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평등하다”는 말과 달리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해외도 전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집단감염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도 대통령 명령으로 위험한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육류가공공장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기사를 번역해보았습니다. 미국 사회주의 잡지 <자코뱅>의 5월 11일자 기사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은 미국 경제의 중심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모순을 드러냈다. 이주민들의 노동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정부의 매서운 공격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식품 생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민들은 예전부터 “필수 노동자”에 해당했다. 정치인들과 기업식 농업의 경영진들은 식품 생산량을 유지하고 대형 마트의 물량을 계속 확보할 요량으로 새삼스럽게 이 같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노동자들이야말로 코로나19 팬데믹의 위협에 가장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데, 이주민들을 범죄화하고 배제하는 기존의 정책들이 이들을 이 심각한 위기의 영향에 아주 취약한 계층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의 속박은 특히 육류가공업에서 두드러진다. 미국에서 이주민은 이 산업에 종사하는 저임금 노동력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육류가공은 언제나 유독성에 노출된 위험한 일이었지만 라인이 돌아가는 속도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비좁은 공간과 비누와 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이 코로나 19가 발생하는데 이상적인 조건을 창출했다.
미국 농촌 지역에서 육류가공공장은 바이러스가 가장 급속하게 전파된 몇 곳의 중심에 있었다. 아이오와 주 페리의 타이슨 육류공장에서는 코로나19 검사 결과 노동자들의 58%가 양성으로 판명되었다. 캘리포니아 주 핸포드의 센트럴 밸리 육류공장에서는 최소 노동자 138명이 확진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큰 20개 집단감염 가운데 25%가 육류가공시설에서 발생했다. 5월 5일 현재, 최소 1만 명의 확진자가 육류산업과 관련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몇몇 가공업체들은 더 이상의 확산을 피하기 위해 작업속도를 늦추거나 아예 공장을 닫았다.
그러나 상점들이 육류 공급을 배급제로 해야 할 정도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트럼프 행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 주(4월 28일) 백악관은 국방물자 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 에 근거한 행정명령을 발표해 육류가공공장이 계속 열도록 장려했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직원들의 발병에 대한 육류가공업체의 책임을 줄여주는 것이 자기 목표 중 하나라고 직접 말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만든 법으로 전시처럼 긴박한 상황에 대통령이 민간 기업에 국방, 에너지, 우주, 국토 안보를 지원하기 위해 주요 물자 생산을 확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 옮긴이 주)
적어도 기업 경영진과 그 정치적 동맹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정책이 노동자들이 받을 실업수당을 줄여줄 것이라는 점이다. 이 행정명령은 육류가공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선택권을 제한하여 먹고살기 충분한 돈을 갖고 있든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일하든지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공식적으로는 이 노동자들을 “필수” 노동자라고 주장하면서, 팬데믹 시기에 이들을 강제로 라인에 돌려보내는 트럼프의 조치는 오히려 이 노동자들이 국가의 육류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되어도 좋은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팬데믹은 육류가공업계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협한다. 남부 가금류 공장(poultry plants) 노동자의 대다수를 이루는 흑인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 사회에 살고 있다. 닭고기 가공업체가 몰려 있는 여러 주에서 주 정부들은 메디케이드(Medicaid)*의 확대와 최저 평균 실업수당의 일부를 제공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65세 미만의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의료보험제도이다. ― 옮긴이 주)
이주노동자는 한참 부족한 사회복지에 대한 접근조차 거부당하는 반면 여러 가지 위험들을 자주 마주친다. 트럼프의 행정명령 이전에도 대부분의 주에서 미등록 주민은 실업보험을 신청할 수 없었다. 많은 이주민들이 공중보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고, 진료를 받을 때도 추방당하거나 미래에 합법적인 거주권을 얻는 데 지장이 있을까 두려워한다.
