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 그것은 얼마나 나빴는가?
산업혁명의 영광은 대가를 수반했다. 아동 노동, 저임금의 극악한 노동 조건 - 어두운 악마 같은 공장들 -과 인간 소외가 그 대가였다. 1760년과 1830년 사이에 잉글랜드의 생활수준에는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오랜 시간 동안 이 이슈는 역사가와 경제학자들, 이데올로그들로 하여금 담장 아래 갇힌 수많은 돼지들처럼 시끄럽게 하기에 충분했고, 제시된 해답들은 관찰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왼쪽에 선 자들은 확실히 부정적이었다. 어떤 이름 없는 익살꾼이 한 말에 따르면, 산업혁명 기간 동안의 생활은 불결하고 영국적이고 결핍되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새로운 산업기계의 주요 수혜자였다. 프러시아 면 제조업자의 아들이었던 그는 1840년대에 유럽을 휩쓸었던 혁명적 열정에 사로잡혔고, 곧 또 다른 망명자 칼 마르크스와 우연히 만났다. 1848년의 격변 이후 두 사람 다 영국으로 도주했고, 여기서 엥겔스는 아버지의 공장 중 하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물려받은 재산과 경영자로서의 능력 덕택에 그는 이후 몇 십 년 동안 그 자신과 마르크스를 부양할 수 있었다.
• British = 영국적' 이라는 단어로 철자가 비슷한 bnutish = 야만적' 이라는 말을 연상케 하반어법 - 역 주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jin Englaund)에서 19세기 사회적 층위의 바닥에 위치한 삶의 충격적인 모습을 기술했다. 당시 24세밖에 안 되었던 젊은 엥겔스는 산업화 이전 농촌 영국에서 삶의 목가적인 모습을 최초로 그려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독실하고 성실함 속에서 고결하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가운데 상당히 안락한 생존을 영위했다. 그들의 물질적 상태는
그 이전 세대들보다 훨씬 더 나았다. 그들은 과도한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고, 스스로 일하기로 마음먹은 만큼만 일해도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정원이나 밭에서 건전한 노동을 위한 레저를 즐겼
다. 이 노동은 그 자체로 레크리에이션이었다. 그들은 그 외에도 이웃들과의 레크리에이션이나 게임에도 참여하는데, 볼링이나 크리켓 또는 축구 같은 이 게임들은 그들의 육체적 건강이나 활력에 도움이 되
었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건장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신체는 농민 이
웃들의 신체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들의 아이들은 신선한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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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속에서 양육되었다.
18세기 말에 엥겔스의 이상향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 대신에 잉글랜드 산업 지구의 슬럼가가 황량하고 절망적이며 아우게이아스의 마구간처럼 지저분한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 보고서를 직접 인용한 『노동자계급의 상태』에 나오는 짧지만 비교적 지루한 한 구절이 산업화의 거친 효과를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엘리스의 왕 - 역주
후더스필드 도심의 모든 거리와 많은 뒷골목은 판석이 깔리거나 포장되지 않았고, 하수도는 물론 심지어 배수구도 설치되지 않았으며, 쓰레기와 온갖 종류의 더러운 것이 노천에 그대로 드러나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거의 언제나 고인 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있고, 인근 주택들 역시 열악하고 더러운 상태였으며, 질병 발생과 도심 전체의 위태로운 건강은 너무나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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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균형 잡힌, 하지만 여전히 섬뜩한 평가는 오늘날의 관찰자인 조이스 말로(Joyce Marlow)의 평가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들이 살던 집들은 궁궐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백 개씩 줄지어, 정원도 없이 나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신선한 공기도 전혀 마실 수 없는, 하수구 위에 지어지지는 않았다..
좀더 최근에 이루어진 좌익 성향의 평가 중에서 전형적인 것은, 18세기 초에 런던에서 일인당 식량 소비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에릭 홉스봄의 이데올로기로 오염된 평가다. 그의 논증에는 한가지 사소한 결함이 있었다. 즉, 식량 공급이 하락했다는 그의 주장은 그 시기를 특징지은 인구 급증(인구가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 증가율도 상승했다)과 모순된다. 홉스봄은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산업화 이전의 사회는 식량 공급이 훨씬 더 풍부했지만 비정규적이었고 주기적인 대량 기아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좌익적인 홉스봄에게 후자는 차라리 더 나은 상태로 보였을 것이다.
