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연재글에서 "혁명의 모습은 바리케이트 양편의 시가전이라는 낡은 형태는 아닐 것" 이라는 엥겔스의 텍스트가 수정주의 논쟁의 촉발점이라고 이야기 했을 것임. 이번 글은 제 2 인터내셔널에서 맑스주의가 어떻게 수정되고 분열되고 변화했는지 알아보고자 함.


먼저 제 2인터내셔널에 대해 알아보자.


제 2 인터내셔널 The Second International (1889~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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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암스테르담에서 즐거운 한 때... (6번 우리 갤주)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사회민주당의 주도로 국제 사회주의 정당들이 모이게 되었고

여기서 1 인터내셔널의 원칙들과 5.1 노동절을 채택하게 되면서 2 인터는 시작되었음.


2 인터의 특징 중 하나로는 1 인터와는 다르게 아나키즘 세력을 배제했다는 것.

당시 아나키스트들은 의회전술등의 '정치행위' 자체를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음.

그렇게 정치적 행동을 승인하는 분파들만 가입하였으나, 그렇다고 촘촘하고 통일된 조직은 아니었음.

마땅한 중앙 기구도 없고, 아나코 생디칼리즘 등의 이질적 분파들도 분포되어 있기 때문.

따라서 독일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한 느슨한 좌익-노동운동 빅텐트에 가까웠다고 보면 되겠음.


그런데 1891년, 창설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수정주의자들이 노동절을 휴일로 바꾸자고 주장함.

여기에 독일사회민주당이 호응하고 5월 1일이 아니라 휴일인 일요일에 총파업을 하게 됨. May Day 결의에서 일방적으로 후퇴한거지.

그런데 타국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May Day 결의를 지켜 당일 총파업을 성사시켰지.

제국주의 전쟁에 들어서기 전부터, 분열의 조짐이 가시화된 것임.


노동절에서 후퇴했던 수정주의자들은 훗날 제국주의 전쟁을 노골적으로 찬성하면서 2인터내셔널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지.


조직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부터 인터내셔널의 대표적 4가지 논쟁을 알아 볼 것임.

(1) 수정주의 논쟁 (2) 총파업 논쟁 (3) 제국주의 전쟁 (반전주의) 논쟁 (4) 식민지 논쟁이 그것인데, 일단 이번 글에서는 (1)과 (2)만 다뤄보도록 하겠음.


(1) 수정주의 논쟁


* 수정주의(Revisionism)와 개량주의(Reformism) 구분

수정주의는 맑스주의의 원론적 입장을 수정하자는 입장이고, 개량주의는 전술적 차원에서 일상-경제 투쟁과 의회 투쟁에 중점을 두는 개념임.

사실 당시 수정주의자가 곧 개량주의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엄밀히 구분해서 쓰는 호칭은 아니었음.


* 수정주의의 배경

수정주의는 의회전술이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하니까 이거 혁명 안해도 먹고 살만하고 좋다 싶어서 대두되기 시작함.

국가를 적으로 돌리기보다, 지배계급에 대한 적절한 압력, 회유와 설득으로 얻어낼 것이 더 많다고 봤던거지.


* 붕괴론에 대한 입장

사민당은 개량주의적 실천으로 일관했지만 다 이유가 있었음. 혁명은 필연이라고 생각했던거지. 즉, 자연법칙과 마찬가지로 혁명은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함. 이걸 '다윈주의적 맑스주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칼 카우츠키지. 당시 그는 맑스주의의 정통과 이단을 나누는 '맑스주의의 교황'이라고 불렸음. 여기서 사회주의자들과 노동계급의 할 일은 오로지 '혁명의 그 날'을 '예측'하고 '기다리는 것' 뿐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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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과 이단을 나누었던 '맑스주의의 교황' 카우츠키


*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근데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보려니까 붕괴의 그날이 너무 안보이는 거지. 그래서 베른슈타인은 '그 날은 너무나 멀리 있다'며 맑스주의에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함. '정통파'라고 불리던 카우츠키도 혁명의 낌새가 보이지 않으니까 이 수정주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부분이지. 게으른 맑스주의자들의 이론적 무능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부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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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베ㅡ


* 사회개량이냐 혁명이냐

여기서 갤주는 수정주의에 대한 이론적 대응을 하기 시작함. 갤주주의는 다 알것이니 대충 인용만 하나 하고 넘어가자.

갤주 : "혁명이란 기존 체제 자체의 전복이자 단절이며 입헌적 질서 내에서의 개량으로는 결코 현존사회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ㅡ베ㅡ : "자유주의의 온전한 계승이자 실현이 곧 사회주의"


당시에는 갤주의 판정승이었고, 당에서도 베른슈타인 비판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음.

그러나 수정주의자들은 곧 제국주의 전쟁 국면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고, 본격적인 배신의 길을 걷지.


