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는 ‘볼리바리안 혁명(볼리바르식 혁명)’과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걸었다. 그러나 차베스정권의 ‘볼리바리안 혁명’과 ‘21세기 사회주의’의 특징은 베네수엘라 권력의 중도반단(中途半斷)적 반(半)변혁의 모순을 안고 있다.


한 예로 차베스의 핵심적인 석유산업에서 국유화의 내용을 보자. 우선 차베스 이전의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의 상태를 보면, 1920년대 중반에 베네수엘라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래, 베네수엘라 자본가계급을 위시한 지배계급들은 제국주의 열강, 특히 미 제국주의와 손잡고 석유산업을 미국 석유재벌들에게 넘기고 석유수출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자신들의 정권유지를 해왔다. 1976년 석유산업이 국유화되어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가 여러 석유 회사를 관할하기도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1989년 이후 1990년대에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도입되었고, 외국인 직접투자가 장려되었고, 석유산업에서 사유화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차베스는 1999년 집권하자마자 볼리바르헌법을 통해 석유산업의 사유화를 완전히 봉쇄하였고, 국영석유회사의 구조개혁에 착수하였다. 차베스는 2001년 11월 49개의 주요 개혁 법안들 중의 하나인 ‘탄화수소법’을 만들어서 PDVSA가 외국과의 모든 합작에서 51%의 지분을 소유하고, 또 석유산업에 참여하는 사기업에 대해 석유 수수료를 16.7%에서 30%로 인상하였다.


2002년 4월 반정부세력의 쿠데타의 실패, 그 해 12월 반정부세력의 파업이 분쇄되자 차베스는 PDVSA를 정부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을 가장 핵심과제로 삼았다. 차베스는 우선 오랫동안 특혜와 뇌물로 오명을 쓰고 있는 PDVSA의 인사개편을 단행하여 회사의 보수파 중역들을 급진파 중역들로 대체했고, 반동 쿠데타를 지지하는 반정부 파업에 참여했던 파업 참가자들을 해고하였는데 이들의 대다수는 경영진과 고위기술직이었으며, 전체 4만 5천명 중에서 19,000명이 해고되었고, 새로운 노동자들로 대체했으며, 2003년 국영석유회사를 차베스 정부대표가 직접 지배하게 함으로써 PDVSA의 장악을 마무리하였다.


2007년에 와서 차베스는 오리노코 유전을 포함한 전국 석유산업의 국유화 작업을 추진하면서 기존 석유회사들과 새로운 계약체결을 위한 협상을 벌였는데,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의 60% 이상을 국유화하는 정책을 밀어 부쳤고, 결국 오리노코 지역에서 영국 BP, 미국 코노코 필립스와 엑손모빌, 프랑스의 토탈, 노르웨이 스타토일 등이 운영했던 이 유전들은 베네수엘라 정부의 국유화에 합의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차베스 정부는 국영석유회사를 통해 석유산업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로열티로 환수해서 무상의료, 무상교육, 빈민구제 사업에 쓸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차베스의 ‘국유화’의 본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국유화’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적 국유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국유화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국유화'가 국가 전체의 산업에 대해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일부 석유와 가스산업 등에서 주로 이루어졌으며, '국유화' 내용을 볼 때에도 사회주의적 국유화의 형태인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아니라, 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최고의 형태인 주식회사에서 국가 지분을 제일 많게 함으로써 국가가 주도권을 갖는 형태였다.


둘째, 차베스는 '국유화'를 중심적인 테제로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의 유치를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고,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을 줄이고, 석유 수수료를 늘렸을 뿐이다. 석유산업을 예로 들어볼 때에도 국가가 51%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나머지 49%는 미 제국주의를 비롯한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이 가져간다는 의미여서, 이렇게 볼 때 '국유화' 개념이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에서의 국유화에 가까운 것이다.


셋째,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권력에 의한 국유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체제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국가의 지분을 증대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낡은 부대에 새 술을 부은 것이다.


