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폭동사태와 한국
1.
근래 미국의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대규모 폭동이 난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미국은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국가로서 국내적으로 문화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분리된 사람들을 한 나라로 끌어안고 있습니다. 이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 특히 가장 큰 덩어리의 문화집단인 인종간의 갈등 문제를 문화적, 제도적으로 억누르려고 노력해왔지만, 곳곳에서 충돌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과잉 진압 및 그로 인한 사망사건은 그러한 충돌의 한 예가 되겠죠.
사실 한 사회 내에서 충돌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좀 적은 편이지만, 경찰의 과잉진압과 그로 인한 사망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죠.(백남기 농민의 사망사건 역시 큰 틀에서 보면 과잉진압에 의한 사망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상당히 다릅니다.
2. 한국의 민란과 시위
한국에서 만약 과잉진압으로 인한 사망사건이 벌어진다면, 그리고 그 사망사건에 대해서 정부가 은폐 시도 혹은 무책임한 행태를 보인다면 당연히 시민들의 저항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갈등의 축은 정부-시민의 갈등축으로 정리되며, 여기에서의 시민의 저항권은 주로 ‘질서있는 시위’의 모습으로 표출됩니다. 대체로 평화시위로 마무리 되고, 여기서의 물리적 충돌은 물대포 정도였죠.
이러한 모습이 최근의 민주화된 이후의 모습, 혹은 무기가 없는 현대 한국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 특히 조선 후기부터 내려온 민란의 역사를 보아도 시민(당시는 백성)의 저항권의 행사는 상당히 조직적이고, 질서정연했습니다. 19세기 민란을 살펴보면, 민란은 지역 주민들의 조직에 의해 상당히 체계적으로 일어났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대체로 부정부패를 저지른 지방관을 잡아다가 모욕을 주고 그 지방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지방관은 왕의 명령을 받아 온 사람이기에 직접 상해를 입히는 경우는 적었습니다.
대신 그 지방관을 도와 같은 지역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은 사람들은 몰매를 맞거나 때로는 죽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집을 불태우기도 했죠. 여기서 보이듯 분명히 민란에도 폭력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 폭력은 통제되었습니다. 민란이 지역사회를 혼란상태로 몰아넣어 군중이 죄없는 상점을 약탈하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민란이 일어났어도 지역사회는 계속 자기 규율을 유지했던 것이죠. 저는 이를 ‘민중의 자율성(自律性)’, 곧 민중의 자기규율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도덕적 기반에 의해서 민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하면 민란은 ‘저렇게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비도덕적 행동을 징치하기 위해 뭉친 의로운 행위(=의거(義擧))’라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가 의(義)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19세기에 수많은 민란이 일어났지만, 그것이 약탈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러한 민란의 전통은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끝났던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에 한국에서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던 첫 사건은 바로 3.1운동 이었습니다. 이 3.1운동 당시에 지역 사회 곳곳에서는 지역민들이 모여서 일본의 식민지배기구인 면사무소, 헌병주재소 등을 공격했고, 상당수의 지역에서는 그곳을 불태웠습니다. 몇몇 극단적인 경우들 (예컨대 순사들이 먼저 총을 난사하여 사람들을 죽인 경우)에는 군중들이 일본인 순사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일본인 민간인들에게 지역에서 떠날 것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약 200만명이 참여했고, 일본인 군대와 경찰에 의해 시위하던 조선인 수천명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일어났는데도, 조선의 군중들이 일본인 민간인을 살해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거대한 운동의 규모, 그리고 일본의 잔혹한 진압 방식을 생각해볼 때, 이는 조선인 지역사회들에서 굉장한 자기 규율능력을 보여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민들이 무장한 경우는 어떠할까요? 20세기의 여러 사건들 중에서 시민들이 직접 무장한 대표적인 사건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 시민들은 직접 무장하여 광주 전역을 장악하였는데, 이 당시에 광주에서는 아무도 은행과 상점을 약탈하지 않았습니다. 군대와 경찰이 마비된 상황이었는데도 지역사회의 질서는 유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폭력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분노한 광주의 시민들에 의해 일부 언론사들이 불탔습니다. 이를 보면 5.18 역시 민란의 전통을 일부 계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민란은 일부 폭력을 내포하지만, 그 폭력의 대상은 비도덕적 대상으로 정확히 한정시키며, 시위대열 및 지역사회는 도덕적 자기규율 능력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민란의 전통은 20세기 한국의 저항운동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러한 자기규율능력이 가능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조선의 유교전통에서 기원한 강력한 도덕적 자기규율능력이 한국인들에게 공통의 문화적 자산으로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의 역사, 전통, 문화는 강력한 자기규율능력을 가지고 있고, 특히 공동체 전체의 대의(大義)를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혼란을 틈타 자기 이익을 챙기는 행위(상점에 대한 약탈 등)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이죠.
또, 한국인들은 혈통적, 역사적, 문화적 동일성이 강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집단적 저항운동에서 약탈사건이 발생할 경우, 공동체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간단히 말해서, 만약 민란을 일으킨 군중들과 약탈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점의 주인이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공동체 의식 역시 일탈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한국의 문화 속에 내재된 강력한 공동체 의식과 도덕적 자기규율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3. 미국의 폭동사태
이번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벌어진 흑인들의 폭동은 사건의 발생 자체는 도덕적인 분노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영상에서 명확히 찍힌 바, 경찰의 무리한 행동으로 귀한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흑인들의 운동을 ‘항쟁’이라 부르지 않고 ‘폭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흑인들의 운동이 경찰서를 불태우는데 그치지 않고, 그 주변 건물들을 불태우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점들을 약탈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번 만의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초반에 LA 폭동에서 역시 흑인 군중들은 대규모 상점 약탈을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저는 사실 미국사회에 대한 전문가가 아닙니다.
