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시조는 단군일지라도
민족의 기틀은 장수왕이 만듦
한국의 직계는 십이대영자 문화임
고조선과 부여는 분명 같은 시기를 병행했음에도 서로 데면데면함
같은 십이대영자 문화고, 같은 예맥인으로 분류되지만
즈그끼리는 데면데면임
근데, 이 조선과 부여의 최초통합자는 누구냐
고구려임
조선먹고 다물이라는 이름 붙인 지명을 만들지 않나
그리고
사실 삼한의 경우엔 백제와 신라가 제대로 국가로 등장하는 3~4세기 시점 전까지는
한국사로 보기 애매함
왜, 반도일본어설 부터 시작해서, 백제와 신라가 왕통은 빨라도 늦게 사실상의 국가가 형성된걸 봐서는
삼한지역 통합에 애를 먹은거임
마한계가 일본 쪽으로 이어지는 분가(니니기)를 내놓은 만큼
삼한은 최소 3세기 이전엔 한국사로 편입시킬 수는 있어도, 민족사로는 편입 못함
근데, 이후에 이 삼한에 대한 통합 쐐기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박는 사람이 누구냐
"장수왕"
광개토 대왕릉비는 구민과 예한을 동등하게 대우하라고 박아둠
그리고 장수왕이 고구려를 고려로 국호개칭함
부여와 조선을 통합한 이름은 고구려고
고구려와 삼한을 통합한 이름은 고려임
가장 어떠한 정통적인 국호는
조선, 부여, 삼한이 아니라, 고려임
- dc official App
@부산의아이 삼한문화라는게 여러 북방 세력이 내려오면서 형성이 된거야… 그리고 이 ‘여러’는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도 포함이 됨.익산 건마국은 위만 이전 고조선 유민이 형성했고, 침미다례는 고조선 멸망이후 유민들이 많이 들어갔음. 너거 말한 북방과 안전히 별개로서의 한반도 남부문화는 진국이라 부르던 시기지 삼한이라고 불릴때 이미 요동에서 농경하던 일파들은
@로붕이2(122.43) 애당초 본문 한국사는 가능해도 민족사는 아님임 - dc App
@로붕이2(122.43) 삼한의 기층 주류가 조선계, 부여계이느냐는 그걸로 설명 안됨 건마국, 침미다례같은 예시를 들고오더라도 - dc App
@로붕이2(122.43) 꼭 이런 다원론 내세우는 것들이 주류 중심은 꼭 무시함 발해는 고구려와 말갈의 다민족적을 띈다 인구론은 어데갔노?? 농경하던 중심고구려인, 유목한다고 말갈로 분류된 고구려인, 오랜 복속으로 고구려화 한 말갈 등 쌩말갈은 조또 없고 죄 씨발 고구려계 말갈이나 고구려화 말갈인디 여기서 말갈 드립치면서 발해는 고구려랑 다르다 이지랄 처하는 인구론 쏘오오오옥 빼고 이야기함 - dc App
@로붕이2(122.43) 많건 적건 다 한반도로 들어왔음 왜? 유목민들이 날뛰니깐!서쪽은 중원계가 차지했으니깐! 한국사와 관련없다는게 아다기보단 para-korean세력의 일파라는거지 거란과 몽골은 분명한 연결선상이 있지만, 몽골이 거란을 자신들의 원형이라고 하지 않는것 처럼. 그리고 거란이 사라진것 처럼
@로붕이2(122.43) 농경한다고 인구 주류 과반은 고구려인이 차지 했을건 전혀 생각도 안하고 유목하는 쪽은 인구가 적은건 생각도 안하고 지배층 고구려 피지배 말갈로 이원화 하는게 그 다원론의 함정임 주류중심이 있고 다원적인걸 생각하는게 아니라 다원론만 내세운거 - dc App
@로붕이2(122.43) 한반도로 다 들어왔다고 보기엔 정황증거가 안맞음 소거법 했냐??? 고구려가 기자신 모시는 이유는 뭘까? 조선 계승의식을 보인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건데?? 닌 그러면 낙랑군이 모조리 중국인들로 채워졌다고 보냐? - dc App
@부산의아이 그렇게치면 현대 한국인과 한민족을 표방하는 민족집단의 주류는 건마국, 침미다례등 삼한의 농경민이 다수였는걸? 아까말한대로 너가말하는 유목시덜 고구려세력, 그리고 지금 말하는 중심고구려인,유목한다고 말갈로 분류된 고구려인, 고구려화한 말갈인 다수가 요나라에게 복속하거나 부흥운동을 하고, 금나라의 주축이 됌. 고려에 온 발해집단은 왕가와 귀족들처럼 소수였음
@로붕이2(122.43) 발해 인구 유입은 참고로 사료에 나와있다, 왕족 귀족만 온게 아님 닌 그냥 내가 이야기 한 인구론을 네 입맛에 맞게만 해석하는 중임 - dc App
@부산의아이 기자설화는 한나라가 낙랑군을 형성하면서 만들어낸거지 진짜 기자가 온게 아니라는게 현대 관점이에요;; 그리고 고구려의 기자신이 그 기자신인지도 모르고(왕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중에 길지,긔자,기장이 나타남으로 왕권숭배일 가능성이 있음) 또 고구려는 직접적으로 고조선을 계승한다고도 안했어요;; 부여에서 내려온 일파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했죠?
@로붕이2(122.43) 북방소국들이 식별된다는건 역으로말해서 마한주류기층과 북방유이민 집단이 구분된단 소리임 - dc App
@부산의아이 제가 이 긴 말싸움의 초반에 말했듯이 낙랑군은 소수의 중원계통과 다수의 평양토착계통의 친중국적 공동정권이었을거라는 입장입니다?
@로붕이2(122.43) 후대 정치체가 그 신화를 자기 정통성 자원으로 썼는가는 별개의 문제임 - dc App
@로붕이2(122.43) 고작 하는 소리가 나도 동의 가능한 낙랑군 드립ㅋㅋㅋㅋ 그거 부정한 적 없는데?? 고구려가 그토록 낙랑군 후드려 깐 이유가 뭐겠노 - dc App
@부산의아이 내가 그 글에 말했듯이 북방 유목민이 한꺼번에 다 들어온게 아니라, 시간차가 있다고도 말했었죠? 마한의 주류층은 위만이전 고조선계 유이민 세력이고, 마한의 형성이후 (고조서누멸망후) 새롭게 북방유이민들이 들어왔습니다(얘네가 소위 침미다례나 사로로 흘러들어간 조선인이라 추정됩니다)
@로붕이2(122.43) 부여 계통을 말하면서 조선 계승의식은 동시에 나타날 수 있음 그럼 왕건고려는 어케설명할거놐ㅋㅋㅋ - dc App
@로붕이2(122.43) 1. 마한 주류가 위만 이전 고조선계였다는 문헌적 쐐기가 없음. 일부 유민, 일부 소국, 일부 지배층 가능성은 말할 수 있음. 그런데 “마한 주류층”이라고 박으려면 증거 체급이 완전히 다름. 2. 그렇게 조선계가 주류였으면 백제 국가화 지연이 설명 안 됨. 부여계 백제가 마한을 먹었는데, 상대가 조선계 예어권·북방계 정치문법에 가까웠다면 통합 속도가 훨씬 빨랐어야 함. 그런데 백제는 한참 걸려서 4세기에야 전성기임. 3. 침미다례·사로로 흘러간 조선계 유민을 인정해도, 그건 ‘일부 유입’임. 그게 곧 마한 전체·삼한 전체의 본류가 조선계라는 말은 아님. 오히려 특정 소국이나 특정 권역에 북방 유이민층이 식별된다는 말은, 일반 삼한 기층과 구분된다는 뜻에 가까움. - dc App
@로붕이2(122.43) 4. 결국 “진국은 남방 선행층, 삼한은 조선계”라고 선을 긋는데, 그 전환을 증명 못 함. 진국 시기 남방 기층이 있었고, 그 위에 시간차 북방 유민이 얹혔다면 결론은 “삼한은 혼합권”이지 “마한 주류는 조선계”가 아님. - dc App
@부산의아이 아니 그럼 고조선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없고, 광개토대왕릉이라는 공식기록에서 부여에서 내려왔다고하는데 뭘 믿어야하는거임? 고구려가 자기는 고조선을 계승하여 한나라랑 싸운다! 낙랑군을 치면서 조국의 적을 쳤다! 뭐 이런 표현이 하나라도 있음? 있는 기록과 대다수의 유물은 무시하고 아무튼 지리적으로 가깝고 빠르게 컸음으로 고구려는 고조선을 이은 국가임!하는겨?
