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대전에 다룬 많은 책들이 많은 보통사람들이 유대인 학살에 침묵하고, 외면했다고 말을 하며, 이에 대한 철학으로 한나 아렌트, 스텐포드 감옥실험, 권위에 대한 복종 등 다양한 사회실험을 통해 부분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보통사람들은 기계적으로, 열열하게 히틀러를 지지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그러했는지, 왜 그러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이렇게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자.
결론만 보고싶은 사람은 3.이나 3줄 요악만 보면 될듯함.
1. 1차 대전 이후 유럽의 상황
독일에서는 마르크화의 가치가 폭락했다. 이는 많은 서적에서 과도한 전쟁배상금 때문이라고 나오지만, 이는 겉면만 보고 속은 들여다 보지 않은 태도이다. 분명 과도한 전쟁배상금이 근본상황인 것은 맞지만 이에 대한 대응이 합쳐져서 마르크화의 폭락을 나은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산업 지배자나 그에 따른 정치적 지배자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배상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1921년 제국은행을 통한 독일 지배층의 전략적 목표는 크게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배상금 지불액을 줄이고, 두번째는 앞선 대전 중 파업으로 성취한 노동자 임금 상승을 박탈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국가 통화를 마구잡이로 찍어내어, 국가의 통화를 망가트렸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노동자의 상황은 열악해져 갔다. 1924년 영국의 실질 임금은 거의 10퍼센트 떨어졌으며 독일에서의 실질임금은 20퍼센트 감소하였다가 다음해 일부 회복되었다. 상대임금은 더욱 암담하다. 1924년~1932년의 경기순환 동안 영국의 실질임금은 1900년에 비해 약 7% 하락했지만, 상대임금은 1900년에 비해 22퍼센트 추락했다. 독일의 경우는 각각 1900년대의 77퍼센트, 44퍼센트로 더욱 암울하였으며, 프랑스의 경우에도 종전 후에 노동조건은 악화되고 실질임금은 축소되었다.
또한 주거 문제에서도 악화 되었는데 1912년 침실 하나인 주택에는 1.02명이 침실 2인 주택에는 평균 1.65명이 살았지만, 1925년의 경우 각각 2.30,1.80명이 살았다.(1인 주택이 크게 증가한 이유는 주거가 기펜제이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1929년 대공황 이후의 상황은 더 참혹했는데, 독일의 경우 1931년 베들린의 한 풍자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 "노동자가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이론은 오늘날 완전히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다른 많은 문헌들이 말하는 것처럼 노동자도 나치에 가담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하지만, 투표 패턴이나 당원 수치나 정치 논리로 보든 이를 뒷바침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 실제로 나치는 노동자의 편이라고 말은 하지만, 나치의 정치적, 경제적 동반자는 독일 자본가 계층이었다. 무엇보다도, 나치의 주된 호소 중 하나는 모든 프롤레타리아 조직과 제도를 파괴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공황 이후 많은 독일인이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호소에 귀를 열었지만, 1932년 6월 자유선거에서 나치당의 득표율을 37.3퍼센트였고 1932년 11월에는 4퍼센트 떨어졌다. (첨언하자면, 1932년 6,11월 투표율 또한 부당하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투표함 바꿔치기, 검은 셔츠당의 백색테러, 좌파 계열을 향한 정치적 억압(강제수용소나 살해 등)을 통해 달성한 투표율이었다.) 이를 막기위해 히틀러는 제국의회 의사당에 불을 지르고, 이를 공산당의 소행이라고 몰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득표율은 43.9퍼센트에 불과했으나 나치는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이유는 민주으이 지지가 아니라 구 지배계급의 지지 때문이었다.
반면,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좌파 정권이 정권을 잡았다. 1936년에 인민전선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정부은 사회주의 정부라기 보다는 반파시스트가 연합한 연합전선에 가까웟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150만에서 195만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였고, 이를 통해 최소 7퍼센트에서 25퍼센트 임금이 인상되었으며 연간 2주의 유급휴가와 주 40시간 노동을 쟁취 할 수 있었다. 또한 이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문화생활도 풍부해져갔다. 1936년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는 인구 20만 명 이상의 모든 도시에서 승리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극우파는 부정선거라고 비난 하였으며, 이를 통해 쿠데타를 시도했으며 성공했다. 또한 1938년 프랑스 인민전선 또한 붕괴되어 우익 정치인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이때의 미국과 영국의 행동을 주의깊게 볼만한데 독일과 이탈리아는 이러한 쿠데타 정권을 후원하였으나 영국과 미국은 좌파의 집권이 무서워 이러한 쿠데타를 의도적으로 방치했다.
