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공안위원회의 집무실에 한 사내가 혼자 남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자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창문이라도 열린 것일까? 그러나 유리창은 굳게 닫혀 있었고, 어떤 잔상과도 같은 것이 그 위에서 일렁였다
밖에서, 아니면 안에서 비춰지는지 알 수 없는 그 희미한 형상이 속삭였다
살인자, 반역자!
위그 카페와 성 루이의 왕좌에서 그 자손을 끌어내리고도
너희가 안락히 살아, 평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줄로 아느냐?
비천하고 무도한 자들이 고귀한 이들을 짖밟고도
너희 역도들이 그 권세를 누릴 수 있을 줄로 아느냐?
말없이 창문에 비친 형상을 바라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프랑스인, 더이상 노예가 되지 않기로 맹세한 인민이
역도들과 외국인들의 선두에 서서
조국에 내전과 전쟁의 공포를 불러와
자신의 나라를 스스로 짓밟는 자를
'국왕', '최고 공직자'라 부르며 섬길 수 있을 줄로 믿는가?
봉기한 인민이 다시 머리를 조아릴 줄로 믿는가?
주권자 민중을 수세기동안 사슬로 묶어놓은
너희 전제 군주, 반란을 일으킨 천한 노예들, 왕좌에 앉은 찬탈자들에게?
그러므로 꺼져라, 루이 카페!
불타는 지옥, 자애로운 이가 그 피조물들을 위해 창조했을 성싶잖은 곳으로든,
아니면 단지 환상을 낳는 밤의 안개 속으로든 돌아가라!
텅 빈 집무실에 그 전과 같이 혼자 남은 사내가 독백했다
그러나 그 망령은 하나만은 참으로 맞는 말을 하였다
격동의 시대에 애국자는 결코 침대 위에서, 벽난로 옆에서 죽지 못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총탄일까, 아니면 단두대일까?
국민공회의 연단에서, 공안위원회의 재판석에서, 자코뱅의 회합에서
그가 불타는 심장으로 자유의 적들에 맞섰을 때
반역자들은 공포에 떨었고 인민은 그를 사랑했다
누구보다도 더 멀리 보았던 그는
누구보다도 더 멀리 가려 했고
그러자 파도가 그를 삼켰다
다시 파도가 밀려온다
무장하라, 파도를 타라!
역사의 해일이 솟아오른다
인류 해방의 그날 들어올릴 깃발을 장식할 이름들
스파르타쿠스, 자코뱅, 코뮌, 볼셰비키...
그리고 그 중에 새겨져 있으리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그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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