@로붕이2(122.43) 직접 계승 선언이 없으면 계승성이 없다는 것도 말이 안 됨고대국가가 항상 “우리는 뭐뭐의 계승국이다”라고 현대 민족주의식 선언문을 남기는 게 아님.계승성은 보통 이런 걸 같이 봄.지리적 흡수인구·기층 흡수정치 인프라 계승제의·상징 수용대외 적대관계의 연속후대 국호·정통의식주변 기록의 인식이 중요함그런 기층레벨을 전혀 생각을 란하뉴 - dc App
@부산의아이 그래! 그 혼합권이 우리 한국사에 원류야! 걔네를 기반으로 삼국이 통일되었고! 후삼국이 되었다가! 그중 일원이었던 고려가 다시 통일했고! 초기에 신라가 못흡수한 발해계를 흡수했고! 나
@로붕이2(122.43) 니말을 최대한 수용해도 고구려의 기자신이 은나라 기자인지, 왕권신인지 확정 못 한다면 “단정 불가”가 맞지, “그러니 조선계 상징성 없음”으로 가면 비약임. - dc App
@로붕이2(122.43) 근데 니가하는건 기층과 원류의 혼동임 - dc App
@로붕이2(122.43) 머지 초기 고조선과 고구려 지역에서 뛰어놀던 사람들? 절반은 요나라가 잡아가고, 나머진 말갈과 부흥운동하다가 금나라세운다음 몽골한테 먹혀 사라졌어! 그게 그들의 끝이야
@로붕이2(122.43) 결국 기층과 원류를 혼동한 소리만 하고있노 - dc App
@로붕이2(122.43) 그게 동북공정이 하는 말임 - dc App
@로붕이2(122.43) 동북공정 지지자야 - dc App
@부산의아이 아니… 삼한에 들어간 북방민이 지배층이된 정황증거가 있지만 주류인지 모르니 단정불가해서 원류라 할 수 있고, 고구려의 조선계승의식은 보이지도않고 자기네가 부여라하는데(심지어 단군을 모시면 모셨지, 한나라가 낙랑통치 정당화에 쓸려고 만든 기자신화에 덧데어서) 기자가 기서여인지 왕권신인지 모르니 단정 불가지만 고구려까 빨리강해졌으니 원류라 할 수 있는건 뭔…
@부산의아이 아니 도대체 신라로부터, 그게 이니더라도 고백신으로부터 우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관점은 세종실록지리 35권, 세종 9년 3월 13일에서도 나오는데 내가 왜 동북공정 지지자가 되는거야?
@로붕이2(122.43) 왜 역사가 중국사가 아니면 한국사여야하는거야? 자유민주주의 지지안하면 전체주의임?
@로붕이2(122.43) 삼한에 대해서는 일부 북방 유민 정황만으로 원류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고구려에 대해서는 명시적 고조선 계승 선언이 없다는 이유로 부정하는 건 증거 기준이 다르다. 엄격하게 볼 거면 삼한 원류론도 단정 불가고, 정황을 인정할 거면 고구려의 조선·낙랑권 흡수와 북방 통합성도 인정해야 한다. 고구려가 부여계 왕통이라는 점은 조선권 흡수와 모순되지 않는다. 문제는 순수 혈통이 아니라, 어떤 정치체가 어떤 기층과 인프라를 흡수해 한국사 정통축이 되었느냐 아님?? 근데 고구려는 기자신 숭배와 다물군 등의 용어 사용등이 있었음 어떠한 명시라고 할만한 것도 있는 반면 마한은 오로지 정황증거만 있음 그래서요, - dc App
@로붕이2(122.43) 원류와 기층을 혼동해서 정통에서 제외한다는 것 자체가 동북공정으로 닿는 논리거든 - dc App
@로붕이2(122.43)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를 한국사 본류에서 떼어내고, ‘요동사/동북지역사/변경사’로 중립화한 뒤, 한국사는 신라 이후 한반도 남부 농경민사로 축소하는 것이 동북공정의 논리거든 - dc App
@로붕이2(122.43) 동북공정 지지자야 - dc App
@로붕이2(122.43) 이조 판서 허조가 계하기를,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공을 보답하는 것입니다. 우리 왕조의 전장·문물은 신라의 제도를 증감했으니, 다만 신라 시조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삼국이 정립 대치하여 서로 막상막하였으니, 이것을 버리고 저것만 취할 수는 없다." -세종실록 35권, 9년 3월 13일-
@로붕이2(122.43) 결국 갖고온 말이 그거라묜 기층과 원류를 혼동하는 것일 뿐 - dc App
@부산의아이 아니 신라라는 정치체가 고대 한국어와 삼국이 건립해놓은 인프라를 흡수해서 너가 말하는 한국쪽 기록도 신라가 저술한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구려본기인데;; 그럼 아무리 생각해비도 신라와 그 주축이 된 삼한지역이 정통이 되는거아님? 너가 말하면 말할수록 나보다 더 신라가 적통이라고 하게되는건 앎?
