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여기서 두루티가 언급된 적이 있었냐고 물어봤었는데, 이때 두루티에 알려달라는 댓글이 달렸었음.
그러나 아나키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1930년대 스페인에 대한 간략한 글을 쓰게 되었으니, 양해 바람.

스페인 내전은 20세기 이념들의 격전장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파시즘,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 다양한 이념들이 격돌한 사건이었음.
특히 이때 아나키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세력이었는데, 여기에는 아나키즘 성향 노조인 전국노동연맹(CNT)과 스페인 아나키즘 세력의 지도자였던 부에나벤투라 두루티(1896~1936)의 역할이 컸음.

1931년 선거 당시 공화파의 승리로 스페인에서 군주제가 무너지고 제2공화국이 들어섰는데, 이때 새로 만들어진 헌법도 진보적이었음.
"스페인은 노동자들의 공화국이다."
스페인 제2공화국 헌법 1조 1항

그리고 새로 들어선 정부도 토지 개혁 등 각종 사회 개혁을 실시하려 했으나, 스페인 기득권층의 거센 반발로 개혁은 실패로 끝났고 1933년 총선도 우파 세력이 승리해서 우파 정부로 교체되었음.
총선 이후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탄광 노동자, 소작농, 아나키즘 세력 등이 중심이었던 민중 봉기가 엄청난 규모로 발생했는데, 이때 군부는 무자비한 진압을 했고 결국 많은 사상자를 뒤로 하고 1934년 아스투리아스 봉기는 실패로 끝났음.

얼마 안되어서 국제 정세가 변하기 시작하는데, 스탈린과 코민테른이 파시즘 세력에 맞서기 위해, 그동안 고수했었던 '사회파시즘' 노선을 버리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더 나아가서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을 모색하는 '인민전선'을 채택하면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좌파 세력들도 연합을 모색해서 결국 인민전선이 결성되었음.
당시 스페인 좌파 세력은 카바예로, 프리에토, 네그린 등이 있던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제일 강했고 비스탈린주의 사회주의 세력인 POUM, 아나키즘 세력인 CNT도 강했었던 반면에, 공산당은 세력이 미약했었음.
이렇게 좌파 세력들이 힘을 모으고, 여기에 아사냐 등 자유주의 세력들도 합류해서, 인민전선이 만들어졌지.

당시 CNT는 여러 노조들 중에서 세력이 막강한 곳이었는데, 정작 당시 아나키즘 세력은 아나키즘답게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음.
이로 인해 1933년 총선에서도 좌파 세력은 아나키즘 세력의 지원을 못 얻어서 지리멸렬한 상태가 되어 우파 세력에게 패배했음.
그러나 아스투리아스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CNT도 우파 정부의 붕괴를 위해서는 선거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보았고, 결국 아나키즘 세력도 인민전선에 참여하게 되었음.

그렇게 해서 1936년 총선에서 인민전선이 승리하고 인민전선 정부가 들어섰지만, 얼마 안되서 군부와 우파 세력의 반란으로 인해 내전이 발생하게 되었음.
이때 아나키즘 세력도 공화 정부 수호를 위해 내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두루티도 이때 아나키즘 민병대를 이끌고 참전했음.
당시 아나키즘 세력뿐만 아니라, 공화 정부로부터 자치를 약속받았던 보수 성향의 바스크 지방 정부, 콤파니스가 이끌던 자유주의 성향의 카탈루냐 지방 정부 모두 공화 정부 편에 섰을 정도로, 내전 초기 정세는 공화 정부에게 불리하지는 않았기에, 정말 아쉬운 부분임.
그러나 두루티는 내전 초기 전투 도중 전사했음.
사망 원인은 여러 가설들이 존재하지만, 동료의 오발로 사망했다는 설이 많음.

그러나 내전 중반 이후부터는 스페인 내전에 적극 개입 중이던 소련의 입김이 커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네그린이 이끌던 공화 정부는 친소 성향이 되었음.
결국 소련과 스페인 공산당은 아나키즘 세력, 비스탈린주의 사회주의 세력 등 공산당을 제외한 좌파 세력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소련에 무기력해진 공화 정부는 여기에 침묵을 지켰음.
(이때 상황은 영화 '랜드 앤 프리덤'에서 잘 묘사되었음.)
내전이 공화 정부의 패배로 끝난 뒤에는 모든 좌파 세력들이 프랑코 정권으로부터 가혹한 탄압을 받았으니, 이때는 좌파 세력들 모두에게 정말 암흑의 시기였지.

"우리는 계급 없는 사회를, 착취받는 사람도 착취하는 사람도 없는 사회를 원합니다. 불의를 더 이상 넘겨서는 안됩니다. 자유, 정의, 존엄을 위해 거역하고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커다란 희망이 가득찬 신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폐허는 우리를 무섭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궁궐, 교회, 도로, 다리, 이 모든 것들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다시 건설하기 위해 그것들을 파괴할 것입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기자회견에서 두루티가 했던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