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다들 아는 얘기겠지만, 다 쳐내고 엄청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여기서 독재라는건 고대 로마에서 비상대권 행사시기를 뜻하는 말이야. 민주주의의 반댓말이 아니라 정상상황의 반의어라는 말이지.
마르크스가 평생 극복하려한 헤겔은 근대사회의 문제를 공사분리 즉 정치생활과 경제생활의 분리라고 보고 극복하려 했어. 루소에서 시작한 문제의식이고 아렌트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지. 그래서 헤겔이 <법철학>에서 내놓은 해법이 뭐냐, 입헌군주제야. 사회에서 올라오는 공론과 국왕이라는 위에서 아래로의 공론이 만나 사회의 합리적 운영이 가능하다는것.
그런데 헤겔보다 후대의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이렇게 근대사회가 안정적으로 굴러간다는건 가능하지 않은 구조야. 왜냐, 이미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사회라는것 자체가 특정 계급 즉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라는 망을 통해 한번 필터링을 거치고 의견을 올려보내기 때문. 즉 프롤레타리아라는 존재들은 대표되지 않는 존재인거지. 체제논리 밖 존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체제가 안정적일 수 있나.
생략하고 바로 <공산당선언>으로 가면 마르크스는 이 프롤레타리아(이하 피티)들이 근대적 교통수단이 만들어낸 단결의 조건을 가지고 지역적 투쟁을 전국적 투쟁으로 조직해가며 당을 만들고 끊임없이 깨지면서도 단결을 확대해 나간다고 보지. 그리고 부르주아들은 국내의 비 산업적 부르주아들과 귀족, 지주들 그리고 국외의 부르주아들과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피티에게 손을 내밀고 근대적 교양 교육을 시켜줘야해.
이렇게 피티가 부르주아를 상대로 자유시간, 여가시간을 얻어내고 수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자본주의 대경영 즉 사회적 생산에 걸맞는 사회적 소유관계를 만들어내고 그걸 운영할 능력을 키우게 되지. 그렇게 집권하게 되면 이전에 부르주아들이 사회를 운영하면서 그들의 이해관계가 아닌 욕구들을 쳐 냈듯이 피티들이 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를 배제하면서 사회를 운영하게 되고, 이 시기의 국가의 형태는 '사멸해 가는 국가'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야.
마르크스에게 부르주아지가 만든 근대세계는 민족적 특수성을 제거해나가고 세계를 통합해나가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부르주아 계급은 여전히 지배계급으로서 민족적 성격을 가지고 근대민족국가에게 외국의 부르주아지와 피티들로부터의 보호를 요청하는 이들이야. 그런 부르주아들의 최후 보루인 근대민족국가이니 당연히 피티가 집권하자마자 그 성격을 바꾸어 나가면서 사멸시켜 나가는거지.
나도 공부가 깊지 않지만 대충 지금까지 공부한걸 팟캐스트 <안알남>의 큰 도움을 받아서 정리해봤어. 물론 쟁점은 어마어마하게 많지. 그럼 피티독재는 언제 끝나냐? 사회주의/공산주의는 피티독재 자체냐 아니면 피티독재는 이행기일 뿐인가. 피티독재 기간의 권력행사는 어떻게 견제되는가. 물론 현실에서 스스로를 피티독재라고 부른 과정은 결국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전환되면서 아름답게 끝나지 못했다는건 다들 알지.
어쨌든 후기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을 보고 피티독재 개념을 다듬고 정정하기도 하고 하는데... 그건 뭐 역시 다들 아는 내용일거라 시간나면 나중에 쓰기로 하고. 사실 현실에서 피티독재라걸 둘러싼 논쟁을 보려면 10월 혁명 직후부터의 문헌들을 봐야해. 카우츠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 레닌의 <국가와 혁명>, <배신자 카우츠키>, 그 외에 NEP시기 이행기 논쟁들도. 발리바르의 <민주주의와 독재>(원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 곧 새번역이 나온다는 소문) 도 좋고, 서사과연에서 91년도인가 나왔던 <사회주의의 역사 이론 현실>에도 레닌의 이행기론을 통해 그의 사회주의관을 재구성하는 시도를 했고. 책들이 죄다 본가에 있어서 참고를 못하네. 디시에 글 쓰는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냐만.
오늘도 읽고 또 공부하는 좌파들 되자구!
마르크스가 평생 극복하려한 헤겔은 근대사회의 문제를 공사분리 즉 정치생활과 경제생활의 분리라고 보고 극복하려 했어. 루소에서 시작한 문제의식이고 아렌트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지. 그래서 헤겔이 <법철학>에서 내놓은 해법이 뭐냐, 입헌군주제야. 사회에서 올라오는 공론과 국왕이라는 위에서 아래로의 공론이 만나 사회의 합리적 운영이 가능하다는것.
