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이후 남은 과제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비인도적"이라 하고, ICC가 발부한 네타냐후 총리의 체포영장을 언급하며 "유럽은 자국 입국 시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도 판단해 보자"고 한 것은 분명 이전과 다른 진일보한 태도였다. 이스라엘도 그 무게를 읽었을 것이다. 신속한 석방에는 그 압박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날, 청와대는 "이스라엘 측이 우리 국민을 즉시 석방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대통령이 "비인도적"이라 비판하는데 동시에 청외대가 "높이 평가"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공존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의 행동 자체가 비인도적이었다면, 그 비인도적 행동을 거둔 것을 칭찬할 이유는 없다. 이 양면적 발언은 한국이 이스라엘을 향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의 실질적 한계를 정부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그 한계는 구조적이다. 단순히 청와대 참모들의 정무적 미숙함이 아니다. 이는 철저히 관료 사회의 구조적 사대성과 현실 정치의 장벽에서 기인한다. "복잡하다”, "따로 검토하겠다”며 책임을 미루고 쩔쩔매는 풍경. 주권 국가의 외교안보라인이 자국민의 안위나 보편적 인권 규범보다 미국과 동맹국의 눈치, 그리고 침략국의 해명을 먼저 대변하려 하는 오랜 관료주의적 관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비겁함 너머에는 견고한 군사·경제적 공모 구조가 버티고 있다. 말로는 인권과 규범을 외치지만, 이스라엘 정권과 맺은 무기 거래 계약서는 단 한 줄도 수정되지 않았다. 국내 방산 대기업들이 맺은 차세대 드론 및 AI 표적 시스템 공동 개발 MOU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 종식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결의안 앞에서도 한국은 기권과 침묵의 스탠스를 요지부동으로 유지하고 있다. 국민주권정부로의 전환이 이루어진지 1년이 넘어가는 현재에도 말이다.


결국 외교적 언사가 견고한 군사·경제적 이권 구조를 균열 내지 못할 때, 정부의 그 어떤 강경 기류나 수사 역시 국내 정치용 ‘메아리’에 머물 뿐이다. 관료들의 관성적·사대주의적 방관을 혁파하고 실질적인 무기 거래의 공모 구조를 끊어내는 인적·구조적 쇄신이 따르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외교는 이해관계에 따라 원칙을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껍데기 외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진짜 질문


이 사건의 핵심은 석방이 아니다. 두 가지 질문이다.


하나는, 왜 한국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여권이 무효화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스라엘 해군에 나포될 것을 알면서도 그 배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국가가 여권을 빼앗고, 외교부가 '안전'을 이유로 그들의 행동을 통제할 때, 그들은 오히려 국가가 지키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키러 간 것이다. 그 무언가는 인간의 존엄이고, 국제법이고, 한국이 스스로 말해온 헌법적 가치들이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한국인을 즉시 석방한 것이 순수한 외교 성과인가, 아니면 한국이 이스라엘에게 그만큼 '잃기 싫은 나라'이기 때문인가?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이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탄약을 납품하고, 드론 기술을 수입하고, 국제 결의에서 침묵하는 나라가, 그 모든 공모의 대가로 얻어낸 '신속 석방'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한국계 미국인 활동가인 조나단 승준 리(Jonathan Seungjun Lee, 또는 조나단 빅토르 리)는 출항 전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억압이 결국 우리 모두의 삶으로 밀려올 것임을 깨닫게 될 순간이 올 것입니다."


외교안보 관료들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질책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구조를 바꾸는 것이 되려면, 청와대의 "높이 평가"라는 말 대신 다음 행동이 따라와야 한다. 즉, 무기 거래의 전면 재검토, 국제 결의에서의 분명한 입장 표명, 그리고 팔레스타인 봉쇄를 뚫으러 간 시민을 범죄자 취급한 여권 무효화 조치에 대한 해명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전면적 외교안보라인의 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