@로붕이2(122.43) 결국 고려는 누가 만들었다? 고구려 호족들이요 ㅅㄱ - dc App
@로붕이2(122.43) 니말대로면 국호는 고려도 한도 아닌 계림이 가장 올바른 국호다야. 삼국을 통일한 정치체고, 조선이주민의 정황이 나타나며, 광개토대왕의 왜 정벌이후 고구려 문화도 흡수하였으며, 9주5소경, 9서당 등으로 한국의 근간이 되는 모든 정치체와 문화들을 자기주도로 흡수했으니
@로붕이2(122.43) 신라가 한것진한·삼한권을 국가화함.백제 잔여권을 흡수함.고구려 남부 일부와 유민 일부를 흡수함.당을 몰아내고 한반도 남부 중심 질서를 세움.후대 제도·문물 기층에 큰 영향을 줌.신라가 못 한 것고구려 북방 본류 전체 계승.발해 포괄.만주·요동 고구려계 잔여 흡수.고려/고구려 국호 계승.부여·조선·고구려 정통축의 총합화. - dc App
@로붕이2(122.43) 뭘 얼마나 했냐, 자기화를 다 했냐는 다른문제 애당초 각보던 고구려 백제계가 일어나서 조진거는 자기화 못했쥬? - dc App
@로붕이2(122.43) 그 고구려 호족 출신 패서집단도 결국 신라아래에서 신라문화 듬뿍받으며 성장했는데? 그렇게치면 한국사의 가장 지대한 영향을끼친 조선은 백제 전주쪽에 있다가 쌍성총관부에서 여진족과 북덕거리며 몽골부역질하던 이성계집안이니 한국사의 적통은 접경에서 몽골 녹 먹으면서 큰 접경고려인임?
@로붕이2(122.43) 엌ㅋㅋㅋㅋㅋㅋ 정치체 변경방식도 정변도, 외적공격도 아닌 한국사에서 일어난 적 없는 형태로 분열돼서 찢긴것만 봐돜ㅋㅋㅋ - dc App
@로붕이2(122.43) 결국에 기층과 원류 구분 못하는 방식으로 이야기 하니까 그런 소리밖에 못하는거야 동북공정 지지자야 - dc App
@부산의아이 그리고 백보물러서서 고려는 영토의 사회나 환경을 다 너가 말하는 한반도 북방계로 바꿈? 반대아님? 패서집단도 결국 신라 통일신라당시 신라왕조하에 들어온 유교, 불교 지향하면서 소위 북방계와 다른 한반도쪽 물질문화를 이어갔는데?
@로붕이2(122.43) 영향받은 환경과 정통축은 구분 못하노ㅋㅋㅋㅋㅋ 고려가 북진에 그렇게 목멨던건 어캐 설명하놐ㅋㅋㅋㅋㅋㅋ - dc App
@로붕이2(122.43) 불교 유교는 고규려가 제일 먼저 도입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내부종파? 화엄종, 선종, 천태종, 진언종 이소리 할거냨ㅋㅋㅋㅋㅋㅋ - dc App
@로붕이2(122.43) 도교마저도 고구려가 제일 먼저 도입했는뎈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 십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로붕이2(122.43) 영향받았다를 정통이랑 연결하는 논지가 뭐임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로붕이2(122.43) 엌ㅋㅋㅋㅋ 정통원류와 기층재료를 구분하라고 그렇게그렇게 이야기 하는뎈ㅋㅋㅋㅋㅋ 그리곸ㅋㅋㅋㅋ 그 신라돜ㅋㅋㅋㅋ 결국ㅋㅋㅋㅋ 사로국ㅋㅋㅋㅋㅋㅋ 조선곜ㅋㅋㅋㅋ 근뎈ㅋㅋㅋㅋ 신라는ㅋㅋㅋㅋ 조선계승의싴ㅋㅋㅋㅋ 없었음ㅋㅋㅋㅋㅋㅋ 삼한일통론ㅋㅋㅋㅋㅋ 꺼냄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로붕이2(122.43) 기자신이닠ㅋㅋㅋ 다물군이닠ㅋㅋㅋ 하면서 나름의ㅋㅋㅋㅋㅋ 계승의식이나 정통화 정당화는ㅋㅋㅋㅋ 있었을거로 판단되는ㅋㅋㅋㅋㅋ 고구려랑 달맄ㅋㅋㅋㅋㅋ 신라는ㅋㅋㅋㅋㅋ 이후엨ㅋㅋㅋㅋㅋ 국가전략적 이데올로기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돼돜ㅋㅋㅋㅋㅋㅋㅋ 조선계승을 내세운적이 없닼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부산의아이 아니 한국사 원류가 사로국 초기 형성집단이고, 얘네를 중심으로 추기적인 북방계 요소가 기층이 되면서 이루어졌는데;; 이걸 거부 할 수가 있음? 이에 반박되는 요소가 있음? 당장에 고대 한국어를 신라 경주에서 쓰이던 표현을 기준으로 삼는데?
@로붕이2(122.43) 엌ㅋㅋㅋㅋ 동북공정 지지잨ㅋㅋㅋㅋㅋㅋ - dc App
@로붕이2(122.43)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어읰ㅋㅋㅋㅋ 조상잌ㅋㅋㅋㅋ 신라엌ㅋㅋㅋㅋ 드립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준보이니까ㅋㅋㅋㅋㅋㅋ 동북공정하러 갘ㅋㅋㅋㅋㅋㅋ 반도일본어가설부텈ㅋㅋㅋㅋㅋㅋㅋ 삼한어와 예맥어갘ㅋㅋㅋㅋ 달랐던 정황잌ㅋㅋㅋㅋㅋ 온 사방팔방 보이는뎈ㅋㅋㅋㅋㅋㅋㅋ 신라엌ㅋㅋㅋㅋㅋㅋ - dc App
@부산의아이 신라는 대놓고 조선계승의식 했잖아? 삼국사기 신라본기 첫장이 조선유민으로 구성된 6촌이 사로국을 세웠다인데? 단군도 신라가 최초로 선인왕검이라고 하고, 기자에 대헤서도 당나라에게 대현자의 덕이 우리에게 퍼져서라고 말하고?
@로붕이2(122.43) 태조대왕잌ㅋㅋㅋㅋ 마한인을ㅋㅋㅋㅋㅋ 왜 군사동원할정도롴ㅋㅋㅋㅋㅋㅋ 많았겠놐ㅋㅋㅋㅋㅋㅋㅋㅋ 백제갘ㅋㅋㅋㅋㅋㅋㅋ 다ㅋㅋㅋㅋㅋ 집어던진거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긐ㅋㅋㅋㅋㅋㅋㅋ 사민영향으롴ㅋㅋㅋㅋㅋㅋㅋ 야요이문화랑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본이 결성되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 일본잌ㅋㅋㅋㅋㅋㅋㅋ 마한 후계임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부산의아이 그리고 너 이거 주딱이 이딴식으로 채팅치지말라고 하지 않았나?
@로붕이2(122.43) 삼국유사는 안봤냨ㅋㅋㅋㅋㅋㅋㅋㅋ 애당촠ㅋㅋㅋㅋㅋㅋㅋ 삼국사기는ㅋㅋㅋㅋㅋㅋ 고려시대에 쓰였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 고려갘ㅋㅋㅋㅋㅋ 단군시조론 나오는 상황엨ㅋㅋㅋㅋㅋㅋㅋㅋ 각색ㅋㅋㅋㅋㅋ 했다는 생각은ㅋㅋㅋㅋㅋ 안하냨ㅋㅋㅋㅋㅋ 삼국유사엔ㅋㅋㅋㅋㅋㅋㅋㅋ 신라갘ㅋㅋㅋㅋㅋㅋ 고조선 계승ㅋㅋㅋㅋㅋ 했단소리갘ㅋㅋㅋㅋㅋㅋ 딱히 안나온닼ㅋㅋㅋㅋㅋㅋ - dc App
@부산의아이 그럼 너가말한 최초의 남북모두를 통일한 고려가 인정을 했네? 신라는 고조선과의 계승이 있다고? 반면 그 고려가 고구려에 대해서는 고조선과의 연관성을 안썼네? 그럼 누가 더 적통이지?