2. 2차대전에서의 유럽의 상황
대부분의 민중은 대체로 제국을 지키려고 싸우지 않았다. 대부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싸웠다. 이로인해 나치는 군사력을 충분히 갖추기 전에 전쟁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나치 정권의 억압으로 인해 독일 노동자들의 태업과 파업, 민중반란의 공포가 나치를 행동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 공상주의자들이 발매한 <<졸다트 임 베스텐>>이라는 신문은 악랄한 장교들의 이야기와 일반 사병의 부당한 처우를 전했고, 이를 통해 많은 독일인이 소련으로 쉽게 탈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안전 통행권' 역할을 했다. 또한 베들린에서는 괴벨스가 유대인이 없는 도시를 히틀러에게 선물하고자 1943년 부인이 '아리아인'인 유대인 약 2000명을 비롯해 강제 이주에서 면제된 유대인들이 일제 검거되어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러자 부인들은 구치소 앞에서 '우리 남편을 내놔라'라고 소리질렀고, 이에 대해 무장 경비대는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여성들은 잠시 피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시위를 계속했고 4일간 이뤄졌다. 마침내 SS가 여성을 향해 기관총을 겨누었지만, 거의 완전히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군중들은 도망가기는 커녕 나치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괴벨스는 여성들을 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평범한 베들린 시민까지 합세한 광범위한 혁명을 두려워했다. 실제로 1차대전에 독일의 패전 이유 또한 1918년에 이루어진 광범위한 혁명탓이었다.
3. 그렇다면 왜 민중혁명이 일어나 나치 독일이 파괴되지 않았는가?
역사가들은 파시스트 정권이 기술적 발전을 통해 민중의 저항을 더 쉽게 억압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반파시즘 혁명을 막는데 연합군이 주요한 요소로 작용되었음은 지적하지 않는다. 연합군은 도시 공습을 감행하였고, 이로인해 독일 비전투원 60만명, 프랑스 시민 5만명, 이탈리아에서의 민간인만 6만명이 사망하였다. 덧붙여 동맹국 안에 많은 외국인 노예노동자와 포로가 사망하였다. 또한 이들은 특히 노동시설과 노동계급의 집을 주요 목표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러한 공중 폭격이 파시스트 군대에 사기를 꺽는 역할을 했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반파시스트 민중혁명의 동력을 꺽어버리는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1943년 프랑스 주요항구에 빵 배급량이 줄어,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으며, 이를 통해 민중혁명이 눈 앞에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비행기가 하늘을 가득 메웠고, 시위중인 주민들에게 폭탄을 쏟아부었다. 노동계급 구역이 첫 번째 폭격을 당했다.' 독일 및 오스트리아의 폭격을 지지하는 반 파시스트 그룹들조차 이 전술 때문에 조직적 저항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느꼈다. 쾰른에서는 가톨릭 중앙당 출신의 반파시스트들은 공습이 너무 심해서 주민들이 살아남으려는 노력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노버에서의 공산주의,사회주의 저항 그룹들은 실종된 동지를 찾아다니고, 폭격당한 노동자들이 먹고,머물 곳을 제공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고 강조하였다. 대부분의 저항그룹은 산업 목표물의 공습을 이해했으며, 민중들이 전반적으로 지지했지만, 노동자 거주지역의 융단폭격 탓에 배신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1. 1차대전이후 자본주의적 불황과 노동계급 약화에 따른 좌파의 성장세가 커져갔고 이를 막기위해 자본가들은 파시즘을 이용하거나 파시즘을 묵인하는 태도를 보임.
2. 전간기나 2차대전 모두, 민중들이 나치에 순응하며,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증거는 부실하며, 오히려 저항했다는 증거도 많음.
3. 그런데 연합국의 폭격으로 인해 시위나 파업을 할 수가 없었음. 단체 활동을 하기 보다는 내 몸 건사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다른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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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계속 이렇게 쓰네 습관인것 같어 ㅋㅋ
수정함
대중독재론에대한 반박이라고 봐도 되나? - dc App
ㅇㅇ 비슷한 의미인 것 같음.
레퍼가 없단게 흠이다
레퍼는 유럽 민중사 - 윌리엄 A 펠츠에서 가져옴
좀더 세분화해서 레퍼 써줄까?
아냐 ㄱㅊ음
한번 읽어보려 했는데 더읽어보고 싶네