그런데 헤겔보다 후대의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이렇게 근대사회가 안정적으로 굴러간다는건 가능하지 않은 구조야. 왜냐, 이미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사회라는것 자체가 특정 계급 즉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라는 망을 통해 한번 필터링을 거치고 의견을 올려보내기 때문. 즉 프롤레타리아라는 존재들은 대표되지 않는 존재인거지. 체제논리 밖 존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체제가 안정적일 수 있나.
생략하고 바로 <공산당선언>으로 가면 마르크스는 이 프롤레타리아(이하 피티)들이 근대적 교통수단이 만들어낸 단결의 조건을 가지고 지역적 투쟁을 전국적 투쟁으로 조직해가며 당을 만들고 끊임없이 깨지면서도 단결을 확대해 나간다고 보지. 그리고 부르주아들은 국내의 비 산업적 부르주아들과 귀족, 지주들 그리고 국외의 부르주아들과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피티에게 손을 내밀고 근대적 교양 교육을 시켜줘야해.
이렇게 피티가 부르주아를 상대로 자유시간, 여가시간을 얻어내고 수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자본주의 대경영 즉 사회적 생산에 걸맞는 사회적 소유관계를 만들어내고 그걸 운영할 능력을 키우게 되지. 그렇게 집권하게 되면 이전에 부르주아들이 사회를 운영하면서 그들의 이해관계가 아닌 욕구들을 쳐 냈듯이 피티들이 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를 배제하면서 사회를 운영하게 되고, 이 시기의 국가의 형태는 '사멸해 가는 국가'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야.
마르크스에게 부르주아지가 만든 근대세계는 민족적 특수성을 제거해나가고 세계를 통합해나가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부르주아 계급은 여전히 지배계급으로서 민족적 성격을 가지고 근대민족국가에게 외국의 부르주아지와 피티들로부터의 보호를 요청하는 이들이야. 그런 부르주아들의 최후 보루인 근대민족국가이니 당연히 피티가 집권하자마자 그 성격을 바꾸어 나가면서 사멸시켜 나가는거지.
나도 공부가 깊지 않지만 대충 지금까지 공부한걸 팟캐스트 <안알남>의 큰 도움을 받아서 정리해봤어. 물론 쟁점은 어마어마하게 많지. 그럼 피티독재는 언제 끝나냐? 사회주의/공산주의는 피티독재 자체냐 아니면 피티독재는 이행기일 뿐인가. 피티독재 기간의 권력행사는 어떻게 견제되는가. 물론 현실에서 스스로를 피티독재라고 부른 과정은 결국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전환되면서 아름답게 끝나지 못했다는건 다들 알지.
어쨌든 후기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을 보고 피티독재 개념을 다듬고 정정하기도 하고 하는데... 그건 뭐 역시 다들 아는 내용일거라 시간나면 나중에 쓰기로 하고. 사실 현실에서 피티독재라걸 둘러싼 논쟁을 보려면 10월 혁명 직후부터의 문헌들을 봐야해. 카우츠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 레닌의 <국가와 혁명>, <배신자 카우츠키>, 그 외에 NEP시기 이행기 논쟁들도. 발리바르의 <민주주의와 독재>(원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 곧 새번역이 나온다는 소문) 도 좋고, 서사과연에서 91년도인가 나왔던 <사회주의의 역사 이론 현실>에도 레닌의 이행기론을 통해 그의 사회주의관을 재구성하는 시도를 했고. 책들이 죄다 본가에 있어서 참고를 못하네. 디시에 글 쓰는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냐만.
오늘도 읽고 또 공부하는 좌파들 되자구!
와 와 와
와!
