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빨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칸
원래는 레이 황의 '장제스 읽기를 읽다'를 발췌할려고 했으나 책을 못 찾아서 본인 뇌피셜 올림.
1. 신해혁명때문에 중국의 전통적인 시스템은 완전히 파괴되었음.
2. 국민당은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지만 이는 불가능했음. 중앙정부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계속해서 일어난데다가 외부적인 요인 (대공황, 중원대전, 만주사변, 황하 대홍수, 미국의 금본위제 폐지 등등등)도 겹쳤기 때문임.
3. 그 와중에서도 난징 국민정부는 가까스로 근대 국가의 틀을 만들어내는데 어느정도 성공했으나(난징십년) 중일전쟁으로 이는 완전히 파괴되어버렸음.
4. 따라서 각 세력, 그러니까 향촌 사회든 부대장이든 비정상적인 방법, 오늘날 우리가 '부패'라고 부르는 방법으로만 시스템을 동원할 수 있었음. 예를 들어서 장교는 존재하지 않는 사병의 월급을 작성하고 그 돈을 챙겼지만 그 돈은 사적으로 사용한게 아니라 부대를 운용하는 비용으로 사용한 것이었음. 이런 편법이 아니면 부대를 움직이는건 도저히 불가능했음. 레이 황이 이때 제시한 유명한 통계가 '중국군이 400만명인데 한해 생산한 총탄이 (기관총용 포함) 1600만발'.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부대는 전선을 확보해야했고 후일 서방 관찰자들이 무능하고 달아나기에 바쁜 국민당이 살아남을 수 있던게 바로 그런 소극적 태도 때문이었음.
이게 문제임.
본문과 무관하게 어차구니 없는 사실. 1993년 외환보유고 1위가 중화인민공화국인데 1992년 외환보유고 1위는 중화민국임. 1980년대 초중반인가 그때 전세계 외환의 10%가 타이완 섬에 몰려있었다고 하는데 클라스 차이가 오죽 심각하면 씨-발. 내가 이래서 중공을 지금까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증오하고 있는거.
근데 이러고도 공산당이 어쨋든 경제발전은 하지 않았냐고 묻는데 프랑코도 스페인 내전으로 말아먹은 경제 1950년대부터는 내전 이전을 회복했으니까 발전시킨거 아닌가요? 하고 똑같은 드립 아니냐고 되묻고싶다.
마지막으로 국민당 어쨋든 독재 아니었냐 하는데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싶어도 기본 시스템이 장착되어야한다니까? 토지개혁도 아니고 토지현황 조사하러 보낸 관리(심지어 멀리도 아니고 난징이 위치한 장쑤성)가 지주들에게 총탄맞는게 당대 중국인데 뭔수로 일당독재를 폐지하라는거. 그냥 난징정부 해체하면 아나키 상태 도래하고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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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항일투쟁은 모두 마오주석님의 영도 덕분이라고요! 빼애애애액!
내가 중국 공산당 얘기하는 거는 소련 붕괴시점부터 시작해서 '공산당 붕괴하면 옐친 꼴 나왔을 거다'얘기하는 거였는데 아무튼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음
1980년대 말 중공은 "그래도 마오 씹새때보다는 낫다" 마인드가 있어가지고 내부 불만이 그정도는 아니었음. 근데 문제는 지도부도 대가리를 마오 시절의 공포(홍위병이야 홍위병)에 사로잡혀서 제겁에 탱크부대 부른거지.
무엇보다 텐안먼 시위대가 요구한건 호요방에 대한 재평가 정도였지 다당제 및 민주화 수준이 아니었음. 우리들이 기억을 멋대로 왜곡해서 상상하고 있는거.
근데 시위 목적은 중요한 게 아닌게 당장 엘랑 혁명은 입헌군주정이 목표이고 케렌스키 혁명은 여성의 날 때 시작한 거고 아랍의 봄은 민주주의가 스타트였지만 결과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흥이잖아 시위의 목적이 a라고 해서 b로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음?
사족일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하기론 내전때 국민당 군이 미국 지원금의 반을 삥땅친걸로 알고 있는데
ㅇ 이미 6월 접어들면서 시위대는 제풀에 지쳐서 흩어지고 있었음 그래서 수뇌부가 기습학살을 한건고
나무위키에 그 내용 쓴게 나 아니면 내가 아는 사람임
꼬우면 이기시든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으로 볼셰비키들이나 할법한 발상이로군
타이완(계엄령과 고문 500배)
크아아아악
??? : 호오 버티는가? 레닌식 일당제 벤치마킹(이당치국) 1000배
삼서론은 일종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야!
국민당은 대륙에서보다 섬에서 더추하긴했는데, 걔내가 안정화이후에 보인 행보를볼때 대륙에 있는다고 민주화가 쉽게됬을거같진 않지. 머만이야 외성인 본성인 대립이라는 바탕아래 민진당이 정착했지만, 대륙에서 그게됬을까
볼셰비키가 내전 기간동안 적색테러한거하고 같음. 그런데 이외로 간과하는데 결국 타이완의 민주화 이행도 국민당이지 민진당이 한건 아님.
타이완 사람들이 저항하지 않았다면 그 길고 긴 계엄령을 철폐하긴 했을까?
대댓글이 말잘해줬고, 애초에 장징궈의 결단이랑 말년의 여러요소가 겹친거라 국민당자체는 되게 야당에 탄압적이었는데. 그리고 적색테러급 정치폭력이 국부천대이후로 삼십년에 가까우면 문제아니냐 ㅋㅋ
국민당 관료들의 능력과 장제스의 초인적 인내심같은게 저평가될 요소는 절대아니고, 국민당 재평가도 뭐 십년도 전부터 충분히 진행된 요소라 되게 중요하지만, 그게 국민당이 민주주의와 친해질 요소는 아니지싶음. 장제스는 죽을때까지 훈정이어나간 사람인데 머륙이라고 딱히?
국민당 입장에서 국부천대는 내전의 종결이 아니라 내전의 연속이었음. 타이완은 1950~1960년대 내내 준전시상태였음. 따라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초법률적인 조치(이게 옳다는 말은 아님)를 취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고 이게 바로 우리가 아는 일당독재의 요인이었음. 전쟁 상태에서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건 당연하다고 본거. 그리고 국민당 내부에서도 유엔 추방을 기점으로 슬슬 내부에서도 암묵적으로 회의론이 나왔고 이런 문제점들이 있었기에 1980년대부터 제한이 느슨해졌고 최종적으로 1992년에 임시조관이 해제됨으로서 민주화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거임. 그리고 민주주의와 친해질 요소가 없으면 민권주의는 도데체 도꼬....?
당이념만 따지면 볼셰비키도 민주주의 삽건웅이지. 그거랑별개로 소련도 적백내전까지만 유지했던 준전시상황을 이십년넘게 유지한걸봐서 장제스 본인은 생전 훈정끝낼맘 없었던거같고. 글고 장경국이 국민당 중진들 설득해서 야당 합법화한걸로 아는데, 그걸봐선 국민당 자체가 민주화에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판단할 건덕지는 많자너
반란 진압을 해야 헌정이 복귀된다니까. 그리고 지금이야 중화민국=타이완이지만 당시 인구의 30%정도를 차지하는 외성인들 입장에서 타이완은 그냥 잠깐 머물다 갈(말 그대로의 의미) 장소지 정착할 장소가 아니었음. 그래서 당시 중화민국이 본토 수복을 포기하겠다는건 중화민국의 정체성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진배 없기때문에 장제스 생전에 그런 정책 변화는 불가능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