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의 프랑스 인민전선 비판 중)

그러나 여기서 보수적 관례주의자들은 마지막 논리를 동원한다:“무장이 빈약한 민병대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가? 현대적 기술(탱크! 비행기! 독가스!!)로 무장한 군대에 대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주장만큼 공허하고 진부한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 주장은 이론과 역사적 사실에 의해 골백번이나 격퇴당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현실적” 사고의 최후의 시도로 매번 제기되고 있다.

민병대가 내일 있을 권력 장악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잠시 인정한다 치자. 그러나 노동자 조직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필요하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노동총연맹 지도자들은 모든 형태의 권력투쟁을 거부한다. 그렇다고 파시스트들이 노동총연맹을 가만두지는 않는다. 제때에 방어 조치들을 취하지 않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치노선과는 별도로 노동조합에 대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평화주의자들의 가장 주요한 논리를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노동자 무장조직은 현대식 군대와 대결하면 무기력하다.” 이 “논리”는 근본적으로 접근하면 민병대 창설에 대한 반대 주장이 아니라 노동계급 혁명 자체에 대한 반대 주장이다. 철저히 무장한 군대가 어떤 경우에도 자본의 편이라고 잠시라도 인정한다면 노동자 민병대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 자체도 포기해야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노동계급 혁명은 도시와 농촌에서 계급투쟁이 극도로 격화된 상황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군대라고 예외일 수 없다. 군대의 핵심부를 획득하거나 최소한 중립화시키지 않고는 혁명은 승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승리는 즉흥적으로 마련되지 않는다. 철저히 준비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평화주의자들은 (말로는) 우리 주장에 동의하기 위해서 우리 말을 막을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물론 꾸준한 선전을 통해 군대를 우리 편으로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병영의 높은 사망률, 2년 의무 복무제, 전쟁 등에 반대하여 우리는 투쟁하고 있다. 이 투쟁이 성공하면 노동자들이 구태어 무장될 필요가 없다.”

이 말은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근본적으로 틀렸다. 군대를 평화적으로 정복하는 것은 평화적으로 의회의 다수당이 되는 것보다 더 가능성이 없다. 병영의 높은 사망률과 2년 의무 복무제에 대한 온건한 투쟁 그 자체는 이미 의심의 여지없이 파시스트 조직과 반동적 장교들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노골적 음모와 이들에 대한 금융자본의 지원금의 배가로 나아가고 있다. 노동자 무장을 반대하는 선동이 성공하면 할수록 파시스트들의 위협은 더욱더 급격하게 커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급투쟁의 허구적 논리가 아닌 실제 변증법이다. 선전과 혁명 준비의 과정 그 자체에서 우리는 무기를 손에 들고 우리 자신을 방어하고 더욱더 활발하게 방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