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적 인권론은 개인의 독자성과 불침성을 강조 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인간을 사회와 유리시키고 말았다. 소위 천부인권이라 하여, 인간의 정치적 자유와 기본적 권리들은 인격신에게 직접 부여받은 것으로서 사회나 공동체의 문제와는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그리고 신성하게 지니는 것이라는 주장은, 본능적으로 무리를 이루고 그 무리를 통해서 비로소 자아를 각성하는 인간이라는 생물의 본질을 부정하고 만다. 신채호 선생이 '비아를 인지하고 나서야 아는 스스로 아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 라 역설했듯이, 인간은 무리 속에서만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 허나 천부인권론은 결과적으로 공동체와 무리를 해체하여 인간을 집단으로부터 흩어버렸으며, 결국 근대 공간에 내팽겨쳐진 인간은 개별자라는 허울 좋은 수사만을 뒤집어 쓴 채로 총체성과 자아를 상실하고 말게 되었다. 또한 인본주의는 인간의 위에 군림하는 질서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의 척도이자 도덕의 창조자로서의 직책에 임하도록 만들어 모든 신성한 가치들을 끌어내려 진흙탕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허나, 천부인권론과 인본주의에 오류가 있다 한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는 인류 본연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부정되는 순간, 찾아오는 것은 야만 뿐이다. 야만과 폭정은 개인을 탄압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마저 피폐하게 만들고 마며, 단순히 구성원에 대한 공동체의 우위를 넘어, 구성원을 고려의 대상조차 아닌 것으로 격하하게 된다면, 구성원들을 통해 떠받들어지는 공동체 또한 근본적 타격을 입고 마는 것이다. 근대 이래로 서구 및 서구의 영향을 받은 사회는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는 인본주의와 공동체를 피폐하게 만드는 야만의 양 극단에서 줄타기를 하며 양 대립항의 적대적 공존을 이어갔다. 허나, 정녕 단 두 가지 길 밖에는 없는 것일까? 인본주의와 야만을 이중부정하고, 공동체와 그 구성원이 모두 존엄을 지니는 사회는 추구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질문의 해답은 또 다시 동양에서 찾을 수 있다.
동양은 본디 개별자에 비해 공동체의 가치가 훨씬 더 큰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상하 간의 계약에 따라 발생하여 중근세를 통틀어 서구를 지배해온 봉건제와 반대로 그 시기의 동양은 지배자와 귀족마저도 거대 가정으로서의 국체에 예속되는 유기체적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자체의 존엄은 서구적 인권 사상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뿌리내려 있었다. 동양에서 개인은 자아에 초월적 규범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였다. 주자학에서는 성즉리라 하여, 인간의 본성이 곧 하늘의 도리라 주장했으며, 양명학에서는 만가성인이라 하여, 거리의 모든 민중이 성인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파했다. 또한 주자학과 양명학은 형이상학적 세계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고전 유학의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유학이 불교적 헤게모니를 수용한 결과라는 것을 볼 때, 이러한 만가성인론과 성즉리는 곧 불교에서 설파하는 모든 인간은 내면에 불성을 지닌다는 주장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명확하다.
이렇듯 동양 전통의 가치관 또한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서 묘사한다. 결코 쉽사리 해치어지거나 생명을 경시해도 되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에서의 개인은 결코 사회와 유리되지 않는다. 개인은 사회 속에 조화되고 녹아 듬으로서 비로소 권리와 존엄을 인정 받는다. 동양적 인간상의 이러한 요소는 수운 선생의 인내천 사상에서 잘 드러난다. 인내천, 말 그대로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왔다는 사상은 얼핏 보기에 서구의 천부인권과 흡사한 부분이 있어 보이지만, 인간이 하늘로부터 기인했다는 말은 즉슨 하늘의 규범, 도덕적 원칙이 있고 나서 인간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있고 나서 규범과 도덕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기초적인 원리를 내포한다. 인간은 존엄하지만, 도덕적 원칙과 규범이 인간의 존엄에 선행된다.
예전에 썼던 글 중 발췌
뭔입장이긴 알겠음 근데 나는 우선보다 인간존엄=도덕적규범으로 보는 입장임 둘중 뭐가 우선인지는 경우따라 다를것
도덕규범이 없으면 인간이 인간일 수 없고 짐승이 된다고 생각해서 전자가 선행된다고 믿음
자유주의에서도 옳음이 좋음에 대해 우선한다고 주장할 뿐, 자유주의에서 강조하는 옳음을 통해 충분히 인간을 인간다운 존재로서 가둬둘 수 있다고 생각함. 단지 그 이후에 좋음에 대한 생각이 각자 다르고 그걸 존중해야한다고 주장할 뿐.
"단순히 구성원에 대한 공동체의 우위를 넘어, 구성원을 고려의 대상조차 아닌 것으로 격하하게 된다면"이라고 했는데 지금 념글에 있는 글에서 이미 그러고 있지않음?
ㅇㄷ
물론 이 글을 읽고 나니까 그 글에서 의도했던 바가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걸 이해했다고 미리 밝히겠음. 념글에 "개인 또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기에 개인과 공동체는 상호의존적이며 동시적인 성질을 지님." 이 문장은 개인은 단순히 공동체의 열위인 존재를 넘어서 공동체 없는 개인은 (모든 개인이 공동체에서 사라지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일순조차 존재함을 허락받지 못하는(비동시적) 완전한 종속(비로소 존재하는 것의 대우로서)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음. 문장 자체가 지나치게 파쇼적이라서, 그런 의도로 쓴 말이 아니란건 이 글을 통해 이해했지만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내가 그 글에 댓글으로 '이 말은 공동체가 개인의 단순합이라는 주장만큼이나 극단적인거 같아서 좀...'이라고 달은게 그거때문이기도 하고.
저 글에는 공동체 또한 개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적어놨으니 두 개념을 동등하게 서술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해의 여지가 있었나보네.
아무래도 집합론적으로 개인 IN 공동체 (이때 공동체!=공집합) 이런 느낌의 텍스트였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