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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대학살은 무엇인가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국부로 불리던 수카르노가 실각하고, 수하르토 대통령의 32년간의 장기집권이 시작될 시점에 전국적으로 소위 '빨갱이 사냥'이 진행되었다. 학살의 각본은 군부에 의해 사전에 준비되었다. 자바와 아체, 그리고 인도네시아 공산당 본부가 있던 발리에서의 대대적인 학살로 50만 명에서 300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베드조 운퉁씨는 학교에 다니다가 자카르타에 있는 군 정보부에 잡혀가 재판 없이 9년을 강제노동을 하며 감금생활을 하고서야 풀려나게 되었다.

1965년 10월 1일, 정보사령부의 한 대령은 "자바에서의 학살은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저지른 짓이며 그들은 창고를 약탈하여 모든 무기를 준비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반란이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군부의 계획이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은 군부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각 도시의 특공대에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죽이라는 무선 전보가 내려졌다. 1965년 10월 첫째 주부터 인도네시아 공산당원에 대한 체포가 전국적 규모로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군사작전은 반공단체 및 군대 산하조직을 통해서도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공산당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동원되었다. 여기에서 제주의 4·3사건과 서북청년단이 연상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니리라.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소비에트연방의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당원은 300만 명이었으며 지지자는 거의 260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학살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1945년 헌법에 기반하여 사회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은 거대한 국가 인도네시아 건국을 이루며 수많은 집단의 통합을 강조하고 이를 '판차실라(Pancasila)'라는 인도네시아의 건국 5원칙에 담았다. 산스크리트어 단어인 판차실라는 '판차' (Panca, 다섯이라는 뜻)와 '실라' (Sila, 원칙 이라는 뜻)의 합성어로 ①다양한 신앙에 대한 존중, ②정의와 문화적인 인본주의, ③인도네시아의 단결, ④ 합의제와 대의제를 통한 민주주의의 지혜로운 길잡이, ⑤사회정의 구현을 이른다.
1945년 6월 1일에 열린 독립준비위원회에서 수카르노는 "판차실라의 탄생"이라는 주제의 연설로 인도네시아 건국 정신인 이 원칙들을 무슬림과 민족주의자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과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에도 담겼던 인도네시아 통일과 단결원칙은 20년이 지난 후 수하르토와 군부에 의해 찢겨져 나간 것이었다.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와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자신들이 무고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지역 당국에 협조했다. 그러나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구금되고 고문을 받았고, 납치되기도 했다. 군부의 묵인과 방조 아래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은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일은 1965년부터 1968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으니 전쟁도 아닌데 이 군사작전으로 최소 50만 명에서 300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수용소에서 강제노동과 납치, 고문이 이루어졌고 많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했다.


또 다른 광주
세월이 흘러 1965년의 비극에 대한 미국의 외교문서가 2017년 10월 공개되었다. 공개된 3만여 쪽에 달하는 19개 문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1965년 공산당원에 대한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카르타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은 살해당한 인도네시아 공산당 대표의 신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정부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인도네시아 군부가 인도네시아 내 진보적인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지원했음이 보고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문서에는 반공산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슬람 종교단체가 이 학살에 협력했음이 적시되어 있었다. 군부는 인도네시아 공산당과 그 산하조직을 박멸하는 작전을 수행했고 그 결과 50만 명의 공산당 지지자가 죽었으며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공개된 CIA의 문서를 참조할 때 미국의 개입은 분명한 사실이며, 영국과 호주 역시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여 수카르노의 제거를 지원했다는 것도 드러났다. 미국은 이렇게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배후에 있었다.


프레시안 펌(http://m.pressian.com/m/m_article/?no=242742#08gq)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이 얼마나 허황된 가치인가를 알려주는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