산업자본주의의 상승이 영국인들의 복지에 어떤 순효과를 초래했을지라도, 많은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이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칼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메리카에서 금과 은이 발견되고, 원주민 인구가 광산에서 몰살 · 노예화 · 매장되었으며, 동인도에 대한 정복과 약탈이 시작되고, 아프리카가 검둥이들을 잡는 상업적인 사냥터로 전화된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장밋빛 시대의 개시를 알리는 신호였다. 42
현대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그들을 추종했던 후대 영국인들 - 홉스봄, 베아트리체(Beatrice)와 시드니 웹(Sidney Webb),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mard Shaw) 그리고 그와 더불어 한 세대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졸업생들을 사로잡은 이데올로기적 열정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에서 사회주의가 계속 호소력을 발휘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풍요의 한복판에서 나타난 절망적인 쇠퇴와 빈곤에 대한 엥겔스의 기술 일반적으로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좀 과장된 - 에 비추어 보면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격분과 객관성 결여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전반적인 혼잡과 더러움은 산업 지구 하층계급의 높은 사망률과 명백히 관련이 있었다. 또한 새로운 기계류의 높은 생산성은 잉여노동을 낳았다. 그리고 1800년대 동안 하인의 수가 꾸준히 증가했고, 곧 하녀와 집사가 중산계급 가정의 특징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개전 시점에 하인 은 영국 총노동력의 15퍼센트를 이루었다. 그러한 직업이나마 찾은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신체와 영혼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비행과 범죄도 저질러야 했다. 종종 노동자들의 절망적인 상태는 오늘날까지 영어에 품격을 더해주는 머드락(mudlark: 시궁창청소부), 스캐빈저(scavenger: 쓰레기 뒤지는 자), 거터스나이프(guttersnipe:부랑아), 울개더러(woolgatherer: 양털수거자) 같은 슬럼가의 틈새 일자리를 낳았다.
이데올로기적 분열의 다른 쪽에서 우익은 평균적인 노동자 가족의 생활의 더 밝은 측면을 묘사했다. 1948년 애쉬턴은 반대자들에게 답하면서, 산업화되지 않은 극동에서의 삶과 산업혁명기 잉글랜드에서의 삶에 대한 이러한 비교를 제시했다.
오늘날 인도와 중국의 평원들에는 역병과 배고픔에 찌든 남자와 여자들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의 생활은 낮에는 그들과 함께 일하고, 밤에는 그들과 잠자리를 나누는 가축들의 생활보다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아시아적 기준, 그러한 기계화되지 않은 공포가 산업혁명을 거치지 않은 채 수가 증가하는 사람들의 운명이다.
애쉬턴의 정서(비록 그의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는 상당히 오래된 것이지만, 후대의 경제사가들, 월트 로스토(Walt Rostow), 필리스 딘, 그리고 하버드의 전설적인 인물인 알렉산더 거센크론(Alexandler Gerschenkron) 등과 마찬가지로 그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했다. 제3세계의 비참한 대중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공장이나 기계 같은 것들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제도 - 재산권, 과학적 관점, 자본시장 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현대적인 의약 덕택에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학자들은 산업혁명 기간 동안의 생활수준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논쟁의 열기를 누그러뜨리고 복지의 보다 객관적인 생물학적 척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기대수명에 관한 연구는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수명이 상당히 길어졌고 1860년까지 그 상태를 유지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유아사망률에서도 매우 유사한 패턴이 발견된다. 유아사망률은 18세기 말에 감소했다가 19세기 초에 다시 상승했다. 계량역사45
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척도는 사람들의 키에 관한 데이터다. 이 데이터와 관련해서도 18세기 말에는 상당한 개선이 나타났다가 19세기초에는 악화되는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결국 엥겔스와 홉스봄 모두 부분적으로 옳았다. 오늘날의 압도적인증거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산업혁명의 나중 단계에 적어도 하층계급의 생활수준이 약간 하락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많은 사람에게,또는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에게 산업혁명은 말할 수 없이 야만적인일이었다. 나폴레옹 이후 시기의 경제적 하락기 동안 잉글랜드의 사회상태는 내전과 혁명 상태에 더 가까웠지만, 그 당시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이 점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자신이 면 산업계 거물의 아들인 로버트 필 같은 탁월한 몽상가들로 대표되는 영국의 정치적 리더십은 적절한 개혁조치를 실행하기에 충분했다.
