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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노동자에게 소비에트의 권력의 방어자인 우리가, 사회 혁명의 획득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자.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대의를 위해 투쟁하면서 크론슈타트의 폐허 속에서 이기거나 죽을 것이다.


-크론슈타트 봉기에 참가한 어느 수병의 선언 




10월 혁명 이후 민중들은 이제야말로 프롤레타리아에게 모든 권력이 주어질 것임음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10월 혁명이 일어난 날 실시될 예정이었던 한 2차 전소비에트 대회를 열지 않았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상징인 두마마저 영구히 폐지시켰다. 이후 내전을 명분으로 전시공산주의를 실시하였으며 이들의 약탈정책으로 내전기간동안 500만명이 넘는 인민들이 굶어죽어갔다. 그제서야 민중들은 볼셰비키야말로 자신들이 염원하던 혁명의 성과를 탈취하려는 또다른 멘셰비키라는것을 깨닫고 탐보프, 자포르제 지역에서 항쟁에 돌입하였으나 고립된 그들은 격파되어갔다. 


이 와중에 일어난 크론슈타트 봉기는 이러한 볼셰비키의 전정을 가로막기 위한 최후의 시도였다. 10월 혁명에도 선봉에 섰던 함대의 수병들은 소비에트 비밀선거의 실시, 일당독재와 전시공산주의의 폐지, 언론과 표현의 자유 보장등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혁명당과 극우파의 합작품이라니 브랑겔과 연합했다더니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들에게 감염되었다는 헛소문으로 이들을 무시하였고 이들을 격파시켰다. 봉기를 진압한 직후 볼셰비키는 뻔뻔하게도 파리 코뮌 5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으며 '민주집중제'를 출범시켜 모든 의견개진을 차단시키고 말았다. 이것을 본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먼은 러시아를 떠나며 '혁명은 죽었다.'라고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