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떡밥이 금지되기 이전에, 한창 교차페미가 뭐니 터프가 뭐니, 뭐가 개량이고 뭐가 반동이니 말이 많았지.

근데 말만 많았다.

교차페미를 지지해야 한다. 맞다, 내 지인 중에도 교차성 페미 많더라 말은 많은데 정확히 뭔지 하나도 이해하는 사람이 제대로 없었음.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설명하려고 한다. 또, 이게 상당히 유연한 개념이라 읽다보면 꼭 페미니즘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란 걸 알게 될 거임.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줄여서 교차페미를 이해하려면 '상호교차성'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상호교차성은 사실 딱 한 문장으로도 설명할 수 있기는 하다. "억압은 교차한다."

당연히 이것만 들으면 감이 안 오겠지. 예시를 들어보겠다.

1.흑인 노동계급 A
A는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 노동자다. 이 사람은 동네의 의류 공장에서 일하면서 백인 노동자보다 적은 돈을 받았고, 흑인 게토에 거주하며, 질 나쁜 공립학교를 중퇴했다. 경찰들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실제로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 갑자기 범죄자로 몰려 불심검문 받은 적이 잦다.

자, 그럼 위에 묘사된 A의 일상 중 어떤 차별이 계급에 의한 것이고, 어떤 게 인종적 차별이지?

임노동을 하며 착취받은 건 노동계급으로서 차별받은 거고, 흑인 게토에 살고 경찰에게 의심받는 건 흑인으로서 차별받은 건가? 상호교차성 개념 이전에는 그렇게 설명했다. 직장 내에서 인종차별을 당해? 흑인이라 받은 차별이야. 임금착취를 당해? 노동계급이라 당한 거야. 이걸 '더하기 모델'이라 부름. A의 사회적 위치를 단순히 '흑인+노동자'라고 생각하고, 각 정체성마다 받은 차별은 서로 분리시키는 거지.

그런데 A가 교육받은 전문직 부르주아였어도 직장 내 인종차별에 저항 못 했을까? 항의도 하고, 본인이 요직에 있다면 이직하겠다고 회사에 압박도 할 수 있었겠지.

또 A가 백인 노동계급이었다면 직장 내에서 인종적 모욕과 차별적 임금을 감내해야 했을까? A가 흑인이었기에 받았을 차별을 백인 노동계급은 받지 않았을 테지.

그렇기에 A에게 흑인으로서 받은 차별, 노동계급으로서 받은 차별은 분리되지 않는다. A는 항상 '흑인이자 노동계급'으로서 차별받은 거고, 그 두 가지는 분리되지 않음. '부르주아 흑인'이나 '백인 노동자' 둘 모두와 다른 양상으로 억압을 경험했지. A에게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은 언제나 함께 작동했고, '교차되어 있었다.'




2. A 씨와 B의 이야기
그러고 보니 A씨의 젠더를 이야기하지 않았네. A씨는 남성이고, 백인 여성 B씨와 결혼한 상태다. B씨도 노동계급이고 박봉의 파트타임 업무들과 가사노동을 병행하지. 참고로, A는 B를 자주 구타한다. B는 A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길 한가운데에서 B를 구타하고, 그러자 흑인 여성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날 때는 관심도 안 주던 경찰이 사전 경고도 없이 A를 향해 발포한다.

자, 그럼 여기서 누가 강자고 약자지?

A가 남성이기도 하고 B를 학대해왔으니 A가 강자인가? 아니면 백인이라 흑인들과 달리 공권력의 비호를 받을 수 있었던 B가 강자인가?

판단을 내릴 수 없지. 위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분명 A와 B의 관계는 맥락에 따라 강자성과 약자성이 다르게 나타나면서, 끊임없이 변화했을 거다.(물론 A가 가정폭력범인만큼, 명백히 대부분의 상황에선 A가 가해자였겠지만)

따라서 누가 다수자의 위치에 서고 소수자의 위치에 서느냐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스트 C는 평소에는 여성으로서 약자의 위치에 섰지만, 난민 반대 청와대 청원을 넣었을 때는 대한민국의 시민권자로서 강자였다고 할 수 있지.

3."제국주의적-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
위의 표현은 흑인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벨 훅스가 미국의 사회체제를 묘사하면서 사용한 말이다. 장애나, 연령대에 대한 차별 등, 무엇이든 저기에 추가해볼 수 있겠지. 인종적 억압, 젠더 간 위계, 그리고 계급 간 착취는 모두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 한 예로 외모지상주의를 들어보겠다.

-세계적으로 미의 기준은 백인에게 맞춰져 있다.
-장애를 가진 몸은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는다.
-부르주아들은 노동계급보다 더 날씬하고 탄탄한 몸을 유지하기 쉽다
-사회학적으로 외모에 대한 부담은 여성에게 더 크게 부과된다.
-...

이 모든 요소들이 외모지상주의 이데올로기에 내포되어 있으며, 이들은 사회에서 결코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네가 혐오스러운 외모를 가진 사람을 꺼려할 때, 너는 자연스레 시장에 의해 조정된 욕망에 복무하고, 인종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끔 유도되는 거지. 다른 예시도 얼마든지 들 수 있을 거다. 장애인에 대한 경시가 곧 노동에 적합한 육체만을 선호하고 숭배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복무하게 된다던가. 아니면 백인남성 중심의 '인맥'에서 소외된 백인 여성이 '무능력해서' 업무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면 곧 마찬가지로 소외된 흑인들에 대한 억압으로도 이어지겠지.(그와 동시에 시장주의가 조장한 능력주의적 이데올로기도 강화되겠고.)

따라서 페미니스트든 누구든, 변혁을 원한다면 모든 구조적 억압에 맞서 연대하고 저항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상호교차성의 의미와 함의라 할 수 있음.


페미니즘에서 시작된 개념이긴 하지만, 1번 파트에서 보이듯 젠더 담론 외의 문제를 다룰 때도 사회학적으로 상당히 유용한 사고틀이라 온갖 곳에 쓰이고 있다. 현재 페미니즘 담론을 주도하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꼭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익혀두는 게 좋을 것.


4.갤러리 내 떡밥들에 대한 상호교차적 접근
갤러리가 오랜기간 동안 다양한 주제로 불탔었지. 몇 개만 되짚어보자.

-서울 강남 사는 노동계급이 지방 부르주아보다 기득권임?
아니. 하지만 흑인 부르주아가 백인 노동자 착취한다고, 인종차별이 없는 건 아니지. 서울에는 문화, 교통, 의료, 복지 등의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고, 지방 출신에 대한 조롱과 차별이 만연함. 방언에 대한 천시와, 각 지역민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회 곳곳에 뿌리박혀 있고. 그러나 지방민의 다른 위치성(계급, 젠더, 장애여부 등등)에 따라, 상황적 맥락에 따라 서울시민에 대해 항상 절대적 약자의 위치에 놓이진 않는 거라 할 수 있겠지.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노동 의제 아님?
둘 다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가능해지려면 여성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남성중심적인 기존 노동운동 내에서 목소릴 키워야 하는 동시에 사측에 있어 충분한 교섭력을 갖춰야 할 텐데 이건 노동의제나 여성의제 중 하나로만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오지.



생각나면 더 써보겠지만 일단 설명할 건 이게 다임. 마지막으로 숙명여대에 합격했지만 학내의 트랜스혐오로 인해 입학이 좌절되었던 A씨가 입학을 포기하면서 기고한 짧은 글이 있다. 상호교차성의 관점에 입각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하니 읽어보면 좋겠네. 댓글로 달아 놓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