육류가공공장의 코로나19 감염률과 사망률의 증가는 반노동정책이 만들어낸 수년간의 만성적인 위기를 명확히 드러냈다. 이런 정책은 주로 유색인(black and brown)으로 이루어진 노동력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발전되었다. 억압적인 이민법과 감시 관행이 이 공장들의 구조를 만들었다. 이제 그런 불법화 정책의 일부가 노동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상황이 늘 이랬던 건 아니다. 1950년대에는 수십 년간 다인종 산업 조직화와 미국통조림공장노동자연합(United Packinghouse Workers of America, UPWA)의 성장에 기초한 성과로 소고기와 돼지고기 가공업의 임금이 철강과 자동차 제조업의 임금에 맞먹었다.
1980년대 들어 소고기와 돼지고기 가공업체들이 노조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며 상황은 바뀌었다. 업체들은 노조 조직률이 높은 도심지역에서 중서부와 그레이트플레인스의 농촌 지역으로 이동해서 대부분 멕시코나 중미 출신인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가금육 가공업은 노조 적대적인 주 정부와 기업들이 결탁한 역사가 깊은 남부 주들에 몰려 있다. 회사들은 임금을 낮추기 위해 여성 노동자와 인종차별적인 노동시장에 크게 의존해왔다. 안젤라 스튀시(Angela Stuesse)가 <근근이 생계를 꾸리다 (Scratching Out a Living)>라는 책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1970년대 주로 흑인 여성들이 주도한 조직화 운동은 1990년대 초반의 높은 이직률 ― 그 자체로 노동자 행동의 양식인 ― 과 함께 기업들이 텍사스 주나 플로리다 주 남부에 살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나 카리브 해 연안 출신의 이주민들을 채용하도록 자극했다.
정부자료에 의하면 1980년에서 2000년까지 미국 육류가공업에서 “히스패닉” 노동자의 비율은 8.5%에서 28.5%로 세 배 이상 늘어났다. 새로 유입된 노동자의 대다수는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 온지 10년도 안 된 노동자가 과반수이다.
육류 회사들은 지역 사회의 “노동력 부족” 때문에 이주민 고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곤 했다. 다른 기업형 농업 회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일하기 “싫어한다”는 인종주의적인 편견에 기인한다. 흑인 노동자들은 그 기간(1980~2000) 동안 육류가공업체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일했고, 회사는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인종차별을 이용했다. 고용이 어렵다는 속설은 노동자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참담한 노동관행과 형편없는 급여에 기인한 것이다. 경영자들은 이윤을 지키기 위해 현 상태에 도전할 가능성이 낮은 최근에 이주한 사람들을 채용한 것이다.
불법화된 노동
이주민들이 특히 육류 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들 가운데 다수가 겪고 있는 위태로운 법적 조건 때문이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이거나, 난민이거나, 또는 이민 제한 정책이 만든 몇 가지 일시적인 지위로 생활하고 있다.
미국 이민법은 쉽게 착취할 수 있는 노동자에 대한 농업 회사들의 요구와 이민을 제한하려는 이민 배척주의자들의 욕망 사이의 오랜 긴장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기업 경영진과 관리자들이 농업 현장과 공장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 이주민을 찾은 반면, 다른 백인들은 유색인들을 나라에서 추방하는 데 열중했다.
그 결과로 이루어진 타협은 결국 기업들에게 이익이 되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이민정책은 법적 허가 없이 입국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대체로 못 본 척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불법적인 지위는 감시와 감독을 통해 그들을 — 그들의 노동을 — 통제하려는 법 집행 기관과 고용주들의 수고를 용이하게 했다.
켈리 라이틀 헤르난데스가 미국 국경수비대(US Border Patrol) 연구에서 보여주듯이, 추방 위협은 기업들에게 남서부의 미등록 노동자들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을 부여했다. 마찬가지로 신디 하하모비치는 초청노동자 제도(guest-worker programs)*가 어떻게 쉽게 이주민들을 “추방 될 수 있는” 법적 지위에 묶어 놓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이는 이주민들이 조직화는커녕 직장을 그만두는 것조차 쉽지 않게 한다.