@로붕이2(122.43) 그래, 제대로 이야기 해줄게, 신라의 조선계승의식은 없거나 약했다, 정황 및 사료가 신라가 조선정통론을 내세운게 아니라, 삼한일통론을 내세웠다, 조선을 정말로 계승했다면, 북방으로 나갈 건덕지는 있었다, 그러나 안했다, 아마 진한통합 및 동화방식으로 썼을 골품제를 통일 이후에도 계속 유지하였고, 조선계승론은, 삼국사기에만 나오고 삼국유사에는 안나온다, 물론 니 마한정통론에 따라서 이미 삼한은 조선을 승계했음으로 신라가 내비칠 이유가 없었다도 되는데 최소한 그 소리 할거면 준왕소리도 같이 신라가 같이 했어야 했다, 근데 안했다 - dc App
@로붕이2(122.43) 게다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경주 김씨쪽인데? 역사적 정체성, 문화양식 모두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남부의 호족을 문벌로 받아드렸는데 그럼 누가 다수고 누가 원류고 누가 적통임?
@로붕이2(122.43) 결국 원류와 기층 구분 못한다고 계속 니가 소리를 하고 있는데 왜 자꾸 그러냐 신라계 인물이 기록을 썼다. 남부 호족이 고려 문벌이 됐다. 현대 한국의 인구·생활문화 기층은 남부 농경민이 크다. 그러니 신라/삼한이 원류다. 이건 기층·다수·기록권을 원류·정통축으로 바꾸는 오류임. - dc App
@로붕이2(122.43) 제에에에에에에발 원류와 기층을 구분하라고 - dc App
@로붕이2(122.43) 그래서, 한국의 한복은 북방계고, 부여, 고구려에서 원류가 나오지, 삼한 의복에서 나오냐 언어는? 결국 북방계 언어인 고구려어가 기반이지 반도일본어 어휘로 생각되는건 전혀 우리가 쓰고있지를 않다 그게 원류라고 내가 말했잖어 - dc App
@로붕이2(122.43) 그럼 신라는 삼한일통론을 지지했고, 그 위에서 고려는 삼한외부가 아니라 삼한 내부에서 다시 삼한을 통일했고(훈요10조), 게다가 고려는 자신의 대몽항쟁에서 확실한 정체성통일을 위해 단군을 내세웠고 그리면서 동시에 유일하게 신라에게만 조선의 유민이 사로를 건립한다고 말했네? 신라가 고려가 상호보완으로 서로의 정통성을 인정주는 증거아님? 뭘 더 말해야함?
@로붕이2(122.43) 신라에 조선유민 전승이 있다 → 신라는 조선계승성을 가진다 → 신라는 삼한일통론을 주장했다 → 고려도 삼한을 통일했다고 했다 → 고려가 단군을 세웠다 → 그러니 신라와 고려가 서로 정통성을 인정했다 → 따라서 신라/삼한이 적통이다 식의 논리점프는 ㄴㄴ해 - dc App
@부산의아이 첫번째 삼한의 의복은 북방계와 공유한다 두번째 한국어의 계보는 알려지지않았다. (반도일본어가 주류학설이 아니에요;; 이걸 말하고싶은거구나) 다만 모름에도 우리가 설정한 고대한국어의 연구는 신라어이다. 이유? 단순히 특정단어만 나온 고구려어와 달리, 향가라는 신라에서 기원한 글이 분명있고, 또 당시 일본어보다 현댜 한국어와 연관성이 더 높다.
@로붕이2(122.43) 애당초 단군 꺼낸거 자체가 신라 단독 정통론을 뛰어넘는거고 그당시에 지금처럼 역사학이 고고학과 온갖걸 엮어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거임 - dc App
@로붕이2(122.43) 지금 연구 편의상 기준이랑, 역사적 원류 섞어서 이상하게 해독하고 있노 - dc App
@로붕이2(122.43) 말했제, 조선어와 부여어는 방언연속체고, 삼한의 반도일본어족하곤 달랐다고 고조선 유민인 신라가 사로국부터 시작해서 진한통합하는데 있어서 조선어랑 한어의 반도일본어족이 달랐다고 하 진짜 말 몬알아묵노 - dc App
@로붕이2(122.43) 너가 고대 한국어를 뭐라고 생각하는진 모르겠으나, 고대 한국어의 연구는 신라 향가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신라향가에 쓰인 언어는 일본어계가 아니라 한국어계통이야. 또 신라에서 쓰인 서기체도 명백히 한국어계통이야. 신라에서 쓰인 언어가 우리가 쓰던 언어임은 부정 할 수 없어. 다만 고구려어? 몰라! 기록이 없어서 단어만있지 글이 없어! 이러한 상황에서 원류는?
@로붕이2(122.43) 한마디로 요역하면 삼한사는 땅의 역사다, 튀르크가 아나톨리아랑 괵튀르크 역사 둘다 배우는거 처럼 - dc App
@로붕이2(122.43) 신라어는 고대 한국어 연구의 주요 자료지, 한국어 원류의 독점 증거가 아니다. 연구 편의와 역사 원류를 혼동하면 안 된다고 내가 몇번을 말하냐 고구려어가 오히려 우리 기초어휘랑은 더 닿아있다고 애당초 신라어랑 백제어 자체가 조선어-부여어의 예어와 남방 반도일본어가 섞이면서 생긴 언어인데 반해 일본어랑은 기초어휘가 안맞다고 언어학 공뷰 해봤음??? - dc App
@로붕이2(122.43) 너 그 반도일본어족 아직 주류학설 아니다;; 애당초 일본어도 계보가 어케되는지 모름;; 반도 일본어의 문제는 반도에 쓰였다는 일본어보다 류큐어가 더 고어였단거야. 그럼 류큐-일본-한반도 남부 였다가 남부에서 후퇴했다는건데? 이럼 반도 일본어설이 성립이 불가함.
@로붕이2(122.43) 이미 그 향찰자료들도, 신라가 한창크던 1세기, 2세기 자료가 아님, 거의 6세기 말 작품이 자료임 장수왕이, 왜 5세기 초에, 한예를 동등하게 대우하라 했냐, 5세기에는 이미 고대한국어로 통합이 다됐단 정황증거임 말갈? 거란? 언급도 없어 그냥 연구편의점이랑 원류를 왜 혼동하노??? - dc App
@부산의아이 아니 언어학자도 잘 몰라하는 한국어 언어학 계보를 뭘 그렇게 확신하며 말하는거임?
@부산의아이 아니 예가 남하해서 한이 된거라고;; 말갈이랑 여진이라 다르다는말임?