(2) 총파업 논쟁


총파업 논쟁은 제1인터내셔널에서부터 시작됨. 맑스는 당시 제기된 대항수단으로서 '총파업' 개념을 비웃으면서, 총파업으로 체제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강력하고 통일된 노동자 조직이 있다면, 총파업을 할게 아니라. 당장 봉기하여 혁명을 해야한다고 반박했음. 그러나 현실은 맑스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지. 다양한 파업, 총파업은 맑스가 말한 '강력하고 통일된 조직' 없이도,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지도 없이도, 산발적이고 자생적으로 곳곳에서 발생하였던거지.


여기서 주류 맑스주의자들의 총파업에 대한 부정적 비판적 입장을 '관념론적'이라고 비판하며 생성된 조류가 바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 아나코 생디칼리스트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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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코 생디칼리즘의 상징, 흑적기


* 아나코 생디칼리즘과 총파업

아까 2인터의 이질적 분파중 하나라고 소개했던 아나코 생디칼리즘이 이 논쟁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부분이지.

그들은 오히려 총파업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으며, 혁명의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고 주장함.

노동조합은 사회의 기본 축이 되어야 하며,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보기도 하였음.

대표적인 이론가, 활동가로는 펠루티에 -> 브리앙 (변절) -> 조르주 소렐 (<폭력에 대한 성찰>) 이 있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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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반전투쟁에 앞장서다 암살당한 조르주 소렐


* 2인터내셔널과 총파업

2인터의 주류 맑스주의자들은 여전히 총파업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었음. 위의 맑스의 총파업 비판 논리가 그대로 계승되어 받아들여졌기 때문임. 총파업에는 통제가능한 전국적 조직, 민중의 의식적 고양이 선제조건이라고 보았고, 그런게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본거지.


또 총파업의 목적은 특정한 목표, 즉 입헌질서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혁명의 수단이 될수는 없다고 보았음. 목적을 달성하면 철회될 수 있는 '통제된 총파업'이라는 개념이 주요 개념이었지. 근데 그건 자생적인 총파업에선 불가능하다는거지.


그러니까 맑스주의자들은 총파업은 자발적으로 발생할수가 없고, 어쩌다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통제할 수 없는 무질서한 현상일 뿐이라고 단언한 것이지.


이러다보니 아나코 생디칼리스트들은 답답해할 수 밖에 없지.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자꾸 관념론적이고 총파업을 바라보니까.


그러다가 벨기에 총파업이라는 '현실'이 맑스주의자들의 '이론'을 전적으로 반박하게 됨. 총파업이 실제로 자생적으로 발생하고 사후에 질서정연한 통제가 이루어진 것.


이러다 보니 맑스주의자들도 할 말이 없어지고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음. 이때쯤 홀스트는 총파업 (General Strike)와 대중파업(Mass Strike)의 구분을 제안하면서 맑스주의에서의 총파업 수용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지.그러나 여전히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2 인터내셔널의 지도부인 독일사회민주당이었음. 그들은 그들이 이제껏 개량 투쟁으로 만들어온 성과를 모험으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음. 총파업과 혁명은 그들에게는 너무 '두려운' 발상이고 개념이었음. 그들은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대중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거지.


이후 주류 맑스주의자들의 입장이 극적으로 선회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05년의 러시아임.


* 1905년의 혁명

1905년 러시아에서 자생적 총파업과 시위로 Soviet-혁명적 정치체들이 건설되자, 사회주의자들은 어떠한 지도와 계획 없이도 혁명적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게 됨. 주류 맑스주의자들은 지식인들, 사회주의자들의 전위, 의식적 지도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임.


갤주는 이전의 저서들에서도 이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러시아혁명을 경험한 이후 저술한 <대중파업론>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음.


* 대중파업론

- 일상투쟁이 정치투쟁으로 전화한다는 개념은 환상이며, 일상투쟁과 정치투쟁은 서로 상호작용하거나 사실상 같은 개념임.

-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하는 것도 오류임.

- 조직이 혁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혁명이 조직을 만듬.

- 따라서 사회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은 기술지도가 아니라 정치적 지도를 해야함. 이는 투쟁의 실마리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며, 정치투쟁 전술을 계획하는 것.

- 대중의 자발성과 당의 지도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


->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라는 한계가 있으나, 노동자계급의 자발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갤주주의는 좌익공산주의로 계승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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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볼 때 진실로 혁명운동이 범한 오류는

가장 현명한 중앙위원회가 절대적으로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조직문제>1904


* 총파업 논쟁에서의 로자 룩셈부르크와 조르주 소렐

각자 맑스주의자와 아나코 생디칼리스트로 입장차는 선명하지만 총파업에 대한 아이디어와 인식은 공유되는 지점이 많았음.

다만 갤주는 소렐류 생디칼리스트들에 대해서 '의지주의'적이라고 비판했고, 총파업에는 객관적 조건이 더 결정적이라고 생각했음.

갤주는 '객관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대한 주체적 측면에서의 대응이 바로 대중의 자발성에 의한 총파업' 이라고 보았으며,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조건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혁명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음.


여기서 주체적 실천과 상부구조를 중요하게 보는 입장은 루카치서구 맑시즘(웨스턴 맑시즘)으로 이어짐.



-끗-


다음 글은 (3) 제국주의 전쟁 논쟁 (4) 식민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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