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은 국제여단과 거기에 참여한 세계적인 지식인,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주목받고 있는데, 멕시코도 빼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당시 멕시코는 멕시코 혁명에 참가했었던 라사로 카르데나스가 대통령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멕시코는 국가 차원에서 공화 정부를 적극 지원했음.
(멕시코 혁명 관련 당사자들 거의 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카르데나스는 결국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음.)
소련과 더불어 유이한 지원국이었지.

당시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인민전선이 집권 중이던 프랑스의 사회당 블룸 내각은 영국의 보수당 내각이 공화 정부를 지원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인민전선 연정의 일원이던 급진당이 공화 정부 지원에 강력히 반대하자 결국 이에 굴복해서 아무 지원도 못했고.
(공화 정부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노동당의 애틀리가 당시 집권하지 못했었던 것이 많이 아쉬운 부분)

소련이 지원의 대가로 공화 정부의 금을 받을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산법을 적용하고, 거기에 스페인 내정에 온갖 간섭을 하는 등, 공화 정부에 농간질과 패악질을 했던 것에 반해, 멕시코는 정말 순수하게 지원에만 열중했는데,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음.
미국의 보수 세력과 재계가 멕시코의 지원을 적극 방해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카르데나스 정부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지원을 멈추지 않았지.
(당시 미국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부인 엘러너는 공화 정부에 우호적이었으나 국내 사정으로 인해 루스벨트 행정부는 철저히 중립을 지킴. 반면 미국 보수 세력과 재계는 프랑코를 적극 지원했고.)

공화 정부가 패했을 때도 많은 공화파 인사들의 망명을 받아주는 등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멕시코는 스페인 내전 이후에도 프랑스처럼 공화파 망명 인사들의 활동이 활발한 곳이었음.

카르데나스 대통령은 제도혁명당 장기 집권 시대를 연 사람이었는데, 1940년 임기 종료 이후에도 쿠바 혁명과 베트남 전쟁 등 미국의 대외 개입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음.
그러나 당시 제도혁명당 정부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개막식 전날 시위 학생들에게 발포하는 잔혹한 일을 벌이는 등, 멕시코의 68운동은 결말이 너무나 비극적이었음.
당시 카르데나스는 급격히 우경화된 제도혁명당 정부를 보면서 제도혁명당의 장기 집권에 대해 문제를 느끼고 있었는데, 이때 이 학살 사건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함.
이 부분 볼 때 가슴이 찡해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