넷째, 차베스의 '국유화'는 생산관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아니므로 생산수단을 소유, 통제하는 세력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차베스가 주창하는 '노동자 통제' 자체에도 한계가 있다. 실제 전력산업서비스 같은 곳에서는 노동자통제권을 둘러싸고 노동자들과 기업주들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섯째, 차베스 '국유화'는 국내 자본가계급의 사적소유에 대해서는 타격을 가하지 않아 미완의 혁명이며, 사유재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자본가계급의 반혁명과 쿠데타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국가가 50-60%의 지분만을 가지고 있어서 역으로 나머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계급 및 반혁명집단이 계속 활개를 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속적으로 반혁명 집단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인 것이다.


차베스는 2005년 노동절 기념식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평등과 정의가 살아있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통해서만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민주주의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강요하는 방식의 민주주의는 아닙니다......(차베스의 말, 2005년 노동절날 기념식에서).”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의 대략적인 내용은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은행에 대한 정부의 통제 강화, 토지개혁법에 입각해서 전체 농지의 80%를 유상 및 무상 몰수해서 빈농중심의 협동농장에 나눠주기, 협동조합의 활성화, 노동자의 직접적인 공장통제방식(공장의 관리자를 노동자들의 직접투표로 선출하고, 예산도 노동자들의 참여로 짜며, 성과물을 지역사회와 나누기)등 이다.

그런데 지금의 베네수엘라는 아무리 차베스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21세기 사회주의”를 외쳐도, 자본주의에서 근본적인 모순인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생산관계의 모순이 극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 내에 남아있는 상태다.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과 '21세기 사회주의'가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지 못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파 반정부세력은 차베스정부의 이러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졌던 국유화를 포함한 사회복지프로그램 등 사회개혁의 조치들에 대해서조차 격렬한 저항을 해왔다. 2002년 4월 쿠데타, 12월 직장폐쇄의 시기에 반정부세력의 거센 저항은 물론이고, 2013년 3월 차베스의 사망이래, 새로 들어선 마두로 정부가 우파들에게 아주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상황 때문에 우파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우파들에게는 차베스 이후의 세상을 다시 우파들의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 생겨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2013년 4월 14일 선거 이후 반동들이 차베스 사망 이후 차베스의 계승자 마두로가 간신히 선거에서 승리한 상황 탓에 더 심하게 저항을 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로 이행하겠다는 주장"은 자칫하면 선거에서 패배하면 모든 진보적 조치들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에도 심각한 주장이다. 그런데 차베스 사망 이후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의 마두로가 승리하기는 했지만 가까스로 승리했던 것은 차베스 사망 이후에도 여전히 진보적 정권이 연장될 정도로 대중적 지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더불어 점점 더 반대세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20세기 자본주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절반의 혁명이며, 20세기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19세기의 '볼리비안 혁명'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함으로써 혁명의 핵심적인 고리인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깨뜨리기 위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하지 못했고, 혁명의 주체를 명확하게 내세우지 못한 한계가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문제는 20세기 러시아 혁명이 맞닥뜨렸던 ‘국가와 혁명’의 문제이다.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그대로 두고 현존의 국가를 개혁하여 유지하느냐,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분쇄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근절하여 새로운 노동자 민중의 대중국가를 건설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개량주의자들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특수성으로써 ‘21세기 사회주의’ 운운하지만 ‘국가와 혁명’의 문제 앞에서 제3의 길 같은 요행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차베스가 시도한 것은 볼리바르식의 민족주의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였다.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베네수엘라 대다수 빈곤층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미 제국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이권개입으로부터 독자적인 노선으로 범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이었다.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비록 그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를 하자고 주장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개혁이었다.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반제 진보 정권적 성격이라는 긍정적인 성과가 있으나 베네수엘라에서의 반제국주의가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전면 몰수와 국유화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 반제국주의에서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베네수엘라 ‘半혁명’은 20세기 사회주의 변혁노선으로 진군하지 않고 중도반단(中途半斷)한다면 반(反)혁명으로 끝장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교훈이 필요하다.




- 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 차베스 사망과 베네수엘라 계급투쟁: 전진할 것인가? 중도반단할 것인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