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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밝혔다시피 본인은 강원도의 모 자사고에 다니는데, 내가 듣는 역사학 수업이(역사학 전공임) 한 학기에 논문 하나씩 써야 해서. 작년 1학기때 쓴 논문 주제가 1921년 몽골 혁명이여서 담딘 수흐바타르와 허를러깅 처이발상, 그리고 잡증담바 호특트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음.


몽골에 대해서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몽골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가냐면 몽골제국->원->북원->청나라->복드칸국으로 넘어가는 형태고 몽골식 국호는 칭기스칸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몽골 제국(몽골 대칸국)이라는 국호를 유지했음. 그리고 청나라 황제는 몽골 대칸을 겸임하는 형식으로 몽골 대칸이 이어지고. 청나라 자체가 만주족과 몽골족의 연합국가라는 형식적인 측면도 있었음.


일단 1921년 몽골혁명의 주역들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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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딘 수흐바타르(Дамдины Сүхбаатар)

1893, 청나라 외몽골 체첸아이막 - 1923, 몽골제국 후레

현대몽골의 국부, 몽골의 독립영웅


1893년 당시 청나라 외몽골 체첸아이막에서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남. 몽골 자체가 다른 공산주의 국가와 다를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이 뭐였다면 유목민의 존재였음. 지금도 유목민이 몽골 인구의 1/3이나 차지하는데,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이 유목민이었다고 보면 됨. 러시아와 달리 공장은 커녕 가장 큰 도시였던 후레(현 울란바토르)도 러시아 촌구석 마을 정도 수준이었음.

유목민답게 국경을 넘어다니며 옮겨다녔고, 6살때 러시아제국-청나라 국경 부근에 터를 잡았고, 러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산업화가 되어있어서 16세때 러제와 청나라를 있는 마부로 일했다고 함. 그러면서 러시아어도 배웠고 실제로 상당히 유창한 노어 실력을 자랑했다고.

그러다 1911년, 18세때 몽골제국이 청나라로부터 독립하자 몽골군에 입대, 군인으로 일했고 1918년 왕립(칸립?) 불교인쇄소에 들어가 일했다고 전해지나 1919년 이웃한 러시아의 공산화 이후 공산주의로 전향했다고 전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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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를러깅 처이발상(Хорлоогийн Чойбалсан)

1895, 청나라 외몽골 - 1952, 소련 러시아SFSR 모스크바

몽골의 스탈린


1895년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가 13세때 출가하였음. 원래 이름은 처이발상이 아닌 두가르. 처이발상은 무려 불교식 법명임. 그러다 18세때 모종의 이유로 절에서 나와 막노동을 하며 살다가 우연히 만난 부랴트인의 도움으로 1914년부터 이르쿠츠크에서 러시아어 통역과정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공산주의에 경도되어 1919년 외몽골 출병때 귀국한 이후 독실한 불교도에서 공산주의자로 전향하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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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제52대 대칸 복드 칸

1869, 청나라 쓰촨성 리탕 - 1924, 몽골제국 후레

재위 1911-1924

몽골제국의 마지막 칸


몽골인이 아닌 티베트인으로, 본명은 악왕롭상초이지냠단잔왕축(Agvaanluvsanchoijinyamdanzanvanchüg). 청나라 쓰촨성에서 태어났으며 티베트 라싸에서 자랐고, 5살 때 몽골로 이주하였고 몽골의 불교 지도자인 젭춘담바 후툭투로 일했음. 그리고 1911년 신해혁명 직후 왕공들과 함께 몽골의 독립을 의결했으며 러시아 제국에 보호를 요청하는 대표단으로 파견되었음. 그 직후 몽골의 대칸으로 추대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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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920년에는 번갈아서 쉬수정과 '미친 남작'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가 침략했음. 수흐바타르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쉬수정의 외몽골 출병 직후임. 몽골 인민당은 원래 몽골제국군의 공산주의 성향 비밀결사 두개에서 시작되었고 그 비밀결사를 합쳤고, 이후 코민테른의 지시에 의해 바꾼 이름이 '인민당'임. 즉, 지금 몽골 인민당의 창당임.


물론 말이 공산주의 성향이지, 칭기스 칸의 망령과 티베트 불교적 사상이 지배하고 있던 몽골에서 감히 대칸을 무시한다? 인민들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지. 아니, 애초에 종교적 지도자이자 세속적 지도자를 겸하고 있었던 복드 칸은 이들이 공산주의 성향이지만 같은 민족주의자이자 독립주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독립운동 세력 중 가장 컸던 이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함.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20년의 일. 복드 칸은 솔린 단잔, 허를러깅 처이발상, 더그서민 버더, 담븐 차그다르자브를 소비에트 러시아에 '조공'과 함께 '사신'으로 보냈으며, 이후 담딘 수흐바타르와 다리자븐 러설이 소비에트 러시아에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하는 칸의 친서를 전달했음. 물론 외몽골 출병 직후엔 복드 칸이 실권을 잃은 상태였으므로 칸이 비밀결사를 활용한 것도 있음. 물론 이후 복드 칸이 운게른슈테른베르크에 협조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만행에 경악하며 손절쳤다고 함.


곧 사신단은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여 가폰이라는 이름의 러시아 관리를 만났으며, 가폰은 여기서 '우리 러시아는 너희 몽골을 도와줄 용의가 있지만, 그 전에 너희들이 어떻게 조직하고 어떻게 싸울 것이며 중국을 어떻게 내쫓을 것인지, 그리고 신몽골에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이지 설명을 해봐라'라고 언급. 수흐바타르가 이 모든 것을 설명하자 가폰은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를 외치며 수흐바타르와 처이발상은 군사교육과 러시아-몽골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이르쿠츠크에 머물게 하고, 버더와 더그섬은 귀국, 나머지는 모스크바로 보냈음. 1921년 수흐바타르와 처이발상의 지휘 아래 몽골인민유격대와 몽골 파르티잔, 그리고 소련 지원군이 몽골에 진주했으며 곧 미친 남작과 쉬수정은 GG치며 빤스런했고 치고받고 하다가 인민군은 몇달만에 몽골 전역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음. 당해 러시아-몽골의 국경도시 캬흐타에서 비밀결사가 아닌 정식 정당으로서 몽골 인민당 창당대회가 열렸으며 수흐바타르는 당 위원장에 선출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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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권을 담딘 수흐바타르 인민당위원장에게 이양하는 대칸 폐하)


몽골을 되찾은 인민당과 수흐바타르는 시대의 변화와 조공국인 소비에트 러시아의 의중을 들어 실권을 인민당과 정부에 이양할 것을 복드 칸에게 요청하였고, 복드 칸은 이를 받아들여 1921년 몽골제국은 사회주의 입헌군주제라는 형태로 예토전생함.


이것이 사회주의 몽골의 시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