@로붕이2(122.43) 주류확정설이 아니라는 것과 설명력이 없다는 다른 이야기임 개뜬금 없는 마한인들이 태조대왕이 왜, 어떻게, 동원했노? 그것도 군대로 동원했다는건, 숫자가 장난아니란건데? 반도일본어는 당연히 일본어보다 고어임, 일본은 실제 현 천황 왕통의 국체가 4세기 이후에나 나옴, 후퇴한거 맞음, 백제는 온사방팔방 흩뿌리고, 신라는 좀 더 점진적 통합을 했던걸로 파악되는데, 4세기 백제가 신라를 압박하고 고구려를 치는 등, 신라에 조선-부여어계 압박이 들어와서 속도가 빨라졌을거임 - dc App
@로붕이2(122.43) 난 애당초 언어학, 고고학, 역사사료, 다 공부하고 이소리 하는건데 뭔.... - dc App
@로붕이2(122.43) 에랑 한은 다르다고 - dc App
@로붕이2(122.43) 반도일본어설이 맞다고 가정되었을때 마한인들이 뜬금없이 대량으로 고구려 태조대왕기에 군대로 동원된것 부터, 야요이 문화의 형성이나, 일본 기기신화가 설명됨 - dc App
@부산의아이 그럼 뭐 임나일본부가 실재했다는거임?
@로붕이2(122.43)
https://m.dcinside.com/board/kpd/238639
이
글이나 읽고와라
나는 애당초 동아시아 거의 전체 봐가면서 하는소리임 - dc App
@로붕이2(122.43) 임나일본부가 실재했다는 것과 반도일본어가 성립한다는 다른 문제다 - dc App
@로붕이2(122.43) 임나일본부는 당시 4~5세기경 지질연구를 통해, 재난이 있었을거고, 일부 일본인들이 가야로 역류했고 이를 내가 이야기한 요서경락 서부여가설에 빗대서 막말로 그냥 여기 야마또인 갔노? 관직자도 있노? 그럼 우리땅 지랄 한걸 이를 후대 윤색 및 각색 했을 것으로 보임 - dc App
@로붕이2(122.43)
https://m.dcinside.com/board/kpd/238657
이글도
읽고와라 - dc App
@부산의아이 반도일본어의 요지는 한반도 남부- 일본 전파인데, 언어학적으로 한반도 남부보다 류큐가 더 오래되었음이 확인된 상황에서 반도의 일본어 사용은 열도에서 왜계가 진출했다는건데?
@로붕이2(122.43) 반도일본어설이 맞다고 쳤을때 한국의 고대사가 존나 풀리는 영역이 한두군데가 아님 - dc App
@로붕이2(122.43) 언어학의 언짜도 모르노 고어성은 보존 양상 문제. 원향은 비교언어학·고고학·인구 이동·지명층을 같이 봐야 하는 문제. 반도일본어설은 한반도 남부 기층언어와 열도 야요이계의 접속성을 설명하는 가설이지 류큐->한반도->일본이 아니라고 - dc App
@로붕이2(122.43) 류큐어 문헌자로는 17세기가 전부인데 뭔 씨바 1세기 자료라도 내놓은것처럼 이야기하노 - dc App
@부산의아이 아무도 호응안해주면 좀 알아채라;; 요서경략설도 내가 채팅쳐준거다 ;; 혼자좀 연구하지 말고 주변에 학자들에게 징문좀 해라;; 너혼자 이게 맞음 정확하다 자기가 새역사를 바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이런 생각좀 하지말고 뭐랬더라 초월주의였나? 공산주의도 유령이다! 이러다가 쫓겨날뻔한 놈이 생각을 바꿔먹은게 아니라 그냥 똑같은 방법으로 딴 곳을 파해친거고;
@로붕이2(122.43) 글케따지면 육진방언, 제주어, 경상도방언이 고어형태를 더 온전히 반영중인데, 여기서 시작했노? - dc App
@로붕이2(122.43) 남한테는 단정하지 말라면서, 본인은 마한 주류 고조선계설을 단정하고 있고 기층과 원류, 자료 중심과 발생 원류, 인구 다수와 정통축을 계속 혼동하고 있는데 이건 다원론이 아니라 삼한정통론을 지키기 위한 끼워맞추기아님? - dc App
@로붕이2(122.43) 아무튼 동북공정 지지자 ㅅㄱ - dc App
@로붕이2(122.43)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를 한국사의 원류/정통축에서 분리한다. 그것을 요동사·동북지역사·만주사 같은 별도 지역사로 중립화한다. 한국사는 신라 이후 한반도 남부 농경민사로 축소한다. 이 논리가 동북공정임 - dc App
@로붕이2(122.43) 옛날에 『일본은 삼한과 같은 종족이다.』라고 적힌 책이 전해져 왔는데, 간무 덴노 시대 때 불에 태워져 소실되었다고 한다.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겠냐 - dc App
@부산의아이 설명력은 신화도 가지고 있는게 설명력이고 님은 자의적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면 직관만 사용해서 글을싸고 빈부분 지적당하면 발화하는 버릇이 있음. 통찰력은 있는거같은데 근거를 갖춰서 이야기하면 훨씬 더 발전할거같음. 이러면 또 한낱 디씨 똥글에 그정도 노력을 투하하긴 싫다며 쿨찐짓할텐데 그럼 제발 갤에서 꺼져주시길바람
무슨말을 하는건지 모르겠음
"장수왕이, 왜 5세기 초에, 한예를 동등하게 대우하라 했냐, 5세기에는 이미 고대한국어로 통합이 다됐단 정황증거임" 아무리 전쟁이 잦은 좁은 땅이어도 정말 그랬으면 종이쪼가리하나 없는게 말이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동북공정 사보타주임?
동감함.
https://n9k.run/e7HVx
고려가 장수왕 때 나온 거라고? 몰랐네. 근데 다물은 뭐길래 얘기하는거야? 뭐 의미가 있는 건가.
고구려가 고조선 영역 먹고 한 말이 다물임 2년)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임금을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多勿)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ㅇㅇ - dc App
아무튼 고려 진짜 찐근본 국호임 - dc App
고구려는 본인들을 북부여 후손인가로 칭하고 백제는 아예 나중에 남부여로 이름 바꿨잖어 그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는 그 이후의 일이니. 부여가 고대사회에서 내에서는 근본이긴한데
단순하지가 않다 - dc App
조선과 부여 둘 다 합체시킨 집단은 고구려고 여기다 장수왕 발언까지 더하면 조선부여삼한을 처음으로 통합쐐기를 박은 장수왕 고려임 - dc App
그저, 고구려는 그 계보나 역사가 부여에 의존적일 뿐, 조선, 삼한을 통합안한건 아님 - dc App
솔직히 부여와 고구려, 백제가 병행한 역사 기간 중에, 원교근공이라는 실용적 관점도 있지만 고구려는 백제랑 부여 둘 다 줘팰대상으로 생각한게 다른 문제임 - dc App
심지어, 고구려는 '기자신'을 모시는 등 조선계승도 보였던 지라 부여하고는 좀 이질적임 - dc App
음… 한 이란 국호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그 모든것들이 한(韩)으로 귀결됨. 애초에 한이라는 세력은 본래 남부토착집단이 아니라(이쪽은 진국) 예맥 중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집단(특히 고조선 유민) 일컬어 부른 존재들이고 고려 백제 신라 가야 모두 그 속 백성들을 한인이라고 표현함. 신라의 초기를 어케보건 삼국통일을 한 국가는 신라고
그리고 사실 한이 곧 고려임. 한(韩)이라는 한자가 고대발음으로 gar(가ㄹ)로 발음되는데 우리말 고을의 원형이라고 불림. 그리고 고려,가야(가라) 모두 이 단어를 원형으로 표현히고 있을 가능성이 높음. 일본어로도 ‘가라’라고 표현하기도하고, 고대 중국과 마한의 전투인 기리영전투도 기리는 gar영은 군 관할지대라는 뜻이라 곧 gar지역사령부 전투로 번역됨
모두가 자기 국호를 한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gar임을 인지하고 있었음. 더 정확힌 어느나라에 살던 자신들을 고을(gar)에 산다고 말함. 마치 아메리카 북부에 여러부족이 자기가 사는 땅을 canata(마을)이라고 불러 그곳을 캐나다라고 부르게 된듯.