엥겔스가 잊었거나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은 맬서스적 함정에서 벗어나기 이전 영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소름끼칠 만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산업혁명 초기 산업 지구 슬럼가의 하루하루의 생존이 얼마나열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기 동안 잉글랜드의 인구는 급속히 증가했다. 2세기 전의 생활수준이 훨씬 더 열악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2세기 이전에는 인구 수가 증가할 때마다 그만큼 생활수준이 하락했고,이것은 인구 증가를 제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심각했다. 1740년과1820년 사이에 사망률이 1천 명당 35.8명에서 21.1명으로 하락했다.산업혁명 이전의 삶에 대한 엥겔스의 이상향적 비전은 강한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만 아니라 산업화 이전 인구통계학의 철의 법칙에 눈
유골 잔해에 대한 연구는 고대 세계의 경제적 추세를 파악하는 데에도 결정적으로 귀중한것이었다. Ian Morris, Early Iron Age Greece” (초고를 저자의 동의 하에 인용함)
감은 결과이기도 하다.
1650년 이후 영국 인구의 급속한 성장은 실로 미스터리한 일이다.정확한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 이슈를 더욱 흐린다. 대부분의 경우 학자들은 세례 건수와 매장 건수 사이의 차이를 계산하는 데서 그친다.인구통제의 중요한 메커니즘 중 하나는 결혼 연령의 통제였다. 번성하는 시기에 사람들은 결혼을 빨리 하고 아이도 더 많이 낳았다. 힘든시기에는 결혼이 늦어지고 자녀의 수도 줄어들었다. 이런 단순한 계산의 범위를 넘어서면 다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끼어든다. 좌익 인구론자들은 급속한 인구 증가의 원인을 값싼 아동 노동 수요에서 찾는 반면, 우익 학자들은 가난한 가족들에게 자녀 부양 수당을 지급한스핀햄랜드(Speenhamland) 구빈 시스템을 든다. 중세 말기 인구 증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위생(시설)의 개선에서 원인을 찾는설명이고, 이것은 다시 생활 상태의 점진적인 향상을 옹호하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 시기 내내일인당 경제적 산출량은 인구와 더불어 증가했다. 하버드의 경제사가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이 역설을 그의 곡선 가설' 로 설명했다. 급속한 산업화의 시기 동안 산업화의 첨단에 선 자들은 사회의나머지 부분의 희생을 대가로 하여 성공을 거두기 때문에 부와 소득의불평등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이와 똑같은 사태가 1990년대 기술붐에서도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에 밝은 수천 명의 20대들이(잠시나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가 되었고, 소득의 불평등이 매우 심각해졌다.
인플레이션율 및 생활수준에 내재한 고유한 불확실성 때문에 근대초기 영국의 복지와 경제성장의 정확한 모습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근대 영국의 경제적 도약이 일어나고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향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는가는 논쟁의 대상이다. 산업혁명 초기 역사가들 - 필리스 딘과 윌리엄 콜(William Cole)은 급속한 경제성장이 일찍이 170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 반면,보다 최근의 저작들은 그것이 20세기 초에 비로소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이 책의 범위를 많이 벗어날 것이다. 그러나 혼돈의 18세기가 거의 끊이지 않는 대규모 권력투쟁으로 점철되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지속된 대량 살육은 새로운 유형의 전 지구적 대량 전쟁이 출현한 1793년과 1815년 사이에 절정에 달했다. 기아의 망령이 이 뒤늦은 끔찍한 시기 동안에도 잉글랜드에서 떠나지 않았고, 따라서 1800년직전과 직후에는 성장이 약화되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거의 없다. 7년전쟁, 미국 혁명, 프랑스 혁명과 전쟁, 나폴레옹 전쟁을포괄하는 시기 동안 잉글랜드는 최소한 생활수준의 하락을 겪지 않으면서도 기적적으로 인구가 두 배로 증가했다. 빈 회의 이후 유럽이 안정화되고 증기 동력과 전신이 경제에 추가되면서 비로소 근대적인 변종의 집약적인 경제성장이 일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책이 제시하는 성장을 위한 네 요인 모델을 통해 증기 동력 수송과 전자통신이 비로소 상용화 된 19세기 초 이전에 지속적인경제성장이 일어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제조업 부문이 아무리 생산적이 되었다 하더라도 철도와 전신이 없었다면 기업가들은과잉된 새로운 재화들을 최종 소비자에게 효율적으로 판매 또는 수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읽다 발견한 파트인데 이게 맞는건지 궁금해서
조은데?
팩트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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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탄생이라고 휴게소에서 심심해서 읽으려고 산책임
ㅇㅎ........
시장경제 대상 적혀있을때부터 불안하긴했는데
워싱턴 컨센서스의 근거가 되는 책이라던데. 자세한건 정떡이라 말을 줄인다만 - dc App
그게 뭐야?
IMF와 연관이 있을 것. - dc App
ㅇ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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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