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난화 링크는 댓글로 달았습니다.
+경어체는 가독성이 떨어지니 앞으로 평어체로 쓰겠습니다.
2-1.네이션(민족)의 형성과정과 그 성질
네이션(=민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앞의 글을 통해 대략적으로 살펴본 바 있다.
'네이션'이란 사회적 구성물, 즉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재구성되어온 개념이다. 그러므로, 네이션의 의미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쉽게 정의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네이션은 어떤 방식을 통해 형성되는가? 사회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1.인쇄자본주의의 발전
2.활자화된 '공용어'의 출현
3.신문과 같은 대중매체를 통한 동료의식 형성
4.내셔널리티(민족 정체성)의 발달&공동의 역사인식 형성
필자에 의한 자의적이고, 매우 거친 도식화이며, 여러 맥락들을 생략했지만 대강의 내용은 위와 같다. 위의 1~4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기에 앞서, 네이션이란 것의 성질에 대해 알아야 한다.앤더슨은 네이션의 성질에 관해 이렇게 정리한다.
1.수평적 동료의식("계급과 성별에 관계없이 우린 한 민족이다")
2.비대면적 관계로 이루어짐.
1번에 관해서는 뭐 다들 쉽게 이해하리라 생각하고 넘어가겠다. 우리가 짚고 넘어갈 것은 2번이다.
상상해보자. 평생 고향마을을 떠나 본 적 없는 한 농민이 만나본 적도 없는 수백, 수천만의 대중들과 자신을 운명공동체로 생각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일제 초기, 중앙정부와 거의 교류가 없던 외진 농어촌에서는 낯선 일본인 순사와 그럭저럭 잘 지내며 식민통치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지냈다는 사례가 의외로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내셔널리티(민족의식)란 근대 교통, 통신, 대중매체의 발달 이전에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네이션은 실제 생활반경 너머의 수많은 이들과 자신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여기게 되면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셔널리티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이들과 함께 느끼는 공동체 의식이며, 실제로 단 한번의 제대로 된 상호교류도 없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앤더슨은 네이션을 '상상된 공동체'라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위의 네이션의 형성과정을 되짚어 보자.
1.우선 근대 유럽에서 인쇄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출판 자본가들은 더 넓은 시장을 창출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유럽에서 제대로 표준화되어 보급된 문어는 라틴어밖에 없었으며, 라틴어의 사용인구는 일부 귀족, 성직자, 지식인에 한정되었다. 이에 자본가들은 절대다수의 민중들이 사용하던 각 지역(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언어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2.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지역의 언어들은 공식적 자리에서 사용된 바가 적어 제대로 표준화, 규범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출판업계는 지역어들을 표준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한때 서로 의사소통하기조차 어려웠던 수십 수백 개의 군소 방언들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의 거대한 "표준어"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3&4.이제 이렇게 형성된 '표준어'를 통해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대중 매체들이 점차 발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매체를 통해 식자들은 자신과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같은 신문을 읽는 공동체'의 존재, 즉 '같은 신문에서 묘사된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대중'의 존재를 상상하게 된다. 이들은 곧 네이션을 형성하고, 내셔널리즘을 식자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보급하는 '민족주의적 지식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오늘 안에 더 추가합니다.
1편 링크
https://m.dcinside.com/board/kpd/26486?headid=20&recommend=1
민족주의가 근대에 형성되었다는거지, 민족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근대에 만들어졌다는게 아니지 않나
아뇨. 민족 개념 자체가 근대에 형성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민족은 근대적인 개념입니다.
물론 전근대적 요소들이 민족(네이션)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근대적 민족의 형성은 전근대적 요소들의 재구성을 통해 이뤄지니까요. 이에 대해선 후에 서술할 예정입니다.
공동체의 실존과 그 실존의 개념화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텐데.
앤더슨은 근대론 쪽으로 좀 많이 편향되어 있으니 앤서니 스미스의 책도 읽어보기를 추천함. 민족의 인종적 기원이라는 저서가 꽤 인상적이었음.
민족이란 '공동체'가 개념 이외의 형태로 존재한 적이 있었나요
저 또한 베네딕트 앤더슨의 근대론적 경향에는 비판적입니다. 민족 이전에 그 맹아가 되었던 전근대적 에스니시티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고요. 그렇지만, 민족 자체의 등장은 근대로 보는 것이 합당하단 입장입니다.
저는 장문석의 민족주의 길들이기란 책을 추천합니다.
원초주의적 입장은 민족이 어떻게 사회역사적으로 변화하고 구성되는지에 대한 설명에 취약합니다. 공동의 경험에 의해 공동의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명제는 순환논리에 갇힐 뿐더러, 그 '공동의 경험'이란 것이 어떻게 현재적 필요성에 의해 소환되고 재해석되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습니다.
전근대에 민족 공동체라는 개념이 상당 수 지역에서 않은 것도 사실이고, 일반 대중들에게 내면화 되지 않은 것도 사실임. 다만 인지의 부재가 존재의 부재로 이어지지는 않음.
공동의 경험에 의해 공동의 정체성이 형성된다기 보다는, 경험에 의해 정체성이 변화해오는 그 연속성의 존재가 민족이 존재해왔음을 입증한다고 생각함.
그 정체성이 연속적이고 단일한 흐름을 이어왔다는 가정이 빈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반례도 다음글이나 다다음글에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
기대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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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근대에 만들어졌다고해서 일종의 인위적인 정신병그런걸로 취급하고 매도하던데 그런거는 어찌 생각합니ㄲㅏ
젠더도 인위적인 사회적 구성물이죠. 그렇다면 남성, 여성 아니면 둘 다 아닌 무언가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우리 모두는 '정신병자'일까요? 저도 내셔널리즘엔 비판적이지만, 그걸 없애버려야 하고 없앨 수 있다는 주장엔 '글쎄이올시다?'하는 생각이 드네요.
잘못 썼네요 "내셔널리티"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글쎄다 싶은 겁니다. 내셔널리즘은...최대한 억제하고, 가능하다면 완화시켜야죠.
넷상에서 탈민족주의라면서 꺼드럭대는 사람중들중 일정부분(?)인지 몰라도 하도 민족주의 공격하는것에 대해 뇌절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런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는데 그럼에오 불구하고 괜찮은 답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