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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2007년의 정파갈등(7) - 제도를 둘러싼 파벌 갈등(1)
먼저 최고위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대회 대의원, 중앙위원 등 당직과 공직 후보의 선출 방법과 관련된 제도를 바꾸기 위한 (주로 평등파의) 시도에 대한 중앙당의 대응방식을 살펴보자.

민주노동당은 2001년 후반 자주파 계열 파벌의 대대적인 입당, 2002년 지방선거에서 제3당 부상, 2003년 후반 전농의 집단 입당 등으로 당원이 증가하고 당세가 확장되자, 당의 이념적 성격을 명확히 하고, 일반 당원과 계급 대중 조직의 적극적이고 민주적인 참여를 보장하며, 지도 집행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제도를 개선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2003년 임시 당대회에서 최고 지도, 집행 체제로서 당3역이 사실상 모든 현안을 결정하던 이전의 단일지도체제가 집단지도체제로 바뀌었고, 노동 부문과 여성 최고위원 할당제(각각 1인, 4인)를 도입했다.

또한 2004년 2월에 개최된 중앙위원회에서는 당규 개정을 통해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선출 방법으로 1인 4표제를 도입했으며, 2004년 총선 직후인 5월에 개최된 중앙위원회에서는 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의 당3역은 결선 투표를 실시하게 했다.

그리고 같은 중앙위원회에서 여성 부문과 일반 부문의 최고위원 7인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당원 1인이 7표를 행사하는 1인 7표제를 도입했으며, 노동 부문과 농민 부문에 할당되는 최고위원 2인은 각각 민주노총과 전농이 후보 추천권을 행사하게 하고 당원의 찬반투표로 당락을 결정하기로 했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연임과 당직, 공직 겸직을 금지하는 당규도 제정했다.

이밖에도 당대회 대의원과 중앙위원의 부문 할당에서 노동 부문과 농민 부문의 비율을 2 대 1로 하기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비율은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하게 했다.

그런데 이런 제도들은 각각 나름의 명분 때문에 도입됐지만, 현실에 적용되면서 원래 의도했던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주파는 자주파대로 또 평등파는 평등파대로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초래해,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개혁'의 대상이 됐다.

2020년 6월 2일 화요일자 글입니다.
내일도 주제는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