고대국가 그 누구도 정식국호로 쓰지않았지만, 모두가 자신을 한(고을=사람사는 땅)에 살고있다라는 점에서 그 모든 세력을 포괄하는 한 혹은 대한이 가장 역사통합적 관점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함
@로붕이2(122.43) 이건 또 이거대로 설득되네
@로붕이2(122.43) 삼조선론의 연장인거 같은데고조선 유민들이 그토록 유입이 되고 세웠다면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음왜 신라와 백제가 세워진 뒤 2~300년이 걸려서야 고대국가 체급이 되었는지임백제는 부여계, 신라의 사로는 고조선계로 확실한 기틀로 잡히는 것도백제는 기록과 유물 모두, 신라는 초창기 사로국 시절 유물로 입증이 됨근데, 여전히 마한 남부 등지엔 마한 문화가 6세기까지도 남아있는 등설명이 안됨삼한을 한국사로 넣고 싶은건 알겠는데고구려가 이미 유리왕때도 선비족을 일부 복속시키고, 모본왕은 그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베이징 습격사건 일으키고, 1세기부터 날뛰고반발이 없던건 아니겠으나, 조선계들을 고구려가 빨리빨리 흡수하고 국가기틀을 갖췄다는건 - dc App
@콤뮤 부여와 조선이 말이 통했다는 강력한 정황중의 하나임그런데, 삼한을 고조선 유이민들이 세웠다라면신라와 백제가 2~300년씩 걸려가며 고대국가체급으로 성장하는게 더 빨랐거나 했어야 하는 현실임백제가 아무래도 십제시절부터 대규모 사민을 때려댄으로 추정되는게 일본신화인데, 이 정황적 증거는 고구러 태조대왕이 동원한 마한인들임 마한인들을 온 사방팔방으로 흩뿌려댄거임말이 안되지 않음?? 삼한이 조선 유이민이 세운 집단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음즉, 그 gVrV로 재구되는 단어가, 고을이 아닐 수도 있음성읍은 고을, 콜, 홀로 재구되는건 사실이지만, 다른 이야기로는 잣, 자시 등으로 tsVsV로 재구되는 정황도 있음 - dc App
@로붕이2(122.43) gVrV 재구는 가능하고 의미장 겹침도 검토 가능하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로 동일어·동일정체성·동일계보를 만들 수는 없는게 횬실임 악센트나 방언 인식 차이만으로도 당대에는 전혀 다른 말이었을 수 있음 - dc App
굳이 기존 역사관에 껴맞춘다면 삼조선보단 마한정통설이겠지만… 넘어가고 질문인 고조선이후 신라, 백제에 고대국가체계의 간격이 길다라는 질문에 답하면, 그 고조선도 소위 고대국가로서의 체급일 가능성이 적음. 우리가 역사서술로서 고조선을 보기에 무슨 단일한 정부 혹은 중앙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하가점상층 문화를 공유하는
여러 집단의 연맹체일 가능성이 높음. 다만 연나라라는 중원세력의 일파이자 강성세력 취급받던 외부와 늘 접해있다보니 교류가 많고 당대 기록이 비교적 많이 보일뿐일수 있음. 반면 삼한일파는 중원계와의 교류가 중국의 변방 중에서도 변방인 낙랑군에 의해 간접교류로서만 발견되는만큼 뭔가 고조선보다 부족해보일 수 있음. 한국고대사는 중국기록에 의존하는걸 염두해야함
또 낙랑군이 삼한과 원삼국 내부의 국가적 결집을 계속 방해하기도 했고. (상술한 기리영전투도 그렇고 낙랑군이 한반도 남부에서 강성한 세력이 나올때마다 늘 겐세이를 걸쳤었음) 금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여진족이 국가세력을 못만들었다고 둘의 계보를 의심하진 않잖아. 그사이에서 명나라와 조선이 이이제이를 시도했었다라는
외부적 요인을 봐야하는것 처럼. 조선멸망과 삼국형성간 그러한 외부적요인으론 무엇있었는지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중국뿐만아니라 해양무역으로 일본 큐슈 세력, 함경도의 말갈세력도 끊임없이 충돌했었으니깐
별개로 사실 맞아죽을수도 있는 동북공정스런 생각이지만, 우리민족 최초로 국가스런 집단은 낙랑일수도… 낙랑군이 전에는 중국인이 통치하는 식민지였다고 보았는데, 실재로파보면 거리상의 문제와 당대 중원입장에서 그렇게 중요한 지역은 아니었던지라 넘어간 일부 중원세력과 평양의 토착세력(본인이 왕검성이 압록강 인근이라 생각하는 편이라 고조선의 핵심세력일거라 보진않음)
@로붕이2(122.43) 니 말을 적용한다하더라도 문제가 생김 한무제가 그러면 각잡고 고조선 죽인 이유가 설명이 안됨 생각외로 연맹체적 성격은 강하다 하더라도, 한무제가 전략적으로 고조선을 팼다는거는, 연맹국가더라도 가야+@ 수준의 체급이 좀 됐다는거임 안그러면 한무제가 고조선 멸망시키고 드디어 흉노의 왼팔을 끊었다 류의 발언이 있을 이유가 없음 중국사서 위주의 연구에 대한 문제제기적 의견은 될 수 있어도 그게 증명은 안됨 가야연맹체보다 수준높고 신라백제보다 낮았다는건, 사실상 봉건제형태로 굴러갔겠지 신라백제고구려처럼 촘촘하지는 못하지만 연맹체보다는 촘촘한, 봉건제 자, 그리고 고조선이 고대국가로서의 체급일 가능성이 적었다는 반박은 고구려 초기의 활동성이 보여주고 있음 - dc App
의 공동정권으로서 중원에게 무해한 형태로서 자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음. 그리하여 중원식 고대국가의 행정체계가 한반도에 이식되며 국가조직이 형성된게 훗날 낙랑에게 직간접적 영향을받은 삼국의 기반이 되지않았을까… 또 그러한 부분을 북한이 파고들어서 고조선을 이는 낙랑국이라는 개념으로 낙랑문화를 연구하고 낙랑박물관을 개관한게 아닐지… 라는 아찔한 발상을ㅎㅎ
@로붕이2(122.43) 한사군류의 정치체제를 흡수했어도 고구려는 굉장히 1세기부터 날고기었음 한군현축출을 해가며, 고대국가로서의 힘을 보이고 있었음 고구려의 5부체제는 연맹체성격이 아니라 봉건제 성격에 가까웠을 것 왜 고구려만 날뛸 수 있었냐를 설명 할 수 없다는건 어떻게 설명?? - dc App
@로붕이2(122.43) 고대국가가 군현을 설치해야만 성립한다면, 군현 없이 속주, 봉건으로 국가시스템이 돌아가기도 했고 국가간 전쟁도 수행했던 유럽사례는 어떻게 설명?? - dc App
@로붕이2(122.43) 흉노, 돌궐 등의 유목제국은, 고대국가 아님?? - dc App
@로붕이2(122.43) 중국기록에 의존하고 있는걸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 중국적 사고에 빠져있으면 뭐 어쩌자는거노 - dc App
@부산의아이 상술했듯 고조선과 원삼국 내 세력을 볼 때 고조선이 더 높아보이는 이유중 하나는 중원세력과의 직접적으로 맞닿아있어서 라는 가능성이 높음. 초기 고구려도 그렇고. (애초에 고구려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현도군의 관할지인 서개마현, 상은태현, 고구려현임). 중원과 바다넘어에서, 낙랑군이라는 변방 속하는 연립토착정권으로부터 간접교류한 삼한과 발전속도가 있기도할거임
@부산의아이 너가말한대로 흉노나 돌궐는 말한대로 유목제국이잖니… 게다가 이쪽도 (특히 흉노는) 끊임없이 중국과 교류하고 충돌한 대표적인 존재임. 그리고 얘네를 국가로 인식한건 근대서부터고.다른건 몰라도 동아시아에서 국가조직의 형성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중원의 영향이 불가피함. 중원에서 만들어진 행정조직이 이식되건 모방되건 영향받건 그러한 조직만을 국가조직이라고 했으니깐.