(외국 국적의 노동자를 일정 기한 동안 입국을 허용하여 고용하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귀국하게 하는 제도로 한국의 고용허가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될 듯하다. ― 옮긴이 주)
80년대와 90년대에 공화·민주 양당이 — 일부 대형 노동조합과 함께 — 주도한 반이민 운동은 이주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을 불법화하는 것과 그들에 대한 감시 활동을 강화하도록 의회를 부추겼다. 그 이후 억류됐다가 추방된 이주민이 급증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체포와 강제 추방은 눈에 띄게 늘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8년 아이오와 주 포스트빌에서 미국 역사상 단일현장 규모로는 가장 큰 이주민 기습단속*을 주재한 이래 대규모 현장 기습단속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런 기습단속은 트럼프 행정부의 주된 전술로 다시 부활했다. 2017년 이후 현장 기습단속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다양한 업종 — 트레일러 제조업체에서 어린이집과 휴대전화 공장까지 — 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오하이오, 테네시, 미시시피 등지의 육류가공공장도 자주 표적이 되고 있다.
(2008년 5월 12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이 포스트빌에 있는 육류가공공장을 기습단속하여 미등록 이주민 389명을 체포한 사건. 체포된 이들은 거의 모두 라틴계 이주민이었으며, 다른 범죄 기록이 없는 297명은 5개월 징역을 살고 강제 추방되었다. 이 단속에는 무장 요원 900명과 기동헬기가 동원되었다. ― 옮긴이 주)
그런 노동자들을 “필수노동자”로 간주하겠다는 트럼프의 결정은 공허하게 들린다. 그의 행정부가 이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제거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악관은 오랜 반이민 의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팬데믹을 이용하고 있으며, 트럼프는 희생양을 만드는 특유의 정치 전략을 보건 위기에 적합하게 각색하고 있다.
적어도 ‘스미스필드 식품’이라는 주요 육류 회사 하나가 그 뒤를 따랐다. 기업 대변인은 스미스필드의 공장 중 한 곳을 통해 퍼진 사우스다코타 주의 대규모 감염에 대해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을 비난했다.
그동안 출입국관리 요원들은 계속 사람들을 체포, 구금, 추방하고 있다. 미국 국적이 있든 없든 똑같이 계속된 감시는 교도소와 구치소를 바이러스의 진앙지로 바꾸었다. 수감된 사람들은 바이러스로부터 보호를 요구했고, 조직가들과 지지자들은 대량 석방과 적절한 의료 활동을 촉구하고 있다.
교도소와 가공공장은 근본적으로 다른 장소이지만, 팬데믹 시기에는 두 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심한 제약을 받고 살면서 극도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가 총 100건 이상 발생한 개별 현장의 20%는 육류가공공장이고 70%는 교도소와 구치소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색인 이주자들의 노동력에 오랫동안 의존해 온 육류 회사들 중 일부는 노동자를 구하기 위해 주립 교도소와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육류가공 기업은 자유가 현저히 제약된 노동자들에게 크게 의존한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노동자들을 공장에 묶어두려는 의도로, 미국 정부는 노동자들의 선택권을 더욱 제한했다.
만성위기의 첨예화
현재의 비상사태에 대한 연방정부의 대응은 육류가공업계 및 다른 저임금, 고위험 일자리들의 만성화된 위기에 대한 그들의 접근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다시 라인에 세우려는 선출직 공무원들과 육류가공회사들의 강압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기업 이윤의 이름으로 희생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육류 가공공장은 팬데믹 시기에 특히 위험한 곳임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주민들은 코로나바이러스 노출 위험이 높은 다양한 직종에서 노동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연방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대신, 이주민과 그들의 가족 및 이주민 사회를 긴급 대책에서 제외시켰다. 미등록 이주민들은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받을 자격이 없으며 배우자와 자녀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최근 지역경찰과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공조방식을 제한하는 도시들에는 코로나19 관련 지원을 줄이겠다고 위협했다.
이런 정책들은 이주민 사회에 대한 공격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주민들이 언제나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한 순간에 그런 공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이 깨져서 수정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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