월의 것으로, 파르티잔들이 예카테리노슬라프를 장악한 직후의 일이다. 예카테리노슬라프 노동자 사이의 강력한 볼셰비키 세력은 마흐노에게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그는 거의 그의 군대의 통제를 잃을 뻔 했다. 볼셰비키들은 지하 분파활동으로 5개 연대 중 2개를 지도하게 되었고 마흐노는 3번째 연대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소위 자유지상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어떻게 이 도전에 반응했을까? 정치적 토론? 전혀. 그들은 방첩조직을 가동했다. 현지의 노동자 볼셰비키들과 파르티잔군의 지지자들은 체포되어 강으로 끌려간 후 총살당했다.'
'The most famous case was in November 1919, just after the partisans seized the city of Ekaterinoslav, where a strong Bolshevik presence among workers posed a serious threat to Makhno. He risked losing control of his army. The Bolsheviks, via underground fraction work, had won the leadership of two of his five regiments, and a third Makhno considered unreliable. How did the supposed libertarian anarchists respond to this challenge – with political debate? Hardly. They unleashed their counter-intelligence. The local worker Bolsheviks and their supporters in the partisan army were rounded up, taken down to the river and shot.'
마흐노의 '의용'군에서는 제대, 특히 붉은 군대에 합류하기 위한 제대는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폭행이 만연했고, '선출된' 장교들은 마흐노의 의향에 따라 직위해제되었다.
마흐노군의 지배지역에서 모든 정당의 활동과 선거운동은 금지되었고, 마흐노군의 중장비를 수리하던 도시 노동자들이 마흐노가 적극 권장하던 농민과의 물물교환(일부 수공업자 이외에게는 불가능한) 대신 봉급을 요구하자 그 요구는 묵살되고 수리된 중장비는 대가 없이 몰수되었다. 마흐노군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은 마흐노군 지배지역 전체에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결국 마흐노군은 아나키즘적 환상으로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다 실패하거나 좀 더 나은 경우 볼셰비키가 현실에 직면해 채택한 방식을 똑같이 시행할 수 밖에 없었고, 후자의 경우에도 진지한 정책과 전망이 결여되어 있었다.
고립된 소생산자들의 환상에서 창조된 아나키즘 유토피아가 현실에서 실현되는 방식은 바로 이렇다.
출처
https://marxistleftreview.org/articles/nestor-makhno-the-failure-of-anarc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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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여구를 걷어내고 보면 실제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거나 극소수 또는 1인의 의지대로 결정되거나 둘 중 하나
아나키즘과 파시즘 사이에는 실제로 컬러링 말고도 상당한 공통점과 인적교류가 있음
대의민주주의를 불신하는거지 직접민주주의는 주로 귄장함.
링크 글 읽어보는데 마흐노가 마냥 무고하진 않았네. 1919년 5월 데니킨의 백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적군을 몰아낼때 볼셰비키와 제휴관계를 끊고 ㅇㅇ
에당초 정신나간 내전에서 누가 무고하고 안 무고하고가 어디있겠음..... 당장 볼셰비키가 흑군 뒷통수 친것도 팩트인데, 그 이전에 적군을 공격했던 것도 사실이긴 함. 즉 일방적으로 뒷통수 쳤다긴보다는 서로 쌓인 앙금이 너무 커졌고, 누구든 선공해도 이상하지 않는 시점에서 힘의 우세에서 우위인 적군이 선빵친거 뿐.
내가 아는게 맞다면 그 파르티잔이라는게 체카가 마흐노 암살할려고 보낸 애들일텐데 그건 빼고 서술하는 클라스보소
체카식 암살법은 군부대에 잠입해서 선전선동 활동 전개로 병사들 지지 얻어내는 것부터 시작하나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