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는 과학적 세계인식과 혁명적 실천이라는 위대한 성취를 이뤄냈지만, 어디까지나 계몽주의와 공리주의의 연장선이었다. 그래서 맑스주의자들 역시 ‘이익’, ‘욕망’을 중심으로 노동계급을 계몽했다. 물론 인간의 행동은 욕망을 추구하기 위함이라, 이런 계몽은 틀린게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욕망을 어느정도 달성했을때 나타난다. 아직 혁명이 완수되지 않았음에도, 현재의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쾌락에 만족하여 혁명을 소홀히하게 되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동일시한 사민주의와, 수정주의의 길을 간 50년대 이후 소련동구권 맑스주의자들이 그 전형이다. 우리는 혁명의 ‘결과’뿐 아니라 혁명 ‘과정’에서의 인민대중의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참여 자체를 중시해야한다.
[일반] 맑스주의는 욕망만을 중심으로 민중을 계몽해서 몰락했다
통일조국(121.129)
2020-02-13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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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는 단순히 물적 토대만을 뒤엎는 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의식 전체와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전복해야 하는 것. - dc App
말하는거와 의도 좋은데 의식까지 갈어엎어버리면 어떻게되는지 참 볼만하겠수
욕망은 성실하다. 선의, 겸손, 연대의 자물쇠로 잠군 마음의 문을 일년 365일, 쉬지 않고 수 천번, 수 만번 두드린다. 그게 10년, 20년, 30년이 된다. 단 한번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욕망이다. 사람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그 다음의 실천으로 나갈 수 없다.
욕망과 유물론적 세계관을 부정하자는 취지가 아님.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소리.
학문적 표현은 아니지만 결국 필요한 것은 욕망 그 이상의 무언가가 아니라 '고상한 욕망'이 아닐지..ㅎㅎ
고상한 욕망이란 결국 가면에 지나지 않나요?
어떤 가면이든 너무 오래 뒤집어쓰게 된다면 가면과 나를 분리할 수 없게 되니.. ('페르소나')
그럼 자비로운 가면을 쓰고있는 자본가 또한 진짜들인가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결국 상황에 따라 가면을 돌려쓰는 개인들의 관계같음. 사업 피칭이나 대중 강연, 언론 기고문 등에서는 자비로운 자본가의 가면을 쓴 사람이 그 가면을 벗지 않고서도 노동자들을 대할 수 있다면야 자비로운 자본가라고 볼 수 있을듯. 다만 모든 자본가가 자비로워질 수 있다고 보는건 망상에 가까운 것 같음.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가면을 쓰고 있는 현실에서 또다른 가면이 추가된다한들 달라지는것이 무엇이며 동시에 그가면 밑에 있는것을 고려해야하지 않나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써 나는 인간의 내면에 어떤 끔찍하거나 선한 것이 있는게 아니라 그저 황량한 공허만이 있다고 생각함. 가면 위에 가면을 덧씌우던 벗기던 그 본질은 영원히 미지의 영역이며, 다만 사람과 사람간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결과를 통해 장님 코끼리 만지듯 추측 할 뿐..
그런 의미가 아니라 가면을 통해 숨기려는 의도를 의미
'자비로운 가면을 쓴 자본가의 숨겨진 의도'를 말하는 거겠지? 내가 사용한 페르소나적 가면의 의미와 다소 다른 뜻으로 사용한 것 같은데,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의도 자체도 그 자본가가 둘러쓴 가면, 즉 세상에 내던져진 개인으로써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것임. 위쪽의 '고상한 욕망'부터 서로 단어에 대한 합의가 안된채로 대화가 이어진듯 ㅎㅎ;
세계관 자체가 다른듯ㅎㅎ
왜냐면 맑스주의와 공산주의야 말로 근대 이데올로기의 대표니깐. 그런 욕망 말고 다른 대안 자체를 '객관적이지 않다고' 부정하는게 근대임.
욕망 자체는 계승해야함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