@로붕이2(122.43) 그렇다고 군현제를 고구려가 초기부터 했다는 사료증거도 없음 고구려가 어떻게 빨리 흡수 할 수 있었냐는 전혀 다른문제임 애당초 군현을 봉건제적 작위식으로 수여하는 사료증거가 더 많음 송양에게 다물군이라고 하사하는 거 보면 모르겠음?? 중국식 정치접촉으로 빠르게 흡수했다는 보조적인 이유고 진짜는 조선이랑 부여계 언어가 방언연속체급으로 강했다는거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와 신라가 늦은 이유 예맥과 삼한이 언어나 정치적으로 이질적이었다를 보충한다고 - dc App
@로붕이2(122.43) 중원식 행정이 국가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이 됨 중원식 행정이 없으면 국가는 아니다는 말이 안됨 중국중심시각을 염두하자면서 왜 자꾸 중국중심으로 보는거임??? 국가가 가져야 할 조건은 군현제가 아니라 상위 권력 군사동원, 조세 공납 교역통제, 대외교섭, 내부 위계, 복속 동맹질서 관리에 그 조건이 있음 - dc App
@부산의아이 고대 유럽사회와 고대 동아시아를 동치해서 보는건 많이 어려운 질문인데… 쉽게말하면 중원은 유럽에서 속주, 봉건으로 행한곳도 군현에 포괄했음. 상술했듯 낙랑군은 소수의 중원계와 다수의 평양토착계의 자치정권(현대로치면 미국-한국보다도 자주적) 일 가능성이 높고, 당나라는 자기네들이 일본큐슈에 축자도호부를 세웠다고도 말함(허구 혹은 높은 확률로 연락기구로 추정함
@로붕이2(122.43) 인류학, 정치인류학은 어디갔노... 왜 자꾸 중국중심으로 흘러가노... 군현제, 중앙관료제가 아니더라도 국가는 성립하는데다 사실 한나라의 군현제는 굳이 따지면 그냥 럭키봉건제 수준이었고 우리가 좀 더 생각하는 중앙집권형 군현제는 당나라에서나 성립하는 개념임... - dc App
@로붕이2(122.43) 진짜 중앙집권형 군현제는 송나라가 확실하다고 그냥 한나라 시절 군현제는 봉건제 개선판에 불과하다고 - dc App
@부산의아이 니말대로 송양에게 다물군이라고 하사하는 맥락자체가 중원이 변방에서 행했던 아주 고전적인 방법이었음. 고구려의 초기시절과 근원은 반농반목적이었음은 틀림없으나, 발전에 있어선 중원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받았음을 부정 할 수 없음. 또 그렇다고 고구려의 자주성이 없어지는것도 아님.
@로붕이2(122.43) 고구려가 날고기었던 이유로는 지리가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함. 고구려의 초기 활동무대가 중원, 유목, 퉁구스세력 모두의 변방이면서도 장백산맥과 요하평야를 빠르게 장악할수있는 좋은 위치였음. 당장에 변방에서 해집다가 관구검과 각잡고 싸우자 지고나서 함경도 옥저까지 후퇴한 전적도 있었음. 마지막에 임기응변으로 이기긴했지만.
@로붕이2(122.43) 하아... 그거랑, 니가하는 말이랑 다른건 알고는 있음?? 논점흐리기 하고 있는데 그걸 고구려가썻느냐 안썼느냐가 문제가 아니지 않음?? 언어나 기층문화 문제로 고구려가 빨랐다가 주요 논점인데 정작 씨발 글케 따지면 부여는 어캐 설명할거노? 그리고 군현질서가 없어도 국가형성할 수 있는 기틀은 고구려와 백제 둘다 먹고 있었을거임 근데 고구려는 빠르고 백제는 느렸다 단순한 정치접촉문제가 아니라는거임 - dc App
@로붕이2(122.43) 설마 너 지금 중국사서 기록 믿는건 아니지??? 왜 씨발 관구검한테 시종일관 털렸으면 동천왕이 왜 결전준비한 정황이 안나오지 않아?? 참고로 한국측 기록에선 처음엔 관구검을 몰아세운건 동천왕쪽임 동천왕이 초장부터 털렸으면 결전준비안함 중국 중심을 염두하라면서 왜 자꾸 중국중심으로 보느냐는 왜 설명 안하는데?? - dc App
@부산의아이 그리고 방언연속체를 이용해서 강대함을 말하는데 삼한보다 고구려가 내부적인 언어통일은 더 낮을가능성이 더 큼. 고구려실록에서 고구려가 만들어지고 첫번째 활동이 말갈일파 점령임. 너가 말한대로 고구려가 1세기에 강했던 이유는 국가조직에 형성을 통한 결속성보다는 유목세력의 동원이 더 강했을것임. 유목세력이 순간적으로 강하더라도 그게 국가로서 강하다는건 아니듯
@부산의아이 내가 동천왕이 언제 시종일관 털렸다고 말함? 관구검과의 전투에서 중원,농경세력인 관구검과 달리 한 번 크게 질때 함경도까지 후퇴하는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특징)이 중요한거임. 고구려가 제대로된 농경국가로서 존속된다면 함경도까지 가지않았을거고 또 못갔을거임.
