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Rawls (1921 ~ 2002)
지난 글:
정의에 대한 생각에서 '응분', 즉 성과나 능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개념은 꽤 오랫동안 지배적인 생각이었고,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배 정의를 재화를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에게 분배하는 것으로 바라봤고, 고전적 자유주의나 자유시장주의 등의 사상들도 마찬가지로 돈, 명예, 기회 등의 다양한 재화를 '노력했기 때문에,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가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롤스의 생각은 다르다. 어떻게 보면 '능력주의, 성과주의, 공적주의'적인 이런 시각을 롤스는 거부한다. 그렇다면 롤스는 어떤 근거에서 재능과 능력, 노력과 성과에 따른 분배를 비판하는가?
일단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가 다음과 같은 사실에는 동의한다는 전제를 두자. 순전히 행운에 의해 분배가 결정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모든 국민이 추첨을 통해 일자리를 나눠가진다거나, 임금이 결정된다고 해보자. 이것은 단순히 누가 보더라도 결코 정당하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것은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기반으로 성과주의를 비판하는 첫 번째 근거는, 재능의 분포는 우연적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수많은 분야에 재능을 갖고 태어나거나, 또는 갖지 않고 태어난다. 이것은 순전히 우연적으로 결정된다. 부모의 유전을 비롯한 관련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결국 부모의 유전자 풀에서 어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지는 무작위적으로 결정된다.
생각해보자. 결국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행운에 의해 분배가 결정되는 것은 정당치 않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재능에 따른 분배도 근본적으로는 행운에 기반한 것이 아닌가? 따라서 재능에 따라, 그리고 그 재능을 발휘해서 얻은 성과와 공적에 따라 재화를 분배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부당한 일이 된다.
여기까지는 많은 이들이 쉽게 이해하나, 다음과 같은 질문을 꺼낸다. '재능에 따른 분배가 부당하다 할지라도, 재능을 떠나 개인이 노력해서 재능을 발전시키고 성취를 거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가? 노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롤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노력 역시 재화의 정당한 분배 기준은 아니다. 두 번째 근거로써, 노력이 왜 정당한 분배 기준이 아닌지 살펴보자.
우선 a, 노력 역시 재능과 마찬가지로 우연적으로 '타고 나는' 성질을 띄고 있다. 즉, 노력도 재능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빨리 달리는 재능, 복잡한 수학 계산을 잘 하는 재능, 남들보다 미적인 감수성을 타고난 재능은 우리의 유전자에 기반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왜 노력 역시 하나의 재능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까?
이 부분은 심리학이나 유전학 등 다른 분야의 학문들로 뒷받침 할 수 있다. (내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를 뒷받침해주는 연구 결과를 몇 가지만 들고 오자면, 미 심리학회가 '공부는 96%가 유전이다'라고 발표한 것과, 전 세계 253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에서 '학업 기간이 긴 사람들에게 발견된 DNA가 뇌와 신경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집중적으로 분포됐다'고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b, 설령 노력이 우연적으로 타고난 성질이 아닐지라도 노력은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아주 거칠게 예를 들어보자. 풍요로운 집안에서 태어나서 무슨 일을 해도 지원과 관심이 쏟아지는 환경에서 자란 소년과, 가난하고 빈곤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란 소년 중 누가 더 노력하기 쉽겠는가? 단지 물질적인 환경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집안 형편과 같은 물질적 환경, 같은 노력을 들였을 때 다른 성과가 나오는 재능의 차이,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 등 다양한 환경들이 '노력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즉, 이를 통해 우리는 순수히 '노력'을 놓고 분배 기준을 세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응분', 즉 '성과주의, 공적주의'가 잘못된 세 번째 이유는 그것이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다른 예시를 들어 보자. 손흥민은 축구를 잘해서 (그리고 또 축구 실력을 갈고닦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100억이 넘는 연봉을 가져가고 있다. 그런데 그가 '11명의 선수들이 팀을 이루어 경기장 안에서 공을 차서 상대방 골대에 공을 넣는 스포츠'에 보상을 해주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땠겠는가? 만약 그가 석기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겠는가? 적어도 '축구'에 대한 그의 재능과 노력은 분배적인 측면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즉, 능력과 노력은 부분적으로 시대상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우연적인 측면을 띈다.
즉, 1. 재능에 따른 분배는 우연적이며, 2. 노력에 따른 분배도 우연적이고, 3. 둘 모두 시대상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우연적이기 때문에 성과주의, 능력주의, 공적주의는 잘못된 것이 된다. 이것은 '응분'이라는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람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또는 '그 사람이 노력을 했기 때문에' 재화를 '받을 만 하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능이나 노력에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회나 경제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작동하겠는가?
롤스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 하에서도 의사가 청소부보다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능력주의나 성과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의사들이 더 능력이 좋으며,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에', '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라는 이유가 아니다. 단지 의사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이 사람들에게 의사가 될, 그리고 의사로서 일할 동인을 제공하고 이것이 결국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약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의사, 법조인 등의 직업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그들이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차등 원칙을 만족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해야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이 더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노동이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대신,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면 사회가 정의 원칙에 따라 (차등 원칙에 따라) 그들에게 대가, 노력의 동인을 지급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작은 관점의 변환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은 차이점을 불러온다. 전문직, 고위직들이 임금을 더 많이 받아가는 것은 그들에게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므로, 그들의 임금은 너무 높아서는 안된다. 오로지 그들의 임금을 높이는 것이 차등 원칙을 만족시킬 경우에만 높여야 하므로, (아마도) 현재 우리의 현실보다는 적은 임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분배에 관한 많은 사회적 논쟁들도 '그들이 그걸 받을 자격이 있었는지', '그들이 충분한 노력과 능력을 가졌는지'를 논쟁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집중해야 할 것은 '현재의 사회 제도가 정의롭게 짜여졌는지', 그리고 사회가 정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이다.
또한 재능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곧 재능을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동 소유물로 바라봄으로써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특히 차등 원칙이 내포하고 있는 재분배와 정의 원칙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번 글에서도 글 내용에 오류나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면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간단한 소개글로 받아들여주시길 바랍니다.
+ 사회주의자들도 자유투사들이 '노력', '능력', '성과'등의 단어를 이용하며 능력주의를 절절히 울부짖는다면 그 대답으로 롤스를 보여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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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갤사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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