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들은 왜 신과 자본을 거부하는가? 그것은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문구와 아나키즘의 정신에서 비롯된다. 'No Gods, No Masters'. 신도, 주인도 없다. 이는 아나키즘을 관통하는 핵심 문구이자 아나키즘의 상징과도 같은 문구이다. 동시에 아나키즘의 정신인 '자유지상주의' 가 이를 뒷밭침한다. 그 무엇보다도 인간에게는 자유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의 경우에는 이해가 갈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서구 아나키즘의 경우 (애당초 사상적으로 사회에 나선 아나키즘 자체가 서구 발이긴 하다만), 기독교 사회였던 국가들에서 자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나키스트들의 눈에는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절대신' 은 마치 전제군주제의 황제와도 같은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동시에 종교인들과 종교계가 저지르는 부정, 부패, 사상탄압 등도 아나키스트들의 종교에 대한 분노를 부추겼다.
그러나 자본은 왜? 자본주의는 아나키즘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아나키즘의 뿌리인 자유주의를 뿌리박히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의 영향이 서구 사회의 전체적인 ’자유주의화‘ 를 불러오기 시작했고, 사회운동과 중산층의 대두를 불러왔다. 중산층들은 안정된 환경 내에서 대체적으로 자유주의적 태도를 외치며 선거권 확대와 같은 자유주의적 어젠다를 주장했고, 국가 경제의 핵심인 이들의 목소리를 국가는 무시할 수 없었다. 19세기는 그런 시기였다. 자유주의가 승리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학교에서 배우듯, 산업 자본주의와 자유방임시장에서 나타나는 폐단들은 큰 문제가 되었다. 아동노동, 노동력 착취, 과도한 저임금, 선거권 부재, 복지의 전무 등. 이러한 상황에서 대두된 것이 사회주의이다. 사회주의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개량 혹은 철폐, 그리고 개혁을 원했고 기성 자본가들과 정권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나키즘 그 자체는 그 이전에 이미 존재한 바 있으나 (소위 프루동주의로 대표되는 사상), 대대적인 노동자의 지지를 바탕으로 형성된 세력으로서의 아나키즘 진영은 산업자본주의가 국제적으로 확산된 19세기 중후반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배경 설명은 이쯤 해두고, 왜 아나키스트들이 자본주의를 거부하는지에 대해 서술하도록 하겠다. 아나키스트들이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이를 되레 혐오하는 스탠스를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주의 자체를 노예제와 같은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임금 노예제'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노동자가 특정 기업에 임금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노예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노동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임금이 없다면 노동자는 살아갈 수 없다. 아니, 애당초 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노동자가 될 수조차 없다. 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잉여취급을 받으며, 노력이 부족한 자 취급을 받으며, 저절로 사회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와 동시에 인간의 가치는 단순한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대체가능한 것이 되어버린다. 자본이 존재함으로 인해 인간이 노예상태에 여전히 묶여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예상태는 공복, 죽음, 수면, 갈증으로부터의 종속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공복을 해결해야 하며, 질병을 치료해야 하고, 적절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양의 수분을 섭취해 갈사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이는 인류라는 생명체로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학적 동물의 특성으로서 어쩔 수 없이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은? 자본은 인위의 산물이다. 자본이란 것은 원래 인간을 위해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본이란 것은 원래 인류사회에 최초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최초의 화폐는 본격적 농업사회와 문명이 시작되었던 청동기 시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화폐, 그 잉여자산, 그 물자를 바탕으로 인류사회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자본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자본은 인류에게 있어 생존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았지만,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존재가 된 유일무이한 존재이자 신과 같은 위치에 선 존재이다. 자본은 전쟁을 불러왔고 농민을 종속시켰으며, 평화를 불러왔고, 사회가 확장되며 형성된 '국가' 를 견인하는 힘이 되었다. 자본을 빼놓는다면 인류를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자본이 만들어 낸 시스템 아래에서 인간은 항상 자본의 굴레에 묶여 움직인다. 이는 인간을 자본으로 설명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인간을 자본 그 아래에 놓인 존재로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인류가 자본주의의 힘을 빌려 일궈낸 모든 성과들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부르주아들이 중심으로 일궈낸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우애' 도. 서프러제트들, 페미니스트들이 일궈낸 여성 권리의 신장도. 사회주의자들이 일궈낸 노동자와 국민의 복지 및 권리의 확장도. 자유주의자들이 일궈낸 '~의 자유' 와 같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들도. 이들 모두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의 힘을 통해 형성되었으나, 자본의 이름 아래에 찍어눌려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나키즘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으로서의 존재, 인간으로서의 자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서 자본주의를 타파하고자 주장한다. 자본 아래에 예속된 상태에서 외치는 개혁과 진보의 목소리들은 모두 숭고하고 아름다우나, 자본은 그들을 취사선택하여 여론을 잠재우고는 막강한 힘을 통해 무너뜨릴 수도 있다. 자본을 숭상하는 같은 인류를 통해 말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을 마치 신, 전제군주와 같은 지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자본을 신보다도, 전제군주보다도 더더욱 위험하고 끔찍한 대상으로 바라본다. 자본은 신의 이름을 통해 합리화 되며, 전제군주가 움직이는 동력이자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스스로를 인간 해방을 위하는 사람들이라 칭한다. 신적 존재인 자본, 모든 신들, 그리고 모든 전제군주와 폭압적 권력자들에게서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를 추구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사회를 개량하는 것과 사회의 개량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자본을 인류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앞으로도 주장해나갈 것이다. 이를 추구하는 사상적 무기이자 논리가 바로 인본주의. 그리고 자유지상주의, 아나키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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