작성자한테 개인적으로 궁금한데 요즘같은 시대에 부르주아/피티의 이분법적 분류가 의미가 있다고 봄? 기계, 토지 등 생산수단은 여전이 값어치가 있지만 핸드폰 하나만 있어도 신분 변화가 아주 빠르게 일어날 수 있는 시대아님? 그리고 계급체계가 그렇게 단단한것도 아니고
오히려 신분 변화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주류언론에서 그렇게 떠들어대고 있는데
물론 일반적으로는 그런데 부르주아나 pt모두 똑같은 방송을 보고 비슷한 문화를 즐기자나 예쩐처럼 부르주아라고 뭐 무도회나 맨날 가는것도 아니고... 이제는 단순히 재산의 차이 말고는 다른점이 없지 않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재산격차의 문제
예전처럼 생산수단만 가지고 돈을 버는 시대가 아니라서 얼마이상 부르주아 이렇게 할 수도 없지 않냐
애초에 맑스도 얼마 이상 부르주아 같은 소리 안 했었는데. 생산수간의 소유관계를 가지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갈랐지. - dc App
분기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양극화가 심해지고 심지어 상위 부르주아 계층이 하위 부르주아 계층을 빨아먹는 경우까지 발생해서 그리 보이는 것 뿐이지
내가 말하고 싶은게 단순히 기계나 토지같은걸 소유한게 아니고 노래, 그림, 춤 같이 재능으로 돈을 벌어서 기업급 규모를 내거나 유튜버로 성공한 그런사람들은 생산수단을 가진거로 보냐 이게 궁금해
음 답변을 하기 앞서 만일 학술적인 논의를 보려면
http://m.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99946
이
기사의 바탕이 된 문혜림의 석사학위 논문을 riss에서 보면 될거야. 물론 마르크스주의나 베버리안이나 사회학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좀 어려울테지만 정독하면 못읽을 것도 아니야.
자본을 통해 누군가를 착취하냐 안하냐가 문제지 옛날에는 연예인 없었나?
만약 생산수단이 있어도 자본을 통해서 남을 착취하지 않으면 그건 부르주아가 아닌거임? 기계 하나로 자기 혼자 다 관리하고 ai 쓰면 그건 자본가임?
난 유동님이 한 질문은 한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고 보는데, 계급이란게 사회적으로 존재하는가?(유의미한가)에 대해 그렇다고 하려면 자력으로 상층부에 올라가는 케이스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강한 전제. 나는 사실 유투브든 춤이든 노래든 개인이 가진 재능으로 재산을 많이 버는건 이 문제와 별 관련이 없다고 봐.
이유는 1. 그런식으로 소득을 버는건 주류경제학에서도 이야기하듯 일종의 독점적 협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지대'잖아? 2.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마르크스에게 부르주아 계급개념은 모든것이 상품형태로 조직되는 사회에서 자신의 생활을 재생산하기 위해 본래 상품이 아닌 자신의 노동할 수 있는 능력 즉 노동력을 상품의 형태로 팔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야.
그 수단은 타인의 노동력을 고용하여 상품을 생산해내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거쳐 상품이 사회에 유용한 것으로 인정받고 팔려서 다시 재투자되는 과정, 즉 자본순환이지. 마르크스에게 넓은 의미에서 자본은 스톡이 아니라 순환 자체야. 나는 모든 것의 상품화라는 마르크스의 근대 진단에 매우 동의하기에 맑시스트고, 예로 든 예술분야만 봐도 기획사라는 형태, 레이블이라는
형태를 통해 앨범이라는, 콘서트 티켓과 굿즈라는 상품형태로 팔려서 재투자되잖아? 예술적 재능까지도 일반적인 상품의 형태가 되어 이윤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면 나는 마르크스의 계급관에 동의해. 사회를 지배하는건 상품을 생산할 생산수단을 갖춘 이들이고 가진건 노동력 밖에 없는 이들은 4년에 한번 민주주의를 누릴 뿐이라고.
그리고 계급간의 이동 가능성과 계급개념 자체는 근대 신분제 철폐 이후에는 별 관련이 없다고 보는데, 한국 경제사를 보면 그 식민지기에도 소농, 빈농에서 대농, 지주, 심지어는 으로 자본가로 성장한 사례가 0.5%~1%정도는 나와. 당연히 사회자체가 완전히 경직되어 폭발하는걸 막기 위해서도 그런 걸 허용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지주-소작관계라는 계급개념이 유효하지 않은건 아니지. 이때도 이미 신분제적인 것이 아닌,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포섭된 계약적 계급관계가 토지라는 생산수단을 통해 행하는 상품생산이 어떻게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고 그 양적 질적 확대가 사회적 갈등과 적대를 규정하고 그런걸 봐야겠지.
나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논리상 그 과정이 지금도 동일하게 작동한다고 봐. 물론 그렇다고 현실의 노동자들이 당장 투철한 피티라던가 변혁주체라는 소리는 아니구 ㅎ 노동자들의 상태나 의식이나는 실증연구가 규명할 몫이고.
나는 마르크스가 근대 자본제 사회를 고도로 추상화하고 분해 재조립한 논리구조와 설명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뭐 그런 말이지 ㅎㅎ
음... 일단 답변 고마워!
국민국가 대목은 서유럽/북미 안에서만 유효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