@로붕이2(122.43) 내부적인 언어통일이 낮았다는 사료나 소거법 등을 통한 정황증거부터 내어놓으시오 유리왕때부터 선비복속이 일어났다고 선비족 후예, 거란, 실위 등을 다먹은건 광개토-장수왕기에서나 일어난거임 처음부터 선비세력을 다 들고 있었다고 보는건 아니지?? - dc App
@로붕이2(122.43) 말갈이전의 읍루에 대한 복속은 초창기 종주는 부여였는데 이미 그런 세력을 끼고 있던 부여가 고구려한테 밀리고 있었음 ㅅㄱ - dc App
@부산의아이 너랑 내가 다른 포인트를 알 수 있겠다. 나는 적어도 한국 역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곳은 고고학적으론 십이대영자 문화의 후계이자 고대 한국어의 사용반경 지역중에서 농경이 이뤄지고 또 그것을 주축으로한 사회가 형성되고나서야. 그전에도 물론 그들의 근원(너가 말하는 반농반목)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이 우리와 연관성이 깊다고 생각하지않아(
@로붕이2(122.43) 그냥 동북공정 지지자노 - dc App
@로붕이2(122.43) 그쪽 사회는 부여-고구려에 있다가 발해로 그리고 발해에서 요/금의 농경민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함. 내게 있어서 한국사란 삼국통일한 신라와 합병된 고구려의 농경민(주로 한반도 북부이자 고려의 직계)와 백제의 한반도 잔류민이야. 댓글의 핵심인 국호에서 한 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로붕이2(122.43) 그렇다고 그게 중국사가 되냐는 다른 문제지;; 사람을 갑자기 동북공정을 한다고 해버리면 우짜노;; 여튼 너가 말하고있는 한국사 근원 세력은 적어도 나에게있어선 발해까지 존속하다가 요/금의 일원이 되었다가 소멸된 조직이야. 한국사보단 요동사에 가까운 존재지.
@로붕이2(122.43) 문화, 계승, 언어 연속성은 전혀 생각안하노 기기신화를 재해석 하니 일본은 마한계가 냈는데 글케따지면 괵튀르크가 서진해서 문화, 언어, 역사승계로 터키 만들어진건 어캐 설명하노? - dc App
@로붕이2(122.43) 심지어 그쪽은 스펙트럼도 넓어서, 몽골고원에서 스타트 찍었는데 그러면 동돌궐은 터키사가 아니라 몽골사노?? - dc App
@로붕이2(122.43) 요동사고 나발이고, 그게 동북공정임 - dc App
@로붕이2(122.43) 소멸이다 중국에 흡수된게 아니다. 민족이나 세력이란건 늘 합쳐지고 나뉘어지고 생겨나고 사라지는 정치적 결사체니깐. 너가 말한 인류학에서 말해주듯. 난 말갈, 여진 그리고 그로부터 난 국가는 중국사가 아니라고 생각함 만주족도 후금까지는 중국사가 아님)
@로붕이2(122.43) 아니긴 뭐가 아냐, 요동사로 본다, 요동은 현 중국의 지방이다로 이어지는 존나 심각할정도로 위험한 사상인건 알제?? 언어문화역사적 연속성은 전혀 생각 안하제?? 발해가 발해멸망 후에 대량으로 피난한 곳이 어디냐? - dc App
@부산의아이 너말대로 소위 요동지역에서 반농반목하며 베이징 뚜드리던 고구려는 현재 우리와 문화도 세계관에 대한 계승도 언어도 연속성이 없잖아;; 너야말로 초기 신라는 한국사가 아니라는데, 신라중심의 무속 불교문화 동아시아 동쪽 끝에서 산다는 세계관과 통일신라의 언어 모두 너가말하고있는 고구려보다 우리와 더 가깝고 연속성있음
@부산의아이 아니 ㅅㅂ 요동사가 왜 중국사야;; 중국관점에서 바라봤으면 중국동북변방사라고 하겠지;; 요동사의 시발점은 근대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요동은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만들어낸건데 ㅅㅂ
@로붕이2(122.43) 니가 하는 말은 결국 튀르크인들은 그냥 동로마인이노? - dc App
@로붕이2(122.43) 동돌궐은 몽골사노? - dc App
@로붕이2(122.43) 와 갖다붙이는것도 잘한다, 결국에 한복의 바지복식, 땋은머리가 동시에 관찰되는건 북방계 문화 원류흔적인데 그건 전혀 생각도 안하노? 고구려처럼 날뛰어야 고구려 계승임? - dc App
@부산의아이 터키인의 유전자는 토착 아나톨리아인이 맞음. 그러나 너가 말한대로 현대 터키인은 튀르크족이 넘어오면서 받아온 이슬람과 튀르크어를 바탕으로 하니깐 튀르크사라고 할 수 있지. 실제로 터키는 이런 특징때문에 터키사를 배우는게 아니라 사람(튀르크)의 역사, 땅(아나톨리아)의 역사를 별도로 배움. 추가적으로 종교(이슬람)의 역사를 배우며 무슬림의 적통이라고도생각하고
@부산의아이 그 북방계 문화 원류흔적이 고구려뿐만 아니라 삼한에서도 나타나는데? 왜 삼한은 한국사가 아님?
@로붕이2(122.43) 유전? 유전자??? 하따마 니 말 잘했다 그러면, 한국인의 유전자는 만주족과 야마토의 사이이다 이건 뭐고? 만주족이랑 야마토가 혼혈해서 낳음? 아니지 않냐?? 언어, 정체성, 기층문화(복식이 이곳에 들어감)는 뭐고?? - dc App
@로붕이2(122.43) 북방계흔적이 있었다와 원류다 라고이야기 하는건 소급적용일 뿐임 - dc App
@부산의아이 말했잖니.. 터키는 너가 말한 언어, 정체성, 기층문화에서 튀르크족의 계보를 이음. 그래서 사람(튀르크)의 역사를 배움. 그러나 아나톨리아로의 이주와 결합과정에서 아나톨리아 선주민(그리스 아르메니아 등등)하고의 연계성을 부정 할 수 없음. 그래서 땅(아나톨리아)의 역사를 따로 배움. 하나의 터키사가 아니라, 다양한 맥락의 총체로서 터키의 역사를 배운다고
@로붕이2(122.43) 역사를 단일한 계보로 읽는게 아니라 여러 맥락의 총체를 읽는것 너가 등들 볶던 인류학의 기초 가르침이잖니…
@로붕이2(122.43) 신라 사로국이 왜 고조선 유이민세력이나, 북방 스키토 문화가 강하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왜모름?? 삼한문화랑 북방문화는 구분이 됐음 - dc App
@로붕이2(122.43) 아니 왜 국호가 한 이 좋은것 같다는 얘기를 하다가 왜 내가 동북공정을 하지않는지를 설명해야하는거야;;
@로붕이2(122.43) 니가 북방설을 부정하니까 내가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서 반박하는걸 이제와서 인루학적가르침으로 들들볶아대왔으면서 왜 무시하냐 무시한 적 없음, 어떠한 역사를 계속 니가 요동사로 소급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니까, 우리게 아니다라고만 생각하니까 그러는거지 원류가 십이대영자문화에서 이어지는 북방이 우리역사다 삼한은 3~4세기 경에 확실히 통합된 선행기층이다는 다른 문제 아니노? 본문 다까먹었노?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