다만 제 추측을 말씀드리자면, 미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의 사회이기 때문에 각자가 개별적인 문화적 커뮤니티들에 충성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충성심이 국가의 통합력을 넘어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미국 흑인들이 상점주인들(아마 백인들?)도 자기와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약탈을 자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흑인들 내부에서 운동을 자기규율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역시 약탈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폭동에서 흑인들은 약탈을 통해 그들의 분노를 보여주었을 뿐, 그들의 도덕적 자기규율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4. 미국, 다문화 사회의 한계를 드러내다
결국 미국의 폭동사태가 보여주는 바는 미국이라는 다문화 사회의 취약성입니다.
미국은 자신이 가진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등의 요소들, 곧 다문화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미국이라는 국가공동체, 사회공동체에 소속감이 강했다면, 혹은 인종이 다른 동료시민들도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했다면, 정당한 도덕적 감정에서 시작했던 집단행동이 폭동으로 귀결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미국이라는 다문화 국가가 공동체의 통합에 실패하였으며,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소속감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이들이 내실은 허약한 공동체이며, 그 내부의 갈등을 질서있게 해결하는데 실패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공동체는 내부에 갈등을 내포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그 갈등이 대부분 평화시위로 해결되며, 가끔 있는 무장폭력의 상황이 오더라도, 폭력을 최소한으로, 질서있게 사용합니다. 이 점에서 질서없는 폭력을 난사하는 미국의 폭동사태는 다문화 사회라는 미국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미국이 국가공동체를 통합할 만한 자원이 부족해서 이런 걸까요?
미국은 세계제일의 경제력과 세계제일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세계제일의 문화적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력, 군사력, 문화력을 바탕으로 세계 질서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인데도 국가의 통합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은 자원의 부족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미국의 자원부족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다문화사회가 국가로서의 융합 및 지속가능성에 있어서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폭동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 국가가 멸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은 앞으로도 세계제일의 강대국일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 내부의 통합력이 큰 국가는 아닐 것이며, 따라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들을 향해 더 많은 폭력 및 압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는 국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이룩한 ‘질서있는 민주사회’와는 다른 형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5. 한국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시사점
현재의 코로나 사태에서도 드러나듯이, 한국은 정부의 체계적인 방역과 더불어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에 의해 심각한 상황을 잘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가는 총동원체제에 익숙한 강력한 국가이지만, 한국의 시민사회 역시 민란의 전통이 축적되어온 강력한 시민사회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국가는 강력한 권력으로 전염병을 통제하지만, 국민 개인의 일상의 자유 및 정치적 자유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전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강력한 국가, 강력한 시민사회라는 두 가지의 결합을 ‘질서있는 민주사회’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원래 각각 다른 개체인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강력한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한국의 유교전통, 민란 및 민주화운동의 역사, 공동체 문화 등이 다양하게 결합된 결과라 할 것입니다. 이 결합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결속을 유지시켜야 합니다. 즉, 다문화 사회로 가는 것을 가능한 피해야 합니다.
물론 다문화 사회도 장점이 많습니다. 미국은 다문화사회를 통해 세계의 인재들을 빨아들여 사실상의 ‘제국’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같은 다문화사회를 구성할 경우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할만한 재력과 군사력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의 강점은 역사적 구성물로서의 한국사회 그 자체라고 생각하며, 이 강점을 최대한 유지해야 한국이라는 공동체, 더 나아가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다양한 인종집단, 전세계적 집단들에서 인재를 뽑아오는 다문화 사회의 장점은 없지만, 내적 단결력 및 도덕적 자기규율능력이 강한 한국사회의 장점을 살리는 방식으로 국가의 미래를 진행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출산율을 다시 올라가게 할만한 정책을 세우는게 시급한 과제일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태어날때부터의 숙명으로서 부여받는 사람들로 우리의 뒷세대를 채우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경우, 반드시 순수한국 혈통임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문화를 흡수하고, 한국인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현재의 출산율 상황으로는 어느정도의 이민을 수용하는 것을 불가피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이민하여 온 사람들에게 최대한 한국문화의 동화교육을 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미국의 폭동사태는 다문화 사회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알려줍니다. 그 사회는 통합력이 약하며, 사회내부의 갈등을 질서있게 해결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불안과 통제되지 않는 갈등이 일상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반면 우리사회는 오랜 공동체에서 비롯된 단일 문화가 있으며, 이는 사회적 통합력이 우수하고, 갈등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라고 해서, 모두 미국의 방식을 따를 필요는 없으며, 따라 갈수도 없습니다. 미국이 다문화 사회로서 성공한 것은 그 거대한 국토, 경제력, 군사력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미국과 같은 자원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한국의 목표는 미국과 같은 세계 패권국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유지하면서, 미국보다 시민들이 더 안정되고,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강점을 파악하고, 그 강점을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향은 무엇일까요? 한국의 문화적 단일성에 기반하며, 그 기반위에 건설된 자유롭고 질서있는 민주사회. 그것이 한국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글에서 흑인, 백인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흑인이 워낙 차별의 용어로 썼기 때문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부르는 등 다른 표현이 있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갈등의 축은 사실상 피부색에 따른 인종의 구분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미 있는 갈등축을 표현하는 데에는 흑인, 백인과 같은 표현이 오히려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흑인과 백인이라는 각각의 인종에 대해서 가치판단(백인이 잘났고, 흑인이 못났다 는 등) 은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인종에 상관없이 각각 평등한 인격을 가진 존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인종에 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한 상태에서 이 용어를 쓰려고 합니다.
https://m.cafe.daum.net/beyondprogress/gb1M/479?listURI=%2Fbeyondprogress%2Fgb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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