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marxist.com/kronstadt-trotsky-was-right.htm
크론시타트 수병들의 증언에서 우리는 "반란군을 이끄는 백위대"에 대한 말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은 단순히 말뿐인 것이 아니다. 반란군에 대한 지휘권은 순진한 사람들이 생각할지도 모르는 것처럼 크론시타트 소비에트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소위 '크론시타트 요새 방어 위원회'에 있었다. 이것의 지도자들은 해군소장 S. H. Dmitriev(요새 함락 후에 처형된)과 핀란드로 탈출한 A. H. Koslovsky이였다. 이 두 고위 장교 모두 '볼셰비키와 함께'이든 '볼셰비키 없이'든 사회주의에 대한 어떤 종류의 공감과도 거리가 아주 멀었다.
(중략)
크론시타트에서 활동하던 반혁명세력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짜르의 전 수상이자 재무장관이며 망명중에는 파리의 러시아 은행의 책임자였던 Kokovzev는 크론시타트 반란군에게 22만 5천 프랑을 송금했다. 러시아-아시아 은행은 20만 프랑을 송금했다. 프랑스의 수상 Briand는 케렌스키 정부의 전 대사 Malachov를 만난 자리에서 '크론시타트에 대한 모든 필요한 도움'을 약속했다.
결론: 러시아의 노동자, 농민, 병사는 내전기 내내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라는 슬로건으로 산발적으로 봉기한 세력들의 정체에 대해 당대나 현대의 순진한 사람들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이런 봉기들이 전국에서 진지한 호응을 얻지 못하고 '고립되어 진압'된 이유다.
크론시타트 수병들의 증언에서 우리는 "반란군을 이끄는 백위대"에 대한 말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은 단순히 말뿐인 것이 아니다. 반란군에 대한 지휘권은 순진한 사람들이 생각할지도 모르는 것처럼 크론시타트 소비에트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소위 '크론시타트 요새 방어 위원회'에 있었다. 이것의 지도자들은 해군소장 S. H. Dmitriev(요새 함락 후에 처형된)과 핀란드로 탈출한 A. H. Koslovsky이였다. 이 두 고위 장교 모두 '볼셰비키와 함께'이든 '볼셰비키 없이'든 사회주의에 대한 어떤 종류의 공감과도 거리가 아주 멀었다.
(중략)
크론시타트에서 활동하던 반혁명세력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짜르의 전 수상이자 재무장관이며 망명중에는 파리의 러시아 은행의 책임자였던 Kokovzev는 크론시타트 반란군에게 22만 5천 프랑을 송금했다. 러시아-아시아 은행은 20만 프랑을 송금했다. 프랑스의 수상 Briand는 케렌스키 정부의 전 대사 Malachov를 만난 자리에서 '크론시타트에 대한 모든 필요한 도움'을 약속했다.
결론: 러시아의 노동자, 농민, 병사는 내전기 내내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라는 슬로건으로 산발적으로 봉기한 세력들의 정체에 대해 당대나 현대의 순진한 사람들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이런 봉기들이 전국에서 진지한 호응을 얻지 못하고 '고립되어 진압'된 이유다.
단순한 해외 반동의 지원이라면 레닌도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받고 소련에 왔을텐데?
차르체제 엎을때 도움받는거랑 소비에트 형성뒤랑 같다고보긴 힘들듯
완전히 같지 않은데, 후원 받은걸로 저렇게 이야기 한다면 레닌도 자유로울 일이 없으니깐.
다른 방법으로는 귀국할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스위스에서 독일 영토를 통과해 귀국한 것이 후원인가? 그럼 미국에서 귀국한 수많은 망명자들(트로츠키를 포함해서)은 미국이나 탄 선박을 소유한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원을 받은 것인가? 그리고 당시 스위스의 모든 러시아 망명자들이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같은 방법으로 귀국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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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은 첫 타자를 끊었을 뿐이고 그 바로 1주일 뒤에 멘셰비키 망명자 그룹이 독일 열차에 탑승했다는 사실을 많은 역사가들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왜일까?
그 몐셰비키 애들도 또 독일제국의 지원을 받은 괴뢰라고 볼 수 없잖나? 해외 지원이랑 괴뢰 여부는 무관하다는거 뿐임. 내말은
위에 글에선 또 반혁명세력의 모든 지원을 거부했다고 주장하지만 만약 돈을 받았다면 독일제국이 레닌에게 한 '지원